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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서울의 거리를 들썩이게 하던 1960년대 시가행진 모두 주목! 특별한 주인공들의 거리행진 풍경
1960년대 서울 시내에서는 다양한 시가행진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시민의 축하를 받는 이 특별한 행사의 주인공으로 국군의 날의 군인부터 미스코리아대회 입상자까지 다양한 이들이 등장했다. 수시로 열리던 시가행진은 1960년대 말, ‘시민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에 의해 그 수가 줄어들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1> 1959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1960년대까지 서울 시내에서 다양한 시가행진이 열렸습니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매년 열렸고, 미스코리아대회 입상자들도 서울 시내를 돌며 시민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베트남으로 파병 가는 군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가행진도 펼쳐졌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오면 오픈카를 타고 거리를 돌기도 했습니다. 또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스물한 살 때인 1974년 한국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오르고 귀국하자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 퍼레이드가 벌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시가행진이 열리면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축하의 박수를 쳐줬지만 지금 도로를 막고 시가행진을 하면 원성이 높을 겁니다. 그만큼 교통 여건이 복잡해졌고, 사람들의 삶도 팍팍해졌으니까요.

국가적인 행사이던 국군의 날 시가행진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2> 1964년 미스코리아 시가행진.

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정해진 건 1956년입니다. 그해 9월 1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6?25전쟁 때 육군 3사단 23연대 병사들이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해 이날을 국군의 날로 공포했습니다. 이때부터 매년 육군?해군?공군?해병대 군인과 육군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육군3사관학교?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높은 건물에서 종이로 만든 ‘꽃가루’를 뿌렸고, 지상파방송에서 행진 광경을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부터는 5년에 한 번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열고 있습니다.
<사진 1>은 1959년 국군의 날 때 간호장교들이 서울 시내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간호장교도 다른 병과 여군과 마찬가지로 국방색 제복을 입지만 당시에는 ‘백의의 천사’답게 하얀색 원피스를 입었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군은 1948년 5월 제1육군병원 창설 이후 그해 8월에 입대와 함께 소위로 임관한 간호후보생 1기입니다. 또 전투병과로는 1950년 6?25전쟁 때 결성된 ‘여자의용군’이 첫 여군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육군 간호장교들은 6?25전쟁 기간에 헌신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6·25전쟁 기간 일일 평균 입원 환자 수는 2만 2800명이었고, 최고 5만 2500명까지 입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육군 간호장교수는 1950년 말 321명이었고, 1953년 말에는 조금 늘어 598명이 됐습니다.

각종 시가행진, ‘시민 불편’을 이유로 각자의 자리로

<사진 2>는 1964년 미스코리아대회 입상자들이 서울 도심에서 시가행진을 하는 장면입니다. 당시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어서인지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구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인대회의 역사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시작됐습니다. 그해 5월 부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겨룬다는 의미의 ‘경염대회(競艶大會)’가 열렸습니다. 그러다 1957년부터 한국의 대표 미인을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정식으로 개최됐습니다.
큰 인기를 누려온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성의 상품화’ 등 논란에 휩싸이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에는 선발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있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왔고, 2001년 MBC 방송을 끝으로 지상파방송 중계가 중단됐습니다.
1955년에는 소방차 시가행진도 열렸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방화강조기간 행사의 일환이었죠. 당시 신문 기사에 “이 시가행진 중에는 각 소방차가 일제히 ‘싸이렌’을 취명할 예정으로 일반은 이에 놀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시가행진이 수시로 열리자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나봅니다. 1967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이듬해부터 국군의 날 행진을 비롯해 시민의 통행에 큰 불편을 주는 각종 단체의 시가행진을 도로사용법에 의거,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김 시장은 “지금까지 각종 단체들이 거리를 점유하고 시가행진을 벌임으로써 시민들의 교통에 큰 불편을 줬다”고 지적하며 “국군의 날 행사도 연병장에서 하도록 건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시민의 정서를 해치는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등의 사이렌도 차임벨 같은 것으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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