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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8월호

육아의 휴가를 의미 있게 채우는 방법 가깝고 밝고 맑은 곳으로, 아이와 나들이를
아이와 함께하는 주말은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자주 만들어낸다. 집에 마냥 있을 수도 없지만 서너 살 아이와의 외출은 쉽지 않고,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끊임없이 눈치를 보게 된다. 세 살, 네 살 딸아이와 휴가를 맞아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언가 만질 수 있거나, 때때로 소리를 질러도 되는 곳,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서점, 도서관, 경기장, 공원… 결코 먼 곳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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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문화 체험은 공존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면 주말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즐겁긴 하지만 그 즐거움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평일이면 주말을 기다리고, 주말의 정점을 지날 때는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 아이들은 집 안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줄 수도 없다. 천지분간 못하는 녀석들에게 외출을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라는 아이들은 무언가를 보아야 하고 만져야 한다. 이를 줄여서 체험이라고 한다는데, 요즘은 이른바 아이의 체험을 위한 부모의 ‘체험 삶의 현장’이 바로 주말이라고 한다. 예매 체험, 주차 체험, 식당에서 눈치 보는 체험, 부족한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 체험 등등.
한때 내게도 주말이면 문화예술을 즐기며 한 주의 피로를 풀던 때가 있었다. 예술 영화를 보러 규모가 작은 영화관을 찾고, 보고 싶은 연극을 점찍어 대학로에 가고, 가끔은 소문나지 않은 전시를 찾아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는 했다. 서울은 그러기에 좋은 도시였다. 데이트하기 좋은 도시이고 전철을 타고 아무 데나 뚜벅뚜벅 도착하기 좋은 도시다. 항상 바쁘지만 가끔은 여유로울 수 있는 도시, 그곳의 주말은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주말의 정점에 서서는 주말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육아는 문화 체험과 예술 활동의 가장 강력한 적일지도 모른다. 여유로운 주말은 아이가 태어남과 거의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고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에, 특별히 애국자가 되고 싶은 마음인 것도 아니면서, 네 살, 세 살 연년생 자매를 키운다. 영화도 연극도 전시회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주말, 잠시 숨을 돌리려 틀어준 <뽀로로>와 <핑크퐁>을 보는 아이들은 오늘도 즐거운 표정이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좋아하는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자고.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이를 맡기기에 편한 곳만을 찾지 말고, 진짜 ‘장소’를 찾기로.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찾기로. 그래서 아이도 즐겁고 부모도 행복한 주말을 보내기로.

서점으로, 광장으로, 스포츠 경기장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친숙한 문화 공간은 서점이다. 광화문이나 종로에 있는 서점에 들러 아이들이 볼 그림책도 사고, 아내와 시집이나 소설 코너에 가 새로 나온 책들의 표지를 스윽 만져보는 것도 굉장한 재미다. 아이가 싫증을 내면 밖으로 나가 광화문광장을 거닐며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뒤로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 오래 걷진 못하겠지만 인사동 정도는 아이 손을 잡고, 목말을 태우고 걸어도 좋을 것이다. 대형 서점도 좋지만 근래 많이 생기고 있는 개성 있는 독립 서점도 주말을 즐기는 데 도움을 준다. 신촌역 앞에 있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은 작지만 작지 않은 서점이다. 프렌테 카페 안에 있는 ‘숍 인 숍’ 형태의 서점으로, 책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기에 좋다. 저녁이면 시인의 낭독회나 밴드의 공연이 열릴 때가 많지만, 한낮에 가면 아이들이 머물기에도 어색하지 않게 밝고 맑은 분위기가 있다.
조금은 활동적인 시간을 원한다면 스포츠 경기장도 좋다. 고척동에 새로 개장한 우리나라 최고 돔 야구장은 날씨와 상관없이 쾌적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족끼리 유니폼을 맞춰 입으면, 룰의 알고 모름이나 승부에 아랑곳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꼭 야구장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야구 응원 특유의 엠프 소리,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포함된 요란한 응원이 싫다면 스포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K리그 경기장도 괜찮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1부 리그팀의 수준 높은 경기를, 잠실종합운동장에서는 2부 리그 팀의 열정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다.

따스한 손때와 이야기가 있는 도서관 나들이

아직은 어린 딸아이의 유희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거리낌이 없는 그 반사회성이 지금보다 조금만 잦아든다면-곳곳의 도서관을 다녀볼 참이다. 도서관에는 서점에 없는 사람들의 오랜 손때가 묻어 있고, 경기장에는 부족한 사람들의 내밀함이 있다. 서대문구 독립문역 근처에는 이진아도서관이 있다.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공원 바로 곁으로, 가볍게 나들이하기에 딱 알맞다. 도서관 이름이 ‘이진아’인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숨진 이진아 양의 아버지가 평소 책을 좋아한 딸을 기리기 위해 만든 도서관이다. 지금은 구립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작은 규모지만 내실 있는 구성과 아기자기한 열람실이 그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하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아이 또한 좋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좋아하는 그곳에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교육적이며 정서적인 체험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주말에도 차에 시동을 걸어봐야겠다.문화+서울

글 서효인
시인.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이 있다.
그림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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