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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한국 공연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체질 개선이 필요한 때
공연계는 항상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수식이 따라 붙는다. 이제 침체라는 말에 무덤덤해질 정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스스로 생사를 선택했다는 제작사 대표들의 부고는 여전히 충격적이고, 애써 준비한 작품들을 조기에 폐막한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국 공연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김수로 프로젝트 5탄 <유럽블로그>.

공연계의 악순환

대학로의 흥행 브랜드 ‘김수로 프로젝트’로 알려진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최진 대표가 최근 세상을 등졌다. 고인을 만난 건 지난해 말이었다. 그의 인상은 ‘대범한 호인’이었다. 약 20편의 흥행작이 있던 최 대표는 공연 외적으로 업계의 판을 키우고 싶어 했다. 모순되게도 공연만으로는 공연 제작사 운영의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공연 외에 교육, 해외사업 등 무리하게 영역을 확장하면서 수십억 원의 부채를 떠안고 회생 신청을 했다. 지난해에는 극단 적도의 홍기유 대표가 사망했다. 그 역시 대학로의 흥행 브랜드 ‘연극열전’을 기획한 명망 있는 프로듀서였다.
최근 공연가에는 무대에 올려놓은 작품들을 조기에 폐막한다는 소식이 줄을 이었다. 인지도 있는 아이돌의 출연 효과도 공연 초반에 반짝할 뿐이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그마나 티켓 판매를 불러온 아이돌이 더 출연을 못한다고 하자 폐막 날짜를 앞당겼다. 얼마 전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햄릿> 역시 아이돌이 출연했지만 흥행에서는 부진했다. 배우와 스태프가 임금 지급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공연 당일 무대가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연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장르라는 뮤지컬이 이 정도인데 소규모 연극을 하는 대학로의 작은 극장들은 오죽할까. 대학로에서 20여 년간 연극을 해온 곽최산 우리네극장 극장장은 자신의 SNS에 대학로를 떠나겠다고 썼다.
한국 공연계는 손댈 수가 없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규모가 큰 프로덕션도 폭탄 돌리기에 급급하다. 공연계에 만연한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으로 취약해도 공연을 올리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 공연에서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편법이다. 사전 제작비로만 공연을 개막할 수 있는 관행도 문제다. 극장 측에서 제작사가 지불할 수 있는 대관료, 배우·스태프 임금 등에 대한 확인이 완료되지 않아도 일단 공연을 올릴 수 있다. 앞서 2014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지난해 뮤지컬 <록키>의 라이선스 초연 등이 이런 폐단으로 배우, 스태프, 그리고 관객들에게 피해를 줬다. 가장 산업적이라고 생각했던 뮤지컬업계가 이렇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 규모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이후 급속도로 커졌다. 10년 만에 2,000억 원대를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후 지지부진, 현재 약 3,000억 원대로 파악되고 있다. 제작사와 작품 수가 급격히 팽창한 것에 비하면 판이 작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은 몇몇에 불과한데, 업계 추산 한 해 대략 2,500편의 뮤지컬이 쏟아진다. 유명 스타를 앞세워 개막하면 어떻게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인해 스타 캐스팅에 목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는 한정돼 있으니, 이들 몸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제작비가 동반 상승한다. 10만 원이 넘는 티켓을 다 팔아치워도 수익이 안 남는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임금을 못 받는다. 제작사는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은 브로드웨이처럼 최소한의 임금을 보증금으로 맡겨둔다든가, 전체 예산의 10~15% 정도를 예비비로 편성하는 방법이 이상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연 개막 전까지 투자금이 확보되지 않고, 안정적인 운영 역시 보장되지 않는 현재 국내 상황에서는 요원한 얘기다. 우선 안정적인 투자를 받기 위해서 시장이 투명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2, 3 뮤지컬 <햄릿> 공연 모습과 포스터.
4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포스터.

투명하고 합리적인 공연시장 형성하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본격적인 도입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공연전산망 구축사업은 공연 관련 기관, 판매대행사 등에 분산돼 있는 공연티켓 예매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공연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산업적 발전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가동은 늦춰지고 있다. 제작사, 공연장 등의 모든 티켓 정보를 손쉽게 모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를 꺼려하는 공연 관계자들이 상당수다. 취약한 재정적 구조로 인해 투자나 후원을 받기 힘들 거라는 우려로 상당수 제작사는 매출이나 관객 수를 공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물론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절대적인 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공연기획, 제작, 투자, 배급사들의 정확한 투자수익률 예측을 가능케 함으로써 투명하고 합리적인 공연시장을 형성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공연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 ‘관객 수가 얼마나 되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공연 관계자는 없었다. 매출 통계뿐 아니라 제작비 사용의 투명성도 확보를 해야 한다. 사업이 수치화되면 일시적으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성장통이라 생각해야 한다. 2003년 시작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은 초반에 진통을 겪었지만 2010년 법제화가 된 이후 영화 산업이 커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산업의 규모 가늠과 기초 통계 활용 등 영화 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공연계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유명하지 않거나 경력이 일천한 배우, 그리고 스태프일수록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최소 근로조건(임금 포함) 등이 담긴 표준계약서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협회 같은 중립기관의 관리와 감시도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만 먼저 살면 된다고 이를 방치하는 건 결국 공멸의 길이다.

글 이재훈_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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