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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차가 귀하던 시절, 버스와 택시 사이 ‘합승택시’ 택시가 서민의 발이 되기까지
택시가 많아진 요즘도 늦은 밤에 시내 주요 도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면 한바탕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버스와 지하철 운행이 끊길 시간이 되면 택시 잡기 전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물론 한산한 낮 시간대에는 지하철역 앞에 빈 택시가 줄지어 서 있을 정도로 택시의 공급량은 많아졌죠. 서울의 교통 수요는 1950년대부터 급증했습니다. 당시 택시가 많지 않았고, 요금도 비싸서 서민들은 타기 힘든 교통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돈을 나눠 내며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합승택시에 대한 요구가 높았습니다. 한 신문에 난 기사에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차 한 대씩 대절(貸切)을 해 빈 택시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또 택시 기사의 기세가 높아 소시민들과는 인연이 없는 교통수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진1> (왼)서울역 앞에서 합승택시의 손님을 모으는 어린 호객꾼.<사진1> 서울역 앞에서 합승택시의 손님을 모으는 어린 호객꾼.

교통난 해소 위해 19인승 합승택시까지 마련돼

6·25전쟁 후 우리나라에서 가동할 수 있는 차량은 1000여 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교통난 해소책으로 합승택시제도를 신설했고, 서울시도 1954년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맞추기 위해 ‘9인승 합승택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12인승 합승택시가 나왔고, 1961년부터 16인승, 19인승으로 커졌습니다. 합승택시는 전쟁 때 파괴된 미군 지프와 트럭에서 엔진, 변속기, 차축 등을 떼내어 개조한 후 드럼통을 펴서 만든 차체를 얹었다고 합니다.
<사진1>은 1950년대 말 서울역 앞에서 어린 호객꾼이 “종로! 응암동!”을 외치며 손님을 모으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합승택시는 버스처럼 노선을 정해놓고, 정해진 인원이 타면 출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차 안에 탄 승객들은 빨리 정원이 차서 차가 출발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표정입니다. 일을 마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가려는 가장들의 표정이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사진2> (오)9인승 합승택시의 기사와 호객꾼 소년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사진2> 9인승 합승택시의 기사와 호객꾼 소년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서민의 발이자 누군가의 생계가 달린 ‘택시’

1957년에는 합승택시가 24개 노선 900대로 증가했습니다. 교통부는 기존 200대이던 합승택시를 700대 증차하는 결정을 하고, 서울시에 세부 운영방침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지시 내용은 ▲신규 면허는 일체 불허하고 ▲‘합승’은 법인체에 한해 승차를 허용하며 ▲이미 면허가 발부된 노선은 침범하지 않기로 돼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택시 회사들은 합승 영업을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700대를 늘리기로 했지만 서울시관리과에 제출된 합승택시 영업신청 건수는 90건, 5000대에 달했다고 합니다. 관리과 담당자에 따르면 이처럼 많은 수의 합승택시를 신청한 것은 차주들이 혹시 제외될 것을 염려해 2개 이상 중복해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합승택시 노선은 미아리-원효로, 왕십리-서울역, 서울역-시청앞-제기동, 금호동-영천, 시청-영등포, 신설동-후암동, 종암동-만리동 등이었습니다.
<사진2>는 1950년대 말 서울역 앞에서 9인승 합승택시 기사와 호객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울시 택시승객 수가 계속 늘어나자 1962년 서울합승택시운전수조합은 “하루 평균 1만6000명이 택시를 못 타고 있다”고 주장하며 합승 인원을 11명으로 늘려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했습니다.
‘포니’가 택시의 주류를 이루던 1980년대 초에도 ‘합승’은 성행했습니다. 제도가 미비했던 시절, 기사들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합승을 원했고, 손님들과 실랑이도 잦았습니다. 당국이 단속했지만 합승과 호객 행위는 2000년대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요즘은 길에 빈 택시가 많습니다. 승객 입장에서는 편해졌지만 기사 분들은 수입이 줄어 생활이 너무 힘들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은 없는 걸까요.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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