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20년 만에 새로 생긴 서점

작은 책방의 수가 근래 2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문화 흐름이 활발한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독립출판물 유통 서점과 편집숍 형태의 책방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제는 그 흐름이 성수동, 장충동, 회기동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발견된다. 책방에 관한 책도 심심치 않게 출간돼 조용한 인기를 끌고 있고, 그중에는 작은 책방 지도를 첨부해 독자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책도 있다. 꼼꼼하게 책방을 기록한 지도가 있다면 여전히 홍대 앞과 연남동을 포함하는 마포구 지역과 이태원 인근이 가장 밀도 높은 곳으로 표시될 터인데, 이제 강남에도 점 하나가 찍힐 수 있겠다. ‘동네 책방’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논현역 인근에 2014년 12월에 문을 연 ‘북티크(BOOKTIQUE)’가 점의 주인공이다. 문학, 인문, 사회, 경제?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편집숍 형태로 구성해 판매하는 이곳은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한 교보문고 이후 거의 20년 만에 강남구에 들어선 서점이라고 한다.
논현동이라는 위치도 의외인데, 서점이 건물(제이빌딩) 지하에 있어 지나가다 쉽게 발견하고 들르기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서점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아니라 의자와 테이블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음료를 주문하는 카운터가 있고, 층고 높은 공간의 정면으로 야외 공연장의 객석을 연상시키는 계단식의 좌석이 보인다. 책방이라기보다 북카페의 인상이 강하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티크가 방점을 찍는 것이 ‘책’보다는 책을 읽는 ‘사람’과 그 ‘문화’이기 때문이다. 독서와 독서 모임이 이 공간의 목적이고 중심이다.
‘출판소셜벤처’라는 수식어와 함께 시작된 북티크는 독서모임 등 책 읽기와 사람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요즘 많이 보이는 작은 책방의 경우 책방 공간이 생기고 오가는 사람이 생기면 낭독 모임, 독서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데, 북티크의 경우 독서 모임을 먼저 기획하다가 사람이 모일 공간이 필요해 서점을 열게 된 케이스다. 오픈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초기의 수식어 대신 ‘콜라보 서점’ 북티크로 통한다. 운영진이 마련하고 열심히 다듬은 공간은 작은 책방이 그렇듯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던 ‘소통’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며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다. 음악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이라면 어느 깊은 골목의 지하 공연장이라도 애써 찾아가듯, 북티크의 손님들은 공간을 알고 일부러 논현역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오늘 낮에는 ‘화요시네마’라는 영화 상영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손님 중에 한 시간 넘게 걸려 찾아오셨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북티크 박경래 점장의 말이다.

1, 2, 3 북티크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책보다 ‘사람’이다. 북티크는 다양한 분야와 성격의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저자와의 만남, 전시, 영화상영, 각종 이벤트 등 사람들이 책과 더욱 가까워질 기회를 마련한다.

밤새 운영하는 ‘심야서점’과 자유롭게 참여하는 독서 모임

현재 북티크에서 진행되는 독서 모임은 일주일에 15개 정도. 역사, 경제, 문학, 영화 원서 등 장르별 책을 읽는 모임도 있고, 사회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을 함께 선정해 읽는 등 주제별 독서 모임도 있다. 북티크의 운영진이 모임을 주관하기도 하지만 외부의 독자가 리더로 선정돼 모임을 이끄는 경우도 있다. 많은 모임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심야서점’과 ‘북모닝’. 심야서점은 매주 금요일, 말 그대로 밤새워 책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운영시간: 오후 10시~토요일 오전 6시), 졸음이 눈꺼풀을 짓누를 새벽 2시부터는 음료로 목을 축이며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북토크’ 시간이 마련된다. 북모닝은 주말을 부지런하게 보내고 싶은 독서 입문자들에게 열린 모임. 별도의 신청 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10~12시까지 개별 독서 시간을 갖고 희망자에 한해 오후 12시~1시 30분까지 북토크에 참여하면 된다. 내 방이나 도서관이 아닌 공간에서 그저 좋아서 밤새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토요일 아침’이라는 최소한의 시간 약속 외에 어떤 제약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북모닝은 책 읽기의 보이지 않는 문턱을 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티크는 이처럼 다양한 기회를 공간에 마련해 좀 더 많은 이들이 책과 문화를 가까이, 쉽게 경험하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기획의 원동력인 ‘독자들의 꾸준한 호응’은 북티크를 비롯해 작고 다양한 서점이 늘어나는 현재의 흐름이 단순한 유행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요즘은 책을 읽고 좋아하더라도 함께 나눌 곳이 없어요. 영화를 보면 사람들과 ‘무슨무슨 영화 봤어? 그거 재미있던데.’ 식의 대화를 나누는데, ‘요즘에 새로 나온 그 책 봤어?’ ‘요즘 그 작가 책 재미있던데.’ 같은 이야기는 나누기 꺼려지는 시대인 것 같아요. 책을 보면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정도랄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책을 읽고 서로 얘기하는 게 당연시되니, 오시는 분들도 각자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고 나누고 싶어서 또 오시는 것 같아요.”(박경래)

출판계는 불황, 책방은 늘어나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인 것은,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책을 정말 잘 안 읽으세요.”(웃음) 언론에서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20년째 새롭지 않은 뉴스와 ‘작은 서점이 뜬다’는 기획 기사가 함께 나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운영자들은 피부로 느끼는 듯했다. 책을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책을 아주 좋아해서 개성 넘치는 책방을 내거나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공존한다. 다만 전자가 많고 후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들이 지닌 문화적인 욕구는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할 만큼 유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겠다. 북티크는 “책 속에서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책과 거기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 등 다양한 문화를 편하게 만날 기회와 공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천천히 조금씩 독서를 둘러싼 문화생태계가 균형을 찾아가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종종 마주쳐요. 한번은 어머니와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들이 함께 왔는데, 어머님은 아이에게 책 읽는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으셨대요. 그런데 반신반의하던 어머니는 아이가 조용히 집중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놀라시더라고요. ‘읽으라’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경험, 그런 문화가 중요하게 느껴지죠.”(박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