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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멋과 예술의 중심에서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바뀐 명동 유행과 활기로 언제나 분주한 거리
서울 중구 명동은 1970년대 말까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사랑과 우정을 꽃피웠고, 장안의 멋쟁이들이 몰려들어 유행을 퍼뜨렸습니다. 1980년대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후 압구정동, 가로수길, 강남역 등이 ‘젊음의 거리’로 대체됐고, 지금은 ‘유커(游客)’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했지만 명동의 멋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1> 시공관.

1930년대에 지어진 예술의 터 ‘시공관’(現 명동예술극장)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통금이 해제된 크리스마스 날 명동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팔짱을 낀 연인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밤새 거리를 걸었고, 경양식집과 술집 등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며 축제 분위기를 달궜습니다.
명동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한복판에 있는 시공관(市公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인 건축가가 영화관으로 지은 이 건물은 광복 후 서울시의 공관으로 활용됐습니다. 건립 당시 1180석을 갖춘 이곳은 서울의 중요 공연장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6·25전쟁 때 대구로 옮겨갔다가 1959년 뒤늦게 환도한 국립극장은 시공관을 공동 사용하다 1961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며 공보부로 이관된 후 이곳을 아예 전용 공연장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때 시공관이라는 명칭도 없어졌죠.
2004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이 건물을 사들여 5년간의 공사 끝에 2009년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원형을 살리기 위해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30%나 돈을 더 들였다고 합니다.
1948년 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당시 시공관의 영화관람료는 55원이었습니다. 다른 극장들도 같은 요금을 받았고요. 시민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극장이 다른 극장들과 같은 요금을 받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고, 경찰 당국의 경고를 받은 서울시가 5원을 인하한 50원으로 내렸다고 합니다. 기사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시공관이라는 명목에 다른 일반 영리 흥행 극장과 요금이 동일한 관계로 일반은 시에서 시민을 위해 개설한 오락기관인만큼 좀 더 시민에게 특전을 주어 요금도 대중적으로 하여달라는 요구가 많다.”

시절이 바뀌어도 젊음의 열기는 여전한 거리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2> 1960년대 명동 거리.

<사진 1>은 1959년 시공관 앞 거리 풍경입니다. 거리가 을씨년스럽지만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활력이 느껴집니다. 벽면에 ‘제2회 스타아의 밤 대공연-꿈나라에의 초대’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한국영화인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이 공연에서는 가요와 코미디, 만담 등을 펼쳤습니다. 또 ‘유엔은 일본의 강도행위를 응징하라’는 구호도 눈길을 끕니다. 당시 일본이 재일교포들의 강제 북송을 추진하자 정부가 유엔에 이를 제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야간통행금지 위반자들을 이곳에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통금 위반자들은 이곳에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나가지 못했습니다.
<사진 2>는 1960년대 명동 거리 풍경입니다. 미용실과 당구장, 다방, 스탠드바 등이 즐비합니다. 그중 큰 간판을 내건 베엘미용실은 꽤 유명했나 봅니다. 신문에 “어느 미장원은 헤어·스타일을 잘하는가 하면, 특히 마사지를 잘하는 미장원도 있다. 친구들이 마사지를 잘하는 미장원이 있다고 하면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아직 명동에 있는 베엘미장원만큼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이 미용실을 소개하는 한 주부의 글이 실려 있으니 말입니다.
거리는 그리 붐비지 않아 보입니다. 아이를 등에 업은 행상과 좌판을 펼쳐놓고 무료하게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띕니다. 낮이라 그렇겠죠. 밤이면 이 거리에 젊음의 열기가 넘쳐났을겁니다.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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