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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방송사의 불공정 행위 논란 정당하고 합리적인 노동 환경을 요구하다
방송가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고단한 제작진의 삶은 때때로 백조의 유영을 떠올리게 한다. 물 밖의 우아한 모습을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백조의 발처럼,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노력에 정당한 보상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노동의 외주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방송업계의 특성은 대부분의 궂은일이 비정규직 직원에게 돌아가게 만든다. 불합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최근 현장에서 일하는 몇몇 PD들이 죽음을 맞았다. 열정 페이와 갑질로 점철된 방송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성토가 커진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다큐멘터리 촬영 중 교통사고로 숨진 박환성 PD와 김광일 PD의 유해가 7월 27일 빈소에 안치됐다.

PD들의 죽음, 자살과 사고 아닌 ‘사회적 타살’

지난해 한 조연출의 죽음은 방송가의 불합리한 업무 환경을 고민케 한 첫 계기였다. 2016년 초 CJ E&M에 입사해 tvN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근무하던 이한빛 PD는 의상·소품·식사 등 촬영 준비, 촬영장 정리, 제작비 정산, 편집 등의 많은 업무를 도맡았다. 장시간 노동과 폭언을 견뎌야 하는 방송업계의 노동 환경도 문제였지만, 이 PD는 비정규직 스태프의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까닭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노동 환경에 처한 비정규직에게 해고를 알리거나 월급의 환수를 독촉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일의 우울을 이기지 못하고 같은 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7월엔 외주제작사 PD가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제작하던 박환성·김광일 외주제작 PD(방송사에 정규로 소속돼 있지 않은 외부 자체 프로덕션 소속 PD)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도 충격적이었지만 문제는 사후에 더 커졌다. 생전에 박 PD가 EBS의 외주제작사에 대한 제작비 후려치기 문제를 두고 투쟁 중이었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처음 박 PD는 다큐 2부작을 EBS와 1억 4,000만 원에 제작하기로 계약했다. 계약 후 박 PD는 정부제작지원 사업에 채택돼 1억 2,0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EBS는 ‘정부지원금 가운데 일부는 교육방송에 간접비로 내야 한다’는 자사의 규정을 거론하며 지원금의 40%를 가져갔다.
박 PD는 억울했지만, 일단 삭감된 금액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방송사 소속 다큐 제작진의 경우 대개 현지 일정을 관리해주는 코디네이터와 운전기사를 따로 두는 것과 달리 촬영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들은 대부분의 일정을 직접 소화했다. 방송사의 제작비 절감 요구로 이들은 낮 촬영, 야간 이동이라는 강행군도 이어갔다. 해외 촬영에선 시간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두 사람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예견된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2 지난 6월 14일 열린 간담회에서 만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이한빛 PD 유가족과 CJ E&M 관계자들.

심각해진 노동의 외주화… 법률 개정·제도 개선이 최우선

IMF 이후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는 각계의 노동 현장에서 문제가 됐지만 방송업계에선 특히 심했다. 개별 프로그램당 프로젝트 성으로 진행되는 방송 현장의 특성상 노동의 외주화가 더욱 쉬웠던 까닭이다. 한 건의 계약이라도 더 따내야 하는 외주제작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작비 절감과 과도한 노동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고, 방송국과 외주제작사의 관계는 자연스레 ‘갑을’ 구도로 형성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박봉과 장시간 노동을 일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은 두 번의 죽음 이후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관행을 그대로 둔다면 제3, 제4의 죽음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한빛 PD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CJ E&M에 미디어업계의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과 사과를 요구했다. 비록 사건 이후 8개월 만이었지만, 올해 7월 CJ E&M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과 함께 제작 환경 개선책을 발표했다. 외부 제작 스태프의 적절한 근로시간 확립 및 보상에 대한 포괄적인 원칙을 수립하고 ‘스태프협의체’ 운영 등 제작 현장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외주제작 PD들의 모임인 ‘한국독립PD협회’는 지금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박환성·김광일 PD의 사고 직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달려가 시신 수습에 앞장선데 이어, 최근에는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방불특위)를 조직해 단체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유관단체·시민사회·정치계가 함께하는 토론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회의원과 공동 발의해 특별법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관심이 이어지자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개선 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EBS는 최근 ‘외주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받아온 정부지원금의 경우 간접비로 회수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상생 방안의 개선을 논의 중이다.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 같지만, 한국독립PD협회 측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약속만 난무할 뿐 공식적인 개선안은 마련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박 PD는 사고 당일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갈 데까지 가봅시다. 뭐가 어찌 되는지….”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마지막 메시지에 한국 사회는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글 고희진_ 경향신문 기자
사진 제공 한겨레,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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