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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연극 <치정>과 <폭스파인더> 권력의 민낯을 풍자하다
11월 나란히 개막한 연극 <치정>과 <폭스파인더>는 숨겨진 권력의 민낯을 까발린다. 시끌벅적한 난장(<치정>)과 모던한 미니멀리즘(<폭스파인더>),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지만 복종시키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정치(政治)의 치졸함과 허무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다. 개성 강한 극단들이 자신들의 화법을 점차 발전시켜나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권력과 폭력의 계보 vs 권력과 폭력의 속성

1 양손프로젝트의 신작 연극 <폭스파인더>. <br/>
공연정보 : 2015.11.19 ~ 12.06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1 양손프로젝트의 신작 연극 <폭스파인더>.
공연정보 : 2015.11.13 ~ 28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그린피그가 손잡고 초연한 <치정>은 박상현이 극작, 윤한솔이 연출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모자이크돼 일그러진 권력관계의 풍경을 보여준다. 1954년 서울시경 수사부 남덕술 부장은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풍기문란을 문제 삼는다. 대학교수 부인이 남편의 제자와 춤바람이 나 가정이 파탄 난 이야기인데, 불륜을 넘어 퇴폐문화 등 당시 사회 풍속도를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여기에 2015년 가상 온라인 동호회 ‘한국고고학회’ 채팅창 등 온갖 춤(舞蹈) 또는 폭력(武道)으로 통하는 ‘무도’를 무대 위로 소환한다. 막판 전라도와 경상도를 주축으로 현대 조폭의 한국정치 개입사가 끼어들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권력, 그리고 폭력 계보의 경관을 짐작게 한다.
<폭스파인더>는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인 양손프로젝트의 신작이다. 영국 극작가 던 킹의 원작을 이 극단의 박지혜가 연출했다. <치정>이 권력과 폭력의 계보를 짚으면서 이들의 치졸함을 다뤘다면 <폭스파인더>는 권력과 폭력의 속성을 파고들며 이들의 유치하고 졸렬함을 들춘다. 여우를 수색하는 조사원, 즉 폭스파인더 이야기다. 전체주의 사회로 추정되는 연극 속 배경에서, 여우는 사회의 불안감을 조성시켜 권력과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다. 농장은 정부에 수확물의 일정량을 공급해야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이유가 어떻든 여우 탓이다. 여우가 없다며 정부에 반항이라도 할 기색이면, 여우에 홀린 것이 된다.

흩뜨리기의 난장 vs 집중시키기의 미니멀리즘

2 <치정>은 권력과 폭력의 계보를 짚으며 이들의 치졸함을 다룬다.<br/>
공연정보 : 2015.11.13 ~ 28 │ 두산아트센터 Space1112 <치정>은 권력과 폭력의 계보를 짚으며 이들의 치졸함을 다룬다.
공연정보 : 2015.11.19 ~ 12.06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치정>을 보면서 줄거리를 찾거나, 이야기한 단위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 부질없다. 윤 연출은 부러 이야기와 형식을 파편화하는, 흩뜨리기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야기와 캐릭터가 뛰어나와, 시끌벅적한 난장을 벌이는 이유다.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무대를 천장에서 조망하는 조감도 숏이 상영되고, 인물들이 채팅하는 장면에서는 그 스크린에 채팅창이 형성된다. 하나에 집중하면 그외의 것들은 뿌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윤 연출의 판단이다. 관객들이 다양한 이야기와 요소에서 저마다의 집중할 거리를 찾게 해준다. 반면 <폭스파인더>는 하나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끔 만든다. <치정>의 난장과는 반대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의 보여준다. 하얀 무대와 오렌지 빛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오로지 배우들의 감정선만으로 설원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 방점을 찍으며 극을 이끌어간다.
음악과 사운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치정>은 보컬 포함 6인 밴드의 ‘쿵짝’거리는 리듬을 내내 울려퍼지게 한다. 뮤지션 정재일이 사운드 디자이너로 참여한 <폭스파인더>는 끊임없이 내리는 비 등 심리를 알게 모르게 자극하는 사운드만 줬다 뺀다.
극장의 특성을 살려낸 공간 연출도 각기 극의 특성에 부합한다. 위치가 높은 객석이 무대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원형 무대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는 인물들이 종횡무진하며 난장을 만드는, 판을 제대로 깔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폭스파인더>는 블랙박스 극장인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의 특징을 명확히 살려냈다. 블랙박스 극장은, 텅 비어 있는 극장으로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가변형 공연장이다. 이 연극은 객석 50여 석씩을 마주 보게 두고 그 사이에 배우들의 무대를 마련했다. 맞은편 관객들의 얼굴을 살필 수 있는데, 이는 공연의 분위기처럼 감시 아닌 감시 효과를 준다.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성과 함께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도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자유부인>을 쓴 정비석을 비롯해 뭐든 빨갱이로 몰아가며 예술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는 <치정> 속 상황은 현재의 종북, 검열 이슈와 겹친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세세한 것까지 조사가 필요하다며 농장 부부의 성생활까지 간섭하는 <폭스파인더>는 빅브라더를 연상케 한다.
재기발랄함으로 인한 연극적 재미는 덤이다. 여러 시공간을 복고풍으로 뒤섞는 <치정>은 이름이 같다고 1970년대 활약한 ‘봄비’의 솔 가수 박인수를 1950년대로 소환하고, 조폭 계보에 영화 <치정> 속 인물들도 삽입한다. <폭스파인더>는 한국 연극계 코언 형제로 부를 만한 장면들이 존재한다. 긴장감이 극도로 달한 상황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수도사 같은 여우조사원의 어설픔과 설익은 욕망은 코언 형제식 냉소와 유머도 안긴다. 조폭 연기도 불사하는 <치정>의 황미영,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절절하고 애타는’ 팜파탈의 눈빛을 쏘아댄, <폭스파인더>의 농부 아내를 연기한 양조아 등 호연한 배우들 역시 기억해야 한다.문화+서울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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