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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서울-베이징 문화교류 공동 프로젝트 <On the way to Red>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인 ‘빨강’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가 총 7팀이 모여 진행한 문화교류 공동 프로젝트 <On the way to Red>가 지난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 동안 베이징에서 열렸다. ‘Red’에 대해 양국의 시민들은 어떻게 ‘같고 또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에서 지금 ‘빨강’은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1 연기백 <푸른 산>.1 연기백 <푸른 산>.

서울-베이징 문화교류 공동 프로젝트인 <On the way to Red>가 지난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간 북경복장학원에서 열렸다. 한국의 연기백, 플랜 B, 로와정 등 3팀과 중국의 차비, 가보봉, 로오운, 총소당 및 란란의 4팀 등 한국과 중국의 작가 총 7팀이 참여한 이번 전시 <On the way to Red>를 위해 양국 시민의 의식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공통된 형태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 의미와 해석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게 떠오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붉은색’이었다.

서로 다른 의미의 ‘Red’에 대한 기대

당초 이번 행사의 주최자인 북경복장학원에서 제안한 주제는 ‘On the way’ 였다. ‘도정에서’ ‘길 위에서’로 번역되는 이 주제를 통해 베이징 측은 ‘예술을 향한 열정적 과정’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 주제를 받아 들고 몇 번이고 고심한 뒤에 나는 이 주제에 뭔가 구체적인 목적지, 방향, 형태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이징 측에 다시 ‘On the way to Red’를 제안했고, 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 붉은색은 중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는 그 자체가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깃발이며 중국 국민은 모든 공공, 민간의 국제행사에서 붉은 깃발을 국기처럼 사용한다. 중국의 민간 축제는 붉은색으로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장식이나 복식이 붉은색 일색이다. 붉은색은 그들의 사회주의적 혁명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혁명성과 희생을 나타낼 뿐 아니라, 대표적 응원 구호인 ‘자요우(加油, 기름을 부어!)’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타오르는 불길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대한민국에서 붉은색은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색이다. 붉은색이 북한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에서 붉은색은 위험하고도 불온한 색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특히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을 기점으로 붉은색은 일종의 ‘탈태환골’을 겪었다. 한국 국가대표 팀의 유니폼 색상이 붉은색인 점에 착안한 응원단이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내걸고 붉은색 깃발과 티셔츠를 사용하면서 붉은색은 한국인에게도 친숙하고 긍정적인 색깔이 된 것이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의 붉은악마가 응원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깊이 각인되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붉은색의 강렬하고도 친숙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보수적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붉은색을 당색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붉은색은 한국의 공식적인 대표색이 된 것이다.
따라서 양국(양 도시) 간의 문화교류 전시 행사의 주제로 ‘붉은색’을 다루는 것은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번 전시를 진행하는 데 작년과 달리 베이징 측의 파트너 ‘중앙미술학원’이 아니라 ‘복장학원’이 현대미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기관이었으며, 베이징 측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기획자가 없었던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북경복장학원에서는 주로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전통복식 그림, 디지털 문양, 그리고 특이하게도 현대건축과 관련된 작품을 선보였으며 특별히 ‘붉은색’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베이징 측에서는 붉은색은 예술에 대한 정열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받아들였다.

금기와 욕망 사이의 ‘Red’

2 로와정 <매뉴얼>. 3 플랜 B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 로와정 <매뉴얼>.
3 플랜 B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반면 서울 측 작가들은 대표적인 젊은 작가들이 참여해 주제를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로와정은 한국의 아동 교육과정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평가 도구인 ‘붉은 색연필’ 1000개의 심을 녹여 그것으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를 만들어 전시했으며, 벽면에는 색연필 심지를 싸는 종이 띠를 풀어 ‘그(것)들이 폭발하는 온도가 되지 않도록 너무 덥거나 추운 조건에서 다루지 마시오.’라는 문장을 벽에 써놓았다. 문장의 끝에는 붉은 색연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작품의 맥락이 붉은색이 함축하는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평가나 배제의 문제와 관련 있음을 암시했다. 플랜 B는 프린터 헤드를 머리에 달고 있는 각목 로봇들을 설치했는데, 프린터 헤드가 흡사 텍스트를 인쇄하듯 움직이는 동안 이들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동했으며 앞에 놓인 붉은색 선을 넘게 된다. 반면 이들을 움직이는 전원 케이블은 뒤쪽의 전원 플러그에 꼽혀 있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하는 모순된 상황이 전개되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이 작품은 금기와 그것을 넘으려는 욕망 사이의 절묘한 관계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연기백의 <푸른 산>은 구청에서 수거한 불법 현수막에서 붉은색 글씨만을 골라 올을 풀거나 오려내어 설치한 작품이다. 특히 올을 풀어 아래로 늘어뜨린 뒤 그것을 찍은 영상의 위와 아래를 뒤집어 마치 풍경처럼 보여준 작품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적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대체로 현수막에서 강조하고 싶은 강조와 과장을 위해 붉은색을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수공예와 같은 과정에 대입해 만든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양 수도 간의 문화교류 프로젝트가 양국 시민들의 더욱 깊은 상호이해와 호감 증진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차제에 더욱 흥미롭고 깊이 있는 대화와 교류의 장으로 넓혀질 것을 기대하며 이 행사에 참여한 양국의 스태프와 예술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문화+서울

글 유진상
서울-베이징 문화교류 공동 프로젝트 예술감독.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전시기획자, 평론가. 미디어 시티 서울 2012 총감독, 2013 대구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전시감독, 2014 대구 실험예술 전시기획 <수퍼 로맨틱스> 전시감독.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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