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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여성 예능’과 웃음의 권력 할 말은 하는 그녀들
‘무엇에 대해서 웃게 하느냐’는 그 사회의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군대에는 ‘병장 개그’라는 것이 있다. 병장은 부대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이다. 왜? 병장이 얘기하면 후임병들이 웃어줘서? 아니다. 병장은 다른 병사들의 약점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희화화해서 웃음을 유도하는 것은 일반적인 우리 사회에서 병장만이 가능하다. 비슷하게 직장에는 ‘상사 개그’가 있다.

‘여성 예능 당당시대’

한국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그 프로그램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를 보면, ‘못생긴 여자나 뚱뚱한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코너가 늘 있다. 예쁜 여자는 허영에 들뜬 여자라고 묘사하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개그콘서트>가 권력을 풍자하지 못하고 약자를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 희화화 개그’는 일정한 패턴으로 굳어 있다. 일반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주류 남성이 비주류 여성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성 위주 패널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게스트를 불러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희덕거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쁘고 날씬한 여성 연예인을 여신처럼 숭배하는 듯하다가 난감한 상황에 빠뜨려 웃음을 유도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여성 예능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아주 대단한 붐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여성 예능 전성시대라 할 수는 없지만, ‘여성 예능 당당시대’ 정도로 말할 수는 있을 법한 변화다. ‘할 말이 많으면 하는 게 당연하지’라는 온스타일의 <뜨거운 사이다>와 ‘당연한 걸 당당하게’ 말하자는 <바디 액츄얼리>, EBS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가 여기서 꼽히는 프로그램이다. 예전부터 여성 패널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여성 예능 잔혹사’라 할 만큼 장수 프로그램이 없었다. <여걸파이브>, <여걸식스>, <무한걸스>, <언니들의 슬램덩크>, <비디오스타>, <청춘불패> 등이 있는데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등 남성 예능 프로그램의 아류로 제작되거나 걸그룹의 인기에 기댄 것들이 많았다.

고재열의 썰 관련 이미지1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
2 여성건강 리얼리티 <바디 액츄얼리>.
3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
4 이슈 토크쇼 <뜨거운 사이다>.

여성 예능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들의 자리

통계를 보면 예능 프로그램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한국양성평등 교육진흥원이 7월 방송된 33편의 인기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출연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38.7%(159명), 주 진행자 중 여성 비율은 22.8%(13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2017년 방송된 남성 중심 예능 프로그램은 여성 중심 예능 프로그램보다 8배 이상 많다. 현실 속 여성의 모습보다 브라운관 안에서 여성이 ‘과소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렇게 남성 위주인 것에 대해 ‘남성들이 출연하는 예능이 더 웃겨서 그렇다’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 위주 사회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남성은 무슨 말이든 막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재미의 요소다. 그런데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그랬다가는 나중에 역풍을 만나게 된다. ‘왜 여자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느냐’며 시비가 인다. 그래서 말할 때 후폭풍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웃음의 포인트를 만들어내기 힘들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여성 예능인들은 스스로 설 자리를 팟캐스트에서 만들었다. 송은이와 김숙이 진행하는 <비밀보장>이 대표적이다.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스스로 만든 방송에서 그들은 중년 여성이 애하고 시어머니 이야기를 안 해도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페미니즘이 부각되고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곳을 찾으면서 여성 예능 프로그램이 부각되었다.
자신들만의 무대에서 여성들은 봇물 터지듯 할 말을 쏟아냈다. <뜨거운 사이다>는 첫 회에서는 여성 예능 부재를, 2회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과 몰카 범죄를, 3회에서는 여성 혐오 범죄와 성소수자 이슈를 다뤘다. EBS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에서는 브래지어를 이슈로 다루며 남성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방송하게 하고 여성들은 반대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방송을 하게 하며 느낌을 말하도록 했다.
여성 예능 프로그램은 진화하고 있다. 외모가 출중한 남자 연예인을 불러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즐기지도 않고, ‘여자들의 기싸움’을 보여주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여성 예능 패널들의 연령도 높아지고 외모도 다양해지고 있다. <무한도전>, <1박 2일>과 같은 남성 예능의 특징은 못나 보이는 사람들이 제 필요를 증명하면서 웃음을 준다는 것인데 이를 여성 예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예능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고재열_ 시사IN 편집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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