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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1950년대 서울 풍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950년대의 서울을 상상한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겠지만,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꿈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은 현재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삶은 고달팠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던 1950년대 서울의 풍경을 들여다봅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1> 1959년 서울 변두리.

6·25전쟁 후 다들 어렵게 살았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먹고살기가 힘들었고, 폐허가 된 서울은 삭막했습니다. 살 집도 없었고, 전기와 수도도 부족했습니다. 서울시는 1953년 도시계획과를 신설하고 활발하게 정비사업을 펼쳤지만 인식 부족과 재정적인 문제로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서울 변두리에는 무허가 주택이 난립했고, 도로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1955년 무허가로 지은 판잣집이 전국적으로 8만 7,500호에 달했다고 합니다. 치안 당국은 판잣집을 철거하기위해 나섰지만 구호대책 없는 철거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이렇듯 고달픈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살았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풍경

<사진 1>은 1959년 서울 변두리 풍경입니다. 포장 안 된 도로에 택시 한 대가 썰렁하게 달리고 있고, 그 옆으로 리어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2,035대의 택시가 있었습니다. 택시 문에 ‘OO관광’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그때는 택시가 일반 시민이 쉽게 탈 수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당시 신문에 난 기사에 따르면 운전기술 미숙과 교통 도덕의 결여가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인데, 후자의 경우가 절대 다수였다고 하네요. 이 기사에는 “서울은 ‘교통지옥’이라는 지독하게 명예롭지 못한 칭호를 듣고 있다. 매일 ‘누가 치였다’, ‘어떤 사람이 깔려 죽었다’는 보도를 보며 누구나 자신이 금방 희생자가 될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귀중한 어린이들이 뻔질나게 참화의 재물이 된다는 것을 들을 때엔 ‘자동차’ 그놈에 대한 악담과 적개심이 불현듯이 치밀어 오른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택시 대수가 지금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치던 때에도 사고가 많았다는 게 놀랍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습성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들이 끄는 리어카에 탄 어머니의 표정에 삶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리어카에 지게가 실려 있는 걸 보니 아들이 일을 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힘든 삶 속에서도 효심은 강했던 것 같네요. 여유가 있어야 부모님을 잘 봉양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 오른쪽에 터덜터덜 걷고 있는 젊은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듯 보입니다. 58년이 지난 지금도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어서 그런지 사진 속 젊은이의 표정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2> 1950년대 서울 거리.

그 시절에도 강인했던 어머니들

<사진 2>는 1950년대 서울 거리에서 여성들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입니다. 보따리 크기가 무척 큰 걸 보니 그 안에 시장에 내다 팔 곡식과 채소, 바느질 일감 같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왼쪽 여성은 3단으로 잔뜩 쌓고도 중심을 잘 잡고 걸어가네요. 한 가정의 어머니들이겠죠.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도 시키기 위해 무거운 짐을 머리에 지고 거리로 나섰을 겁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한 없는 사랑을 쏟아 붓는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당시 서울역 등지에서 무료로 음식을 나눠줬는데 그곳에도 빈 그릇을 들고 긴 줄을 서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강인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진 속 아낙네들의 표정에는 피곤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만 자식들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은 활기차게 다가옵니다.

사진 김천길_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_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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