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40호 포스터
여유 있게 책을 들춰보고 몇 문장 읽어보기도 하며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 일이 아주 오래됐다. 책이 급히 필요한데 구하러 갈 시간이 없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책을 살 때는 꼭 동네 서점을 이용하는데도 그렇다. 서점에 들어서면 휴대폰을 꺼내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서점에 있는지 찾는다. 책 대여섯 권을 고르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보통은 근래 화제가 된 책, 이름난 작가의 책을 들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작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덜 알려졌으나 좋은작가, 좋은 책을 주변에 속닥속닥 알리는 재미를 느낀 지 오래됐다. <쓰다>를 통해 여러 작가의 단편을 꼼꼼하게 읽는 경험이 소중한 이유다. 책을 구매할 때와 달리 선입견 없이 작품을 대할 수 있다. 그러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숨이 턱 막힌다. 입 밖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들갑을 떨어야 설렘을 가라앉힐 수 있다. [문화+서울] 2020년 7월호에 소개한 최은미 작가의 글을 읽을 때 그랬다. 이름은 익히 들어봤으나 단행본을 집어 들 생각까진 못했던 작가인데 이젠 열렬한 팬이 돼 그의 작품집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쓰다> 40호를 편집하며 김멜라 작가를 알게 됐다.
한때는 물 데우는 가스값 아끼려고 설치한 이중 계량기 때문에 탈세 혐의로 벌금형도 받아봤고, 한때는 은행 이자보다 갑절의 곱절을 더 준다는 입발림에 넘어가 낙찰계에 아파트 중도금 넣었다가 계주가 들고 나는 바람에 세상 등지고 싶은 절망도 느껴봤으며, 한때는 효 사랑 목욕 봉사란 이름으로 동네 어르신들 무료입장을 시켜드리기도 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저녁 뉴스에 국민 절반 노후 준비 안됐다! 라는 통계 발표가 나오면 그 준비 안 된 절반에 자기들이 속하는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형편이 되었다.
<쓰다> 40호, 김멜라 <물오리> 부분
위 인용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이 길지만 리듬이 좋아 막힘없이 읽힌다. 정보량이많은데 조금도 딱딱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을 풀어놓은 듯 자연스럽다. ‘이중 계량기’ ‘낙찰계’ ‘효 사랑 목욕 봉사’와 같은 구체적인 단어가 이 문장을 신뢰하게 하고, 그 신뢰에 힘입어 ‘그들’이 느끼는 무덤덤한 마음의 풍경이 더없이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멜라 작가는 그와 우리가 아는 목욕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목욕탕의 ‘그들’이 이해하는 목욕탕을 그린다. 다른 이들의 삶을 자기 체험인 듯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 취재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감각은 대사에서도 빛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절묘한지. “아빠, 내 친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아버지란 소리가 싫고 입에서 안 나온대. 근데 난 안 그래. 난 잘 나와. 아빠, 고마워.” 더 듣지 않아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헌신을 당장 헤아릴 수 있다.
슈퍼 전파자라는 딱지를 붙여 애가 다녔던 데를 무장 공비 침투로 보고하듯 읊어대는 뉴스와 신문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고 싶었다. 양미 엄마가 양미한테 옮기고 양미가 자기 회사 사람들한테 퍼뜨렸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덕진은 그럭저럭 숨은 쉬어졌다. 삼사일 전만 해도 괜찮다던 벌교 추어탕이 중환자실로 옮겼단 소리를 들었을 땐 이 좁은 땅 어디로 가 숨어 살아야 하나 앞날이 캄캄했다.
<쓰다> 40호, 김멜라 <물오리> 부분
김멜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벌거벗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기 있게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감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됐다고. 그가 그린 목욕탕이 너무나 생생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사건이 자연스레 따라붙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앗아갔다. 평생 어떤 신념과 노력으로 목욕탕을 관리해 왔는지와 무관하게 ‘슈퍼 전파자’의 아버지 덕진은 사람의 눈을 피해 어둠 속을 걸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살뜰하게 관리해도 을주 사우나에는 물때가 낀다. 그리고 가깝게 지내던 다른 목욕탕 사장의 폐업 소식. 누군가에게는 그저 답답하게 지냈던 한 시절로 기억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통째로 빼앗긴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같은 사건을 겪으며 누군가는 남들에 비할 수 없이 많은걸 잃는다. 그리고 보통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이다. 감염병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김멜라의 문장으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글 김잔디 웹진 [비유] 편집자 | 사진 제공 웹진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