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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영화 <로스트 인 파리> 그와 그녀의 ‘웃픈’ 사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최고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콧수염에 우스꽝스러운 슈트를 입은 모습으로, 특유의 익살스러운 몸짓을 통해 그는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과 비애를 드러냈다. <로스트 인 파리> 는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파리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를 통해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틈 관련 이미지

동그란 안경에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월리.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를 보면 채플린이 말한 그 희극 속의 비극이 떠오른다. 차림새로 본다면 제법 눈에 띌 법한데도, 삽화의 배경이 되는 복잡한 지역에 위치하는 순간, 도무지 이 독특한 캐릭터를 찾을 길이 없다. 월리를 찾기 위해 책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를 부지런히 오가는 건 찾는 이에게는 일종의 인내심 테스트다. 최대한 그를 숨겨놓기 위해, 작가는 등장인물들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세밀하고 촘촘하게 그림을 그린다. 멀리서 보면 그냥 한 덩어리의 그림에 불과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손톱보다 더 작은 캐릭터들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있지 싶다. 해변에서, 놀이공원에서, 할리우드에서, 사람들이 대거 모인 공간 안에서 각자의 사람들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즐거워 보이지만, 채플린의 말처럼 근접조우해서 본다면 각자의 사연들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월리를 찾는 건 그래서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되어버린다.

파리에서 길을 잃다

<로스트 인 파리>를 보면 그 ‘웃픈’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파스텔톤에서 채도를 잔뜩 높인 선명한 화면이 눈길을 먼저 사로잡지만, 영화는 그렇게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싶은 스틸 컷과 반대로, 인물들의 상황이 즐겁게만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로스트 인 파리>의 피오나(피오나 고든)는 말 그대로, 파리에서 길을 잃었다. 캐나다에 살고 있던 이 여성은 30년 전 낭만이 있는 도시 파리로 간 이모 마르타(에마뉘엘 리바)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이다. 그 길로 파리에 가지만 정작 이모는 행방불명인 상태. 옷가지며 돈이 들어 있는 빨간 배낭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분실했다. 불어는 능숙하지 않고, 파리의 길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피오나로 인해 덕을 본 건 센강에서 노숙하던 남자 돔(도미니크 아벨)이다. 우연히 피오나의 가방을 주은 그는 가방에 있는 피오나의 옷을 입고, 지갑에 있는 돈으로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샴페인까지 제대로 먹는다. 결국 피오나는 그런 돔을 만나게 되고, 사사건건 부딪힌다. 몇 번의 만남 후, 마르타 이모가 죽은 줄 알고 장례식에 참석한 둘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파리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여자와 파리에 살지만 집 없이 지내는 남자. <로스트 인 파리>는 이 과정에서 그 어떤 친절한 부연설명을 하지 않는다. 마치 채플린의 몸짓이 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대사도 거의 없이 그들의 행위를 총총 따라간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다가 센강에 풍덩 빠지는 피오나나, 센강에 오줌을 누다가 점점 가까워져오는 관광 유람선을 보고 어쩔 줄 모르는 돔의 모습을 카메라는 개입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다.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이들의 행위는 강조되지만, 영화는 사건사고 앞에서도 시끄럽게 법석을 떨지는 않는다. 만나려던 이모는 ‘죽음’을 알려오고, 파리에서 그녀는 울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을 겪지만, 그녀에게서 떨어져 파리라는 생동감 넘치는 도심을 통해 그녀를 보자면 이 모든 것이 그저 ‘희극적’일 뿐이다.

춤에 담긴 긍정의 기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은 주인공 돔과 피오나를 직접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영화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실제 댄서이기도 한 둘은 이미 전작 <룸바>와 <페어리> 등을 통해 마임 공연에 가까운 연기로 구성한 독특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건 그래서 대사보다 행위, 춤이 앞선다. 댄스 공연 대회에서 우승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다리를 잃고, 화재로 집을 잃은 부부의 상황을 그린 <룸바>의 주인공들. 그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룸바춤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던 그 ‘긍정의 기운’ 역시 <로스트 인 파리>를 구성하는 작은 희망이다. 피오나가 찾아 헤매던 이모 마르타는 과거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과 다시 만나고, 벤치에 앉아 탭댄스를 춘다. 카메라가 조명하는 것은 활력 있고 역동적인 탭댄스가 아닌, 벤치에 앉은 두 노인들의 수줍은 발동작이다. 그리 빠르지 않지만 서로의 감정을 담은 춤. 피오나와 돔 역시 센강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의 첫 만남에서 춤으로 소통한다. 돔은 흥에 겨워 피오나에게 춤을 청하고, 영문도 모른 채 피오나는 잠깐이나마 자신의 딱한 처지를 잊고 로맨틱한 선율에 몸을 맡긴다.
두 감독은 춤이 자신들의 ‘작업 중 일부’라고 말한다. 인물들의 춤은 1950년대 쿠바에서 시작되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 뿌리를 둔 룸바를 바탕으로, 마임, 현대무용, 뮤지컬, 슬랩스틱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전문 댄서인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는 마르타를 연기한 에마뉘엘 리바의 연기가 주는 감흥이 크다. <아무르>의 안느로 최근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함에도 낭만을 잃지 않는 멋진 모습을 선보인다. 두 감독은 그녀가 “<뉴욕 타임즈> 화보를 찍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찰리 채플린을 연기하거나 슈퍼맨 망토를 휘날리며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현실의 고통은 이 춤을 통해서 어느 정도 희망찬 동화처럼 치환된다. 파리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도심에서 월리를 찾듯 찾아낸 이들에게 이제 호기심 대신 애정의 마음이 더해진다.

글 이화정_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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