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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콜로라투라에서 스핀토 소프라노로의 이행 한국 출신 신 소프라노들의 시대
한국 성악계에 있어 1990년대가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의 소프라노 트로이카 시대였다면, 다음 세대는 임선혜, 서예리 등 고음악 스페셜리스트로 이어졌다. 이들은 미국, 유럽 등 세계 오페라의 본거지에서 활약하며 한국 여성 성악가의 힘을 보여줬다. 한편 최근에는 중량감 있는 목소리의 소프라노들이 주목받으며 한국 성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장일범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 Getty Images Bank

1990년대, 소프라노 트로이카 시대

1990년대 한국 성악계의 슈퍼스타는 여성 성악가 트로이카였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3명이 계속 승전보를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성공한 소프라노는 맏언니인 소프라노 홍혜경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하 메트)의 멤버로 활약한 홍혜경은 콜로라투라와 리릭 레퍼토리를 두루 부르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최고의 성악적 진수를 들려줬다. 1982년 메트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1984년 모차르트의 <티토 황제의 자비>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으며, 메트에서만 <라 보엠>의 미미 64회, <카르멘>의 미카엘라 35회, <투란도트>의 류 33회, <피가로의 결혼> 30회 등 뉴욕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유럽에서는 베로나 아레나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카르멘>과 <투란도트>에, 라 스칼라의 <투란도트>에, 런던 로열 오페라의 <라 보엠>에 출연하는 등 언제나 품위 있고 당당한 모습과 훌륭한 공명의 발성으로 오페라 무대를 지배했다. 홍혜경은 출연 횟수는 줄었지만 지금도 메트 오페라 무대에 주인공으로 서며 뉴욕의 셀러브리티로 대접받고 있다.
홍혜경의 본거지가 뉴욕인 반면 소프라노 조수미의 본거지는 로마다. 1986년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리골레토>로 데뷔한 이래 라 스칼라에서는 1988년 조멜리의 <페토네>로 데뷔했고, 카라얀으로부터 1989년 빈국립오페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가면무도회>에 초청받아 도밍고와 함께 무대에 서며 파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에 메트 오페라에 <리골레토>의 질다로 선 이후 15년간 같은 역으로 메트 오페라에 서면서 그녀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 1990년에는 또 하나의 조수미의 대표 역할로 자리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 섰고, 이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극장, 교향악단과 수많은 협연을 해왔다. 지금도 갈라 콘서트 등으로 활약 중이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본거지도 뉴욕이다. 1991년 메트 오페라에서 홍혜경의 대역으로 <리골레토>의 질다로 데뷔한 이래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낭만주의 초기 벨칸토 오페라 레퍼토리에 있어 최적의 가창을 들려줬다. 당시 한국오페라단의 <루치아> 공연에서 들려준 날아갈 듯한 아름다운 음성과 훌륭한 테크닉은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출중한 소프라노 트로이카의 시대는 한국 성악계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이 세 소프라노의 목소리 특징을 보면 모두 매우 여성적이고 우아하며, 섬세한 리릭 콜로라투라에서 <라보엠>의 미미와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에 이르는 가벼운 리릭 소프라노임을 알 수 있다.

고음악 스페셜리스트들의 등장

소프라노 트로이카 시대 이후 다음 세대는 고음악 스페셜리스트들이 차지했다. 르네 야콥스나 존 엘리엇 가디너, 필립 헤레베헤 등의 고음악 해석자들이 좋아하는 보이스와 가벼운 질량의 목소리를 자랑하는 고음악계의 강자, 소프라노 임선혜가 등장한 것이다. 요즘은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를 포함한 고음악 외에도 낭만주의 레퍼토리까지 영역을 넓히며 아름다운 목소리와 탁월한 음악성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정력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임선혜와 1976년생 동갑내기인 소프라노 서예리도 타고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유럽 고음악계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정확한 음감으로 현대음악 공연에 자주 초청받으며 고음악과 현대음악이란 대조적인 분야에서 모두 활약, 동시대 작곡가의 전도사 역할도 자처한다. 이 두 소프라노의 특징은 강하지 않은 비브라토와 깨끗한 음성이다. 특히 수정 같은 깨끗한 음성은 소프라노 트로이카의 전통을 계승했다.

한국 성악계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최근 유럽 무대에서 입지를 드높이고 있는 한국 소프라노들은 지금까지 해외에서 활약한 한국 소프라노의 목소리 개념을 뛰어넘어 유럽이나 미국 소프라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던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목소리의 주인공들로 바뀌고 있다. 청명하면서 압도적인 가창으로 객석을 사로잡는 소프라노 임세경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를 거쳐 최근 빈국립오페라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토스카>로 대활약을 펼치며 “위대한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의 가창을 다시 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한편 이탈리아의 위대한 지휘자이자 베르디 스페셜리스트인 리카르도 무티는 한국 소프라노 여지원을 발탁, 201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에르나니>의 주역 엘비라로 출연하게 했다. 여지원은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세계 최고 인기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와 더블 캐스팅되어 최고 기대작 <아이다>의 히로인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최근 국내에서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경기필과의 콘서트에서 베르디의 <맥베드>, <에르나니>,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 등 중량감 있는 레퍼토리를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절묘한 테크닉으로 불러 과연 무티의 신데렐라임을 보여줬다.
이 두 중량감 있는 목소리의 소프라노들은 가장 가벼운 리릭 콜로라투라와 리릭에서, 이제는 리릭, 그리고 리릭 스핀토로 확장해서 한국 소프라노들의 체급 상승을 눈으로 목격하게 한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바그너의 <로엔그린>, 드보르작의 <루살카> 같은 대형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프라노 서선영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푸치니의 아리아 등을 빼어나게 부르는 소프라노 이명주도 다크호스로 유럽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한국 소프라노들의 체급이 전통적인 계보와는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어진 우리 시대 한국 여성 소프라노들이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장일범_ 음악평론가,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겸임교수.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과 MBC 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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