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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메갈리아 논쟁’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전제 대등하게, 자유롭게, 차별을 지양하는 논쟁으로
지난해부터 SNS를 중심으로 소수자·약자에 대한 혐오와 이에 대한 반대 논쟁이 지속돼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한 성우가 메갈리아4의 프로젝트 티셔츠 사진을 게재하며 불거진 논쟁은 남녀 불평등 문제와 혐오에 대한 대처 방식의 정당성을 포함해, 개인의 의사표현과 노동, 검열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등 유례없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논쟁이 차별과 혐오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3, 4 지난해부터 소수자 및 여성혐오 논란이 SNS를 달구면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주목받고 있다.
5 여성 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지난 6월에 개봉된 이 영화는 한 상영관에서 상영 중 남성 관객이 여성 관객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금껏 없던, 대등하고 팽팽한 논쟁

“삼촌, 메갈리아가 뭐예요?” 고등학교 1학년인 친구 딸이 묻는다. 나는 성역할을 뒤바꾼 가상의 세계를 다룬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가 왜 합성어가 되어 세상에 출현했는지 그 사회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다음 질문이 쑥 들어온다. “그거, 나쁜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 고등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너 ‘메갈’이지?”라는 말이 사상 검증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뉘앙스는 “너 ‘일베’냐?”와 같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베냐?’라는 질문에는 모두가 손사래를 치면서 부정하는데, ‘메갈이냐?’라고 하면 고함을 빡빡 지르며 “그래! 나 메갈이다. 어쩔래! 어떻게 메갈과 일베가 같으냐!”라는 반론을 펼치는 이가 꽤 있다는 거다. 청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페미니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이런 의미다. 우리는 여태껏 ‘어떤’ 페미니즘이 옳은지를 따져본 적이 없다. 페미니즘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일단 ‘욕’부터 먹는다. 여성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라는 단서를 붙이는 언어적 습관을 가진 이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의 논쟁은 두 진영의 찬반 대립이 팽팽하다. 대등한 싸움, 지금껏 없었던 일이다. 재야의 고수들이 이쪽, 저쪽에서 자신의 필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가끔 진흙탕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징조다. 지금껏 페미니즘 논쟁에는 ‘주거니받거니’가 없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너무 빠르고, 주제의 층위가 워낙 다양해서 자칫 논의의 맥을 놓쳐버릴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관계에 대한 여러 해석을 경청한 후 ‘미래를 위해’ 어떤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티셔츠 사진 한 장의 나비효과

한 성우가 SNS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에겐 왕자가 필요 없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사진 2). 이게 난리가 났다. 많은 이가 티셔츠 판매를 통한 수익이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혐오 집단’ 메갈리아 회원들의 소송비용으로 사용되는 점을 비판했다. 이들은 성우가 목소리 더빙으로 참여한 게임을 보이콧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여기까지는 있을 만한 일인데, 게임 회사가 ‘성우 교체’라는 ‘항의에 대한 너무나도 적극적인 응답’을 하는 순간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진다. (성우는 게임 회사와 이후 원만히 합의했다고 밝혔다.) 진보정당도 이를 ‘부당한 해고’라는 측면에서 논평을 발표했고(이후 철회), 일부 웹툰 작가들이 성우를 지지하자 한쪽에서는 성우를 지지한 작가들의 웹툰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메갈리아 회원들이 진행한 티셔츠 판매 프로젝트(사진1)의 수익금은 1억 3,0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와 비례해 이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이도 많아졌다.

논쟁은 불평등한 지표들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논쟁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상식으로 놓고 다른 쪽을 비상식으로 몰아붙이는 구도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피 터지는’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메갈리아’를 비상식으로 보는 쪽은 “여성이 혐오를 ‘당했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그래서 메갈리안은 페미니스트가 결코 아니며 일베와 ‘똑같은’ 수준의 ‘페미나치’일 뿐이다. 반대편의 메갈 옹호론자들은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성혐오는 여성혐오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 전략이다. 애초에 본질이 없었으면 거울에 비칠 혐오도 없다”라고 하면서 메갈리아의 행보를 ‘기울어진 운동장’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저항적 성격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여성혐오는 한국의 오래된 문화를 등에 업고 등장했지만 남성혐오는 그런 문화에 ‘맞서는’ 전략이기 때문에 ‘동급 비교’가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껏 “어딜 여자가!”라는 문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던 이들이 “어딜 남자가!”라는 소리에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남성 중심적 사회의 단면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일갈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 논쟁은 어쨌든 남녀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여러 불평등한 지표가 개선되는 연장선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성별에 따라 특정한 일이 과중되거나, 혹은 일에서 배제되는 건 현실이 어떠하든 미래에서까지 지향될 수 없다. 우리 후손들에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차별 없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2016년의 ‘페미니즘 논쟁’을 발전시켜야함은 굳이 찬반 토론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문화+서울

글 오찬호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몇 권의 책을 집필했다. 최근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분석서>를 출간하고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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