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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서울로7017과 그 주변부 잊지 말아야 할 시간들
지난 5월 20일 서울로7017이 긴 공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화분이 곳곳에 놓여 있는 고가 도로를 걷는 건, 이전에는 닿을 수 없던 공간에 닿는 묘한 해방감과 함께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한 풍경 속에 들어간 듯한 초월적 감각까지 느끼게 한다. 이 공중산책로의 탄생을 두고 이런저런 우려도 많았고, <슈즈트리> 및 야간 조명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대로(?)가 생겼다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서울로7017의 모습.
2 칠패로 12~16 염천교 수제화거리.
3 서울로7017에서 내려다본 남대문로5가 상가주택들.

서울로7017의 주변 #1. 염천교 수제화거리

서울로7017에서 북쪽으로 300m 떨어진 염천교의 남측에는 ‘수제화거리’라고 불리는 연속된 4층의 오피스 빌딩군이 서 있다. 1층에는 여전히 수제화를 파는 상점들이 영업 중이고, 작지만 매력적인 염천교 구두박물관도 위치한다. 수제화거리는 1925년 서울역에 생긴 화물창고로 들어갈 가죽이 밀거래되면서, 그 가죽들을 이용한 잡화상, 피혁점, 구두집이 염천교 주변을 비롯해 중림동, 봉래동 일대에 자리 잡으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들의 중고 워커를 이용하여 신사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수제화거리로서의 모습을 갖췄으며, 1970~8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1) 서울역이라는 물류의 중심에 위치한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점차 쇠락하다 2008년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사업에 따라 철거될 뻔도 하였으나, 여전히 그곳에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이루는 건물들은 1960년에 건축된 것으로, 크게 보면 2개의 건축군, 즉 ‘칠패로 6~10-2’를 이루는 하나의 군과 ‘칠패로 12~16’을 이루는 하나의 군으로 되어 있다. 이 건축물들은 벽과 벽을 맞닿아 지은 합벽건축으로, 타일 외장의 수직으로 장방형의 격자 패턴 파사드를 가진 전형적인 1960년대 스타일이다. 동측 부분의 칠패로 12~16의 경우 경사진 대지의 조건에 대응하여 건물이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수평 수직의 격자 패턴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수평선은 조금씩 어긋나며 계단처럼 점층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좁다란 골목과 같은 계단실이 나오고, 계단참에는 콘크리트로 무심히 만들어진 듯한 개수대가 등장한다. 공중화장실을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일까. 무슨 연유로 계단참에 개수대가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시기 지어진 오피스 빌딩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낯설진 않다. 1층의 상점부에는 이동식 쇼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영업 중일 때만 건물에서 혀를 쏙 내밀 듯 나오는 쇼룸들은 건축 이후 추가된 것이겠지만, 낮과 밤이 다른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한다.2)

서울로7017의 주변 #2. 봉래동 상가주택

서울로7017에서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로로 걸어가며 좌측을 바라보면 ‘농협홍삼한삼인’이라 쓰인 간판 아래로 범상치 않은, 코너를 따라 동그랗게 배치된 4층 건물이 보인다. 남대문로5가는 서울역(구 남대문정거장)이 생긴 이후 물류 및 교통의 중심지로 버스터미널을 비롯하여 각종 택시회사, 트럭회사, 물류회사 등이 위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졌고, 1959~60년에 도시 미관과 전후 복구를 위해 이 도로의 양옆에 집중적으로 ‘상가주택’이라는 형식의 건축물들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상가주택은 1~2층은 상가로, 3~4층은 주택으로 쓰는 주상복합건축물로 시범상가주택의 경우 당시 대한주택영단에서 건축비의 60%를 융자해주는 등 국가 부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도심 건축물이었다. 상가주택을 지을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들이 있었는데, 그중 더스트 슈트(dust chute)와 개별 수세식 화장실, 비상계단의 설치 등은 위생 및 방재상의 개선을 의도한 것이었다. 물론 도심지의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3~4층의 주택들도 몇 년 지나지 않아 모두 사무실로 용도를 전환하였다. 상가주택은 1959~60년에 남대문로, 을지로를 비롯한 전국의 도심지에 집중적으로 건축된 이후 더 이상 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일부가 현재도 남대문로5가와 을지로2, 3가 등에 남아 있어 이전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남대문로5가에 남아 있던 상가주택들은 아쉽게도 최근 하나둘씩 철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로7017의 주변 #3. 만리동 손기정공원

만리동 일대는 이미 진행된 재개발의 여파로 대부분 아파트 단지가 되었지만, 그 가운데 손기정공원만큼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손기정공원은 원래 양정고등학교였던 곳으로, 현재는 손기정기념관과 주민체육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양정고등학교는 양정고등보통학교가 1918년 현재의 만리동에 신축·이전한 것으로, 손기정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붉은 벽돌의 2층 건물로 단아하게 디자인된 양정고등학교 건물은 현재의 손기정기념관을 비롯해 3동이며,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비교적 보존·활용이 잘되고 있다. 옛 만리동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곳만은 계속 남아 만리동의 시간과 공간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로7017의 개장과 함께 그 주변 지역들 역시 변화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그 변화에는 도심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철거와 재개발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콘크리트 화분이 가득한 도심 속 가로로 변화된 서울로7017도 원래는 산업화의 산물인 고가도로의 하나였음을 생각할 때, 서울로7017 주변의 서울역으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시간의 기억들을, 그리고 그 기억들을 표상하는 시대의 대표성을 띠는 건물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서울로7017을 방문한다면 그 주변에 있는 만리동 손기정공원, 중림동 약현성당과 성요셉아파트, 봉래동 수제화거리와 상가주택들도 눈여겨보길 바란다. 자세히 보면 더 예쁘고, 자세히 보면 더 소중한 서울의 시간들이 바로 가까이에 있으니 말이다.

1) 염천교 수제화거리 홈페이지(https://yeomcheonshoes.modoo.at/?link=7dk1iai9) 참조.
2) 이 건물의 파사드에 대한 분석은 권태훈의 <Facade Seoul>(아키트윈스, 2017)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글·사진 이연경_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 단국대,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등에 출강했으며 연세대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로 근무했다. 주요 저서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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