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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책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와 <자이 자이 자이 자이> 오해와 불통… 만화가 나서다
※ 주의. 이 코너는 매번 글로 구성된 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알려져 있다.
이건 소통에 다가서려는 불통의 글이다. 글만으론 언제나 부족하다.

소통.
의미.

멀리 있고, 심지어 불가능해 보일 때 그것은 아름답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희망적일까?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이 많아진다. 넘겨짚고, 넘어진다. 싸움은 미움이, 학문은 항문이 된다. 오해의 서식지에 악취가 진동한다. 그리하여 만화(Comics), <언플래트닝>과 <자이 자이 자이 자이>를 소개한다. 동갑내기 두 만화가에 의해, 언어(글)와 비언어(그림)는 이제 하나의 질료가 된다. 지지고 볶으며 의미와 소통을 추동한다.

언어와 이미지의 중첩…‘시각적 사고’의 탄생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닉 수재니스 지음·배충효 옮김, 책세상

그러니까 우리가 매번 의사소통에 실패하는 것은 하나의 양식에 전적으로 매달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랫동안 언어(글)는 사유의 주요 수단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미지는 그 보조 수단에 머물렀다. “사유의 수단이 시야를 규정한다”는 전제에 따르면, 이것이 오해의 시작이다. 만화책 맞냐고? <언플래트닝(Unflattening·평평하지 않게 하기)>은 결코 만만한 만화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등 참고 문헌만 250권이 넘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첫 번째 만화책”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부제가 ‘생각의 형태’다. 익히 상식이라 믿어왔던 것을 주물러 울퉁불퉁하게 주물(鑄物)하려는 게 책의 목표다. 지난해 출간돼 올해 린드워드 그래픽 노블상, 프로즈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그 수준을 인정받았다.
이목구비 없이 잠든 채 동일한 보폭으로 걸어가는 인간 군상이 자주 등장하는데, SF영화 <스타트렉>과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상 등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쿠제가 경계한 이 ‘1차원적 인간’은 바로 “그냥 지금처럼 살지 뭐”라고 자위하는 누군가다. 초월을 잊고 제자리를 고수하게 하는 시야. 만화의 주요 모티프이자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바로 영국 작가 에드윈 에벗의 SF소설 <플랫랜드>(1884)인데, 2차원에 사는 주인공 ‘정사각형’이 3차원에서 온 이방인 ‘구(球)’를 만나 다른 세계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얘기다.
저자 닉 수재니스(43·미국)를 최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육대학원 박사 논문을 만화로 그려 제출해 통과한 최초의 인간이다. 논문 제목이 ‘언플래트닝-다차원적 학습의 시각과 구두적 연구’였다. 그는 이를테면 ‘정사각형’ 무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싶어한 ‘구’다. 언어와 이미지가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 동시에 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표기법과 표상적 이미지의 한계를 넘는 것. 통합하는 것. ‘그러니까 만화야말로 복잡다단한 인간을 표현할 미래의 매체다, 짜샤.’ 그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어이, 그래봤자 넌 네 말만 할 거잖아?
<자이 자이 자이 자이>, 팝카로 지음·이나무 옮김, 이숲

<언플래트닝>이 꽉 찬 만화라면, <자이 자이 자이 자이(Zai Zai Zai Zai)>는 비워낸 만화다. 여기 등장하는 인간들은 서로 의사소통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 그냥 자기가 내뱉고 싶은 말을 하고 행동할 뿐. 일단 줄거리부터 어이가 없다. 무명 만화가가 슈퍼마켓에서 회원카드 없이 물건을 구매하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 용의자가 된다. 경찰이 출동하고, 취재진이 급파된다. 모든 목격자와 추격자, 도망자는 정상이 아니다. 이를테면 도망 중에 주인공은 고등학교 여자 동창 소피를 만나 그녀의 집에 초대받는다. 그녀는 남편을 소개한다. “남편은 열경화성 중합과 저온생물학적 환경에서의 등온선 결정화 작용으로 발생하는 고분자 결합의 발열성을 전공한 엔지니어야.” 겸손한 남편은 더 쉬운 단어를 택해 다시 설명한다. “난 열경화성 중합과 항냉동적 환경에서의 등온선 결정화 작용으로 발생하는 고분자 결합의 발열성 전문가지.” 겸손한 남편이 자랑스러운 소피는 그에게 키스하고, 둘은 주인공이 앞에 있건 말건 2페이지에 걸쳐 격렬한 섹스를 벌인다. 제목도 소통을 조롱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이 자이 자이 자이’는 프랑스 가수 조 다생(Joe Dassin)의 댄스 음악 후렴구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한다.
그림체는 대충 하는 말처럼 불완전하고, 때론 단색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인물의 이목구비와 표정은 희미하며, 컷에 담긴 동작은 극도로 경직돼 있다. 이 어색한 분위기는 만화와 독자 사이에서도 이어진다. 대충 후루룩 읽은 뒤엔 ‘이게 뭔 개수작인가?’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가 팝카로(43·프랑스)의 전략은 69페이지의 이 짧은 만화를 여러 번 읽게 하는 것이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캐내는 방법은 그 밋밋한 표면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뿐일지도. 30분을 투자해 두 번 정독한 결과 알아낸 사실이 있다. 숨겨진 71페이지가 있었다.문화+서울

글 정상혁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책세상, 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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