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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5월호

당신의 눈을 사로잡을 서커스 기예 7

단숨에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서커스지만 자세히,
오래 바라볼수록 더욱 아름답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한동안 광화문광장 건물 외벽에 걸려 있던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1’의 시구는 어떤 대상을 정성스럽고 면밀하게 바라볼수록 그것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이는 비단 풀꽃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 국한하는 건 아니다. 서커스는 화려한 외양과 아주 짧은 찰나에 고도의 기술이 펼쳐지는 까닭에 관객들이 서커스를 자세히, 오래 바라볼 기회가 많지 않고, 서커스에 대한 정보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의 거리예술축제와 서울서커스페스티벌 등을 통해 여러 서커스 작품이 발표되면서 ‘서커스’로 통칭하는 장르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서커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말을 타고 전차 경주를 벌이던 원형 경기장에서 비롯한 용어다. 당시 기마사들은 전차 경주에 따분함을 느끼는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달리는 말 위에 서는 등 애크러배틱을 접목한 기마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것이 서양 서커스의 기원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에서 말 타는 놀이를 지칭하는 ‘마기馬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고, 이후 ‘곡예曲藝’나 ‘연희演戱’라는 이름 아래 줄타기나 장대타기 등 서커스 기예가 발전돼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서커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유희하기 위해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신체 기술에 다양한 도구를 접목하며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현대 서커스에는 어떤 기예가 있으며, 각 기예의 특징은 무엇일까? 서커스를 자세히, 오래 바라보기 위해 서커스의 대표적인 기예에 대해 알아보자.

뱅상 바랭 <해질녘>(2023)

1. 애크러배틱Acrobatics

모든 서커스 기예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동작으로는 다리 찢기, 점프, 앞구르기, 뒤구르기, 옆돌기, 물구나무서기, 공중 돌기 등이 있다. 이런 기초 단위의 동작은 다양한 조합을 이루면서 변형된다. 민첩성과 유연성, 균형 감각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자기 신체 조절 능력이 중요하다. 애크러배틱 동작은 어떤 서커스 기예 도구 위에서 수행되느냐 혹은 어떤 신체를 활용하거나 몇 명의 퍼포머가 함께하느냐에 따라 폭넓게 확장될 수 있다.

라 시 뒤 부르종 <이노센스>(2019)

2. 핸드 투 핸드Hand to Hand

애크러배틱의 세부 기예 중 하나다. ‘손에서 손으로hand to hand’라는 명칭답게 2명 이상의 기예자가 서로의 손과 손을 접촉해 애크러배틱 동작을 이루는 것이 주요하다. 핸드 투 핸드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베이스’ 혹은 ‘포터’라 부르고, 베이스를 지지대 삼아 그 위로 몸을 세우거나 날아오르는 사람을 ‘플라이어’ 혹은 ‘탑’이라고 한다. 따라서 베이스보다 플라이어의 신체가 더 작고 가벼울수록 동작을 수행하기에 더 유리하다. 플라이어는 베이스의 손이나 머리를 지탱해 양팔 혹은 한 팔 물구나무를 서고, 다리를 찢는 스플릿split 등 애크러배틱 동작을 구사한다. 공연이나 단체의 규모가 큰 경우, 두세 명의 베이스가 수직으로 탑을 쌓은 뒤 플라이어가 그 위에 올라 공중에 던져지고 베이스가 플라이어를 다시 받아내는 고도의 기술을 구성해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연출해낸다. 모든 서커스 기예가 그러하듯 예민한 균형 감각과 집중력, 정확성이 요구되지만, 그 무엇보다도 베이스와 플라이어 사이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예다. 핸드 투 핸드 연습 때 베이스를 맡은 기예자가 플라이어에게 ‘어떻게든 받아낼 테니, 믿으라’고 말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봉앤줄 <잇츠굿>(2022)

3. 와이어Wire, 줄타기

와이어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재주인 ‘줄타기’ 덕분에 국내 관객에게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예 중 하나일 것이다. 서양 서커스 기예인 ‘와이어’와 우리 문화재인 ‘줄타기’에는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큰 차이는 줄의 특성에 있다. 줄타기는 대마 껍질과 줄기를 꼬아 엮은 줄에 연희자가 올라 외줄을 타는 것을 통칭하지만, 서양 서커스의 줄타기는 줄의 특성에 따라 세부 기예가 분류된다.
와이어의 세부 기예 도구로는 강철 케이블을 꼬아 엮은 와이어와 줄이 편평하고 탄성 있는 슬랙라인slackline이 있는데, 와이어나 슬랙라인의 줄을 거는 높이가 높으면 하이와이어highwire 혹은 하이라인highline이라 한다. 또한 와이어의 탄성을 팽팽하게 고정해 흔들림이 적게 만든 것을 타이트와이어tightwire, 줄을 더 느슨하게 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만든 것을 슬랙와이어slackwire로 구분한다. 줄의 특성과 설치하는 공간에 따라 줄 위를 걷는 기예자의 호흡이나 신체 균형을 잡는 방식에도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때때로 줄타기 기예자는 균형을 잡거나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부채나 장대 등의 소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하이라이너인 나탕 폴랭Nathan Paulin은 <익스트림 바디Corps Extremes>에서 “줄이 가로지르는 곳에는 항상 바람이 있고, 어떤 바람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줄타기 기예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앞으로, 뒤로 걸어 나가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팀 퍼니스트 <체어테이블체>(2021)

4. 저글링Juggling

‘저글링’이라고 하면 대중적으로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던지며 돌리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이 기예에 대해 좀 더 개념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물체를 ‘연속적으로 던지고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던지는 물체의 이름을 앞에 붙여 볼 저글링, 클럽 저글링, 링 저글링, 스틱 저글링 등으로 부른다. 저글러들은 던지는 물체의 개수를 늘리는 동시에, 물체를 던져내는 팔의 폭이나 각도, 높이, 신체 회전 등을 통해 무한한 저글링 변주를 시도한다.
한편, 저글링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려는 물체를 끊임없이 위로 (다시) 올려낸다는 저글링의 근본적인 특징을 이용하는 까닭에 저글링으로 분류하는 기예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디아볼로Diabolo’ 또한 저글링의 일종으로 긴 줄에 큰 요요를 걸어 회전시키고 이것을 공중에 올렸다 받는 동작이 주를 이룬다. 여러 개의 네모난 상자를 이어 던졌다가 그대로 받아내거나 양 끝에 잡은 상자의 위치를 이동시키며 뗐다 붙였다 하는 ‘시가 박스Cigar box’ 또한 저글링의 일종이다. 참고로, 투명한 크리스털 볼을 손이나 팔에서 떨어트리지 않고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콘택트 저글링Contact juggling’이라 부른다.

프로젝트 루미너리 <Pulse;맥>(2021)

5. 에어리얼Aerial

문자 그대로 ‘공중 곡예’를 뜻한다. 바닥으로부터 (그게 몇 센티미터든, 몇 미터든) 떨어져 공중 공간을 무대로 사용하는 모든 서커스 기예는 ‘에어리얼’로 분류되며, 공중에 매달아 사용하는 기예 도구에 따라 에어리얼 로프, 에어리얼 스트랩, 에어리얼 후프, 에어리얼 실크, 에어리얼 트라페즈 등으로 나뉜다. 도구를 공중에 높이 매달기 위해 크레인을 동원하기도 하고, 3미터 넘는 높이의 철근 구조물을 설치해 도구를 매달기도 한다.
로프나 스트랩, 실크(천)처럼 공중에 물체를 길게 늘어트리는 에어리얼의 경우, 해당 기예 도구를 몸통이나 팔다리 등 신체 일부에 감았다가 풀어내며 다양한 매듭을 만들어나간다. 도구에 몸을 매달아야 하는 동작이 많기 때문에, 악력과 전완근의 힘을 강하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로프나 스트랩처럼 줄을 늘어트리는 기예에서는 회전력을 사용하는 동작이 많고, 천을 두 줄 늘어트린 에어리얼 실크나 줄이 고리 모양으로 된 에어리얼 슬링의 경우 기예자가 양다리를 유연하게 세로나 가로로 180도 이상으로 벌려 스플릿 자세로 매달리는 동작을 자주 선보인다. 반면, 후프의 경우 줄이나 천에 비해 물성이 딱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크게 사용한다.
길게 늘어트린 두 개의 줄 끝에 수평 막대를 매달아 반동을 이용해 앞뒤로 흔드는 원리를 사용하는 공중그네 또한 대표적인 에어리얼 기예지만, 아쉽게도 공간 확보나 연습의 어려움 등으로 국내 서커스 신scene에서는 아직 만나보기 어렵다.

갈라피아 서커스 <사탕의 숨결>(2019)

6. 차이니즈 폴Chinese Pole

명칭에서 알 수 있다시피 중국에서 유래한 기예로, 직경 5~8센티미터에 높이 3~9미터 정도의 장대를 수직으로 세워 장대 위를 오르고, 회전하고,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일련의 동작을 펼쳐 보인다. 폴 댄스에서 사용하는 폴은 금속으로 돼 있어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맨살을 폴에 접촉하지만, 차이니즈 폴은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쇠막대 표면이 고무 합성 소재인 네오프렌이나 생고무로 감싸져 있다. 그 때문에 차이니즈 폴 기예자들은 마찰로 인한 찰과상이나 화상을 피하고자 최대한 맨살 노출이 적은 의상을 선택한다. 여러 명의 기예자가 하나의 폴에 오르내릴 수도 있지만, 여러 개의 폴을 설치해 단체극을 구성하기도 한다.

코드세시 <해원>(2021)

7. 시어휠Cyr Wheel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거나 유희를 목적으로 공연되던 서커스가 현대화되면서, 서커스 기예자들은 근대의 서커스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기예 도구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커다란 금속 훌라후프처럼 생긴 시어휠은 캐나다 서커스 아티스트 시어Cyr가 만든 서커스 기구로, 기예자가 휠 안에 몸을 위치시킨 뒤 다양한 방식으로 회전시키는 원리를 사용한다. 팔을 뻗어 휠을 잡고 회전해야 하므로 휠은 기예자의 키보다 8~10센티미터가량 더 큰 직경으로 제작한다. 시어휠의 재질은 철·알루미늄·스테인리스스틸·티타늄 등 다양하지만, 휠이 무거울수록 들이는 힘에 비해 회전이 더 쉽게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시어휠은 바닥에 마찰을 일으키는 힘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평평하고 고른 바닥 상태가 필수적이다. 국내 시어휠 아티스트 권해원에 따르면 시어휠이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원심력이 휠 안에 있는 기예자의 몸을 유사 무중력 상태에 놓이게 만든다고 한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외에도 서커스에는 다양한 기구를 활용한 기예가 존재한다. 크고 작은 기구를 사용함으로써 제한적인 신체 능력을 확장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대 서커스에서는 기존의 여러 기예 도구를 변형·결합하거나 새롭게 창작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서커스 기예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변형된 도구와 그 도구를 사용하는 몸의 원리를 탐색하는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 옛날 놀이터에서 다양한 규칙을 정하고 변형시키며 끊임없이 놀이기구를 이해하고 더 신나게 유희했던 것처럼.

박다솔 기록작가·평론가·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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