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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천경자 화백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란 잡음보다 ‘작품’으로 회고해야
진실은 땅에, 아니 강에 흩뿌려졌다. 자녀들 갈등설, 작품 위작설 등 고 천경자 화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 씨를 제외한 유족들이 변호사 배금자 씨를 앞세워 “사자(死者)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음”을 경고한 이후 시끄럽던 목소리들이 잠잠해졌다. 오히려 이들 유가족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보도만 대서특필되는 상황이다.

1 <자마이카의 여인 곡예사>. 2 <스카프를 쓴 엔자>. 3 <황혼의 통곡>. 4 <화병이 된 마돈나>. 5 <백야>.천경자 화백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작품이 다시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10월 30일 천경자 화백의 추모식을 진행했다.
1 <자마이카의 여인 곡예사>.
2 <스카프를 쓴 엔자>.
3 <황혼의 통곡>.
4 <화병이 된 마돈나>.
5 <백야>.

천경자 화백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란

천 화백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천 화백의 죽음과 관련된 논란이다.
천 화백의 죽음이 알려진 건 지난 10월 말, 조선일보를 통해서다.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 씨가 ‘두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당시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한 차례 들른 적이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어 헤럴드경제는 장례식에 맏딸을 제외한 다른 자녀들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자녀들 간 오랜 갈등이 있었음을 이 씨의 대리인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이에 그동안 침묵하던 (이혜선 씨를 제외한) 천 화백의 자녀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작품을 둘러싼 자녀들 간 갈등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서울시에는 천 화백의 추모식을, 문화체육관광부에는 금관문화훈장 추서 취소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다. 아울러 이 씨에게는 어머니의 유골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이 씨의 단독 인터뷰를 뉴욕 특파원발로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씨는 다른 형제들의 기자회견 내용에 서운함을 내비치며 “앞으로 내게 남은 일은 엄마의 유해와 작품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이 씨는 어머니의 유골을 뉴욕 허드슨 강에 뿌렸다고 추가로 밝혔다.
이 씨나 이 씨를 제외한 다른 자녀들 모두 어머니의 유작과 유산을 둘러싼 형제 간 싸움으로 세상에 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사위 문범강(차녀 김정희 씨 남편) 씨를 포함해 자녀들 대부분이 미술계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이른바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있는 인사들인지라 더욱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비보도를 전제로 밝힌 양측의 주장을 근거로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어머니의 작품 및 유산을 둘러싼 것이었는지,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간 갈등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양측 모두 한 어머니의 자녀들이기에 언젠가는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더욱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강조하는 건 양측이 같다. 어머니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혹은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천 화백의 1주기 기일에 자녀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겠다.

의혹과 논란은 있고 추모와 연구는 없는 현재

둘째, 작품 진위와 관련된 논란이다. 사실 언론의 경쟁적 보도를 통해 일파만파 커진 사안은 천 화백의 사망 소식보다 ‘미인도’ 진위 시비다. 이미 1991년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 진품으로 결론을 낸 작품인데, 이 씨를 제외한 유족들이 생전의 천 화백이 그랬던 것처럼 위작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작품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의 당시 학예실장이던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인도 진위 논란(1991년)이 벌어지기 이전인 1990년 출간된 <한국근대미술선집>에 미인도가 실린 것 등을 진품의 근거로 제시하며 유족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유족들은 다시금 성명을 냈다. “정 모 평론가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고인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는데, 이는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될 수 있어 향후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JTBC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 인사가 천 화백에게 보냈다는 자필 메모사본을 공개하며 미인도가 위작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메모에는 “이 위작작품을 저희가 갖게 된 것은 80년도였고 그 과정에서 평론가, 전문가 등의 심의과정이 없었다”고 쓰여 있었다. 방송사는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991년 논란 당시 미인도에 대한 감정서를 작성하거나 감정한 근거가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유족 측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유족들이 변호사를 대동해 법적 조치까지 거론한 이후 정 씨는 공식적으로 대응하진 않았지만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억울함을 강하게 표출했다. 미인도가 진품일 수도 있다는 반대쪽 논리에 대해서는 입을 막겠다는 처사 아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그는 또 법적 조치 따위 운운하며 협박하지 않고 공식으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링을 만든다면 언제든지 그 링 위에 올라갈 준비도 돼 있다고 했다. 이러한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다.
맏딸을 포함 천 화백의 자녀들이 일부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 기자회견, 성명 등의 ‘액션’을 반복적으로 취하는 것을 두고, 세간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들의 말마따나 ‘온 국민이 사랑했던’ 화가의 죽음을 두 달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렸다는 것도 그렇지만, 언론 플레이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정준모 씨는 “성명을 낸 천 화백의 자녀들은 정작 자신에게는 전화 한통 한 적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큰딸이 천 화백의 유골을 허드슨 강에 뿌려버렸을 정도면 억울해할 것도 없겠다. 국민 화가의 유골을 그렇게 처리했으면서 국민한테 우리 어머니 사랑해달라고 할 수 있겠나”며 질책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다. 많은 이가 그의 작품을 사랑했다. 그의 미술사적 업적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천 화백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미인도를 둘러싼 결론 없는 진위 공방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자녀들 갈등은 자녀들끼리 해결하면 될 일이고, 작품 진위를 반드시 가려야겠다면 책임 있는 기관이 나서 그야말로 ‘링’을 만들면 될 일이다. 싸울 사람들은 링 위에서 싸우면 된다. 다만 걱정되는 건, 이러한 소모적인 싸움을 하는 사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 천경자 화백이 남긴 작품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그의 미술사적 가치를 연구하고 이론화하는 작업 말이다. 아직까지 미술관, 갤러리, 혹은 대학교, 어느 한 군데에서도 천경자 관련 학술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연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문화+서울

글 김아미
헤럴드경제 기자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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