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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종로의 다양한 시공간의 경계이자 중추, 낙원상가 서울의 시간을 잇는 어른의 낙원
국내 최대의 악기 상점 밀집 지역이자 재래시장과 극장, 한때는 어르신의 놀이터까지 품었던 낙원상가는 여전히 많은 시민이 살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다. 서울의 도시계획에 의해 생겨난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유서 깊은 종로의 중심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다.

지하 재래시장, 1층 도로, 2~3층 악기상가, 4층 극장, 그 위 아파트까지, 낙원상가는 다양한 삶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궁극의 주상복합’이라 할 수 있다.지하 재래시장, 1층 도로, 2~3층 악기상가, 4층 극장, 그 위 아파트까지, 낙원상가는 다양한 삶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궁극의 주상복합’이라 할 수 있다.

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거리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향악단처럼 늘어선 악기상가가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고, 9층부터는 빛이 가득한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최신 주상복합 분양 광고 내용이 아니다. 1968년에 지어진 낙원상가 이야기다. 한때 3층에는 볼링장도 있었고, 4층 극장 건너편에는 유명한 카바레까지 있었다고하니, 춤과 음악, 영화와 스포츠 등 인간의 모든 문화 예술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궁극의 주상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남북으로 놓인 동네들을 보호하는 건물

낙원상가가 서 있는 이곳은 원래 한옥에 둘러싸인 재래시장 터였다. 주변에는 술집과 요정이 많아서 악사들의 왕래가 잦았고, 광복 후에는 종로 거리를 따라 나이트클럽이 들어서면서 연주자를 상대하는 악기점이 일대에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옛날부터 먹거리와 놀거리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낙원상가가 원래 이곳에 세워지게 된 것은 서울시내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 들어서 자동차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시내에 남북 방향의 도로 건설이 절실했고,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건물인 31층짜리 삼일빌딩 계획과 더불어 종로와 을지로를 연결하는 삼일로를 율곡로까지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서울시는 묘안을 짜내는데, 조합을 대표하는 민간 기업이 건물을 지어 시에 기부채납하게 하고, 대신 기업이 낙원상가와 아파트의 분양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낙원상가는 도로위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도로를 만들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며, 그렇게 지어진 건물에 다양한 삶이 모여 마을을 만들어 살고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삶이 모여 사는 곳임에도, 정작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종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낙원상가는 탑골공원 뒤쪽에 물러선 영화 간판이라면, 인사동길을 오가는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에게는 인사동의 동쪽을 경계 짓는 담장이고, 운현궁과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는 북쪽에서는 시끌벅적한 건너편 동네의 소음을 지우는 방음벽이자 노인을 위한 공간이 모여 있는 서쪽에서는 동네를 둘러싼 성벽처럼 느껴진다. 낙원상가는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기 보다는, 동서남북 각각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신기한 것과 푸근한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담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담장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살아있는 담장으로서 말이다.

도시의 다양성을 체화하며 나이 든 빌딩

낙원상가 동편에는 ‘익선동 한옥마을’이 있다.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에 적극 참여한 정세권(鄭世權, 1894~미상)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건설업체인 건양사(建陽社)가 1920~30년대 조성한 한옥마을이다. 가회동 한옥마을이 부자들을 위한 주택단지였다면, 익선동은 서민들을 위한 주택단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한옥이 늘어선 골목길을 걸어가면, 오랜 세월로 빛깔을 잃고 틈새가 벌어진 원래 나무 대문과 함께, 1960~70년대 유행한 파벽돌과 흰색 타일, 80년대 반듯한 붉은 벽돌, 90년대 장식 타일과 시멘트 마감, 최근에 깔끔하게 덧칠해진 회벽과 교체된 보도블록 등 지난 9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004년에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꿋꿋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치 낙원상가의 큰 그늘 밑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익선동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낙원상가 앞에 서면, 또다시 선택해야 한다. 서쪽으로 가면 관광객과 젊음이 넘치는 인사동 길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 가면 떡집 골목을 지나 구한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운현궁과 천도교 중앙대교당, 그리고 북촌으로 갈 수 있고, 남쪽으로 가면 순대국밥 골목을 지나 3·1운동의 발상지이자 최초의 근대적인 공원인 탑골공원, 그리고 언제나 인파로 북적거리는 종로까지 갈 수 있다. 아니면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으로 내려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 잊고 있던 음악의 꿈을 다시 살려볼 수도 있고, 4층으로 올라가 감동적인 옛날 영화 한 편에 취해볼 수도 있다. 낙원상가는 그렇게 다양한 시공간을 나누는 경계이자 넘나드는 포털이다.
종종 남산의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주변 맥락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원상가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낙원상가 덕분에 도시의 건강한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다양한 선택의 기회 자체를 잃는 요즈음, 이렇게 다양한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햇살이 좋은 날을 잡아 길을 떠나보자. 어느 길이든 상관없다. 선택할 수 있음에 진정 행복하기에.문화+서울

글·사진·그림 조한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한디자인(HAHN Design) 대표로 건축·철학·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건축가 조한의 서울탐구> (돌베개, 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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