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선택의 다양화인가, 극장 관람료 인상을 위한 꼼수인가.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3월 3일부터 좌석·시간대별 가격 차등제를 실시한 이후 두 달 가까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CGV측은 “고객 스스로 관람 상황에 맞춰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폭을 넓혔다”며 ‘가격 다양화’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관객은 사실상 ‘가격 인상’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 한 달이 지나자 우려했던 ‘메뚜기족’ 문제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저렴한 좌석으로 예매한 뒤 비싼 좌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부 관객 때문에 제값을 치른 관객은 분통이 터진다. 왜 이런 상황이 불거진 것일까.
‘조삼모사’격 티켓값 인상, 관객 우롱
가격 차등제 시행을 일주일여 앞두고 CGV는 상영관 좌석을 ‘이코노미존’ ‘스탠더드존’ ‘프라임존’ 세 구역으로 나눠, 스탠더드존을 기준으로 이코노미존은 1000원 낮게, 프라임존은 1000원
높게 받는 요금 체계를 발표했다. 시간대도 종전 4단계였던 주중
시간대를 ‘모닝’ ‘브런치’ ‘데이라이트’ ‘프라임’ ‘문라이트’ ‘나이트’ 등 6단계로 세분화해 가격에 차등을 뒀다.
문제는 가격이 오른 프라임존의 비율이 35~40%를 차지하는 데 반해 가격이 내려간 이코노미존은 20%로 낮다는 점이다.
가격 인상 효과로 귀결된다. 일반적인 관객들이 뒷좌석에 해당하는 프라임존을 선호한다는 점도 가격 인상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시행 후
일주일간 서울시내 CGV 상영관 5곳의 좌석별 예약 상황을 분석한 결과 프라임석은 1만 500명인 데 비해 이코노미석은 87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매율 역시 이코노미석은 평일
1%, 주말 20%이고, 프라임석은 평일 20%, 주말 60%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극장은 일주일간 약 960만 원의 추가 수익을 올렸고 좌석당 평균 430원의 인상 효과를 얻었다.
메뚜기족 양산… ‘관객 혜택’은 어디에
무엇보다 가격 차등제에서 극장 측이 주장하는 ‘관객 혜택’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가격 인하 효과를 보기 위해선 브런치(10~13시)나 나이트(자정 이후) 같은 시간대를 선택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CGV 조성진 홍보팀장은 “평일 오전 브런치 시간대에 주부들이 선호하는 영화를 편성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가적인 마케팅을 활발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다.
가격 인상에 걸맞은 서비스 향상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관객의 영화 선택권 제약, 10분 가까이 억지로 봐야 하는 극장 광고는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극장의 주 수입원은 티켓 값이 아닌 비싼
팝콘이나 광고 수익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관객을 배려하지 않고 극장이 이득을 취하는 부분에 대한 개선 없이 입장료만 올리려는 것은 본질에 어긋난다”며 “가격 차등제는 가격 인상을 위한 정당성 확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불만 사항이 접수된 경우는 거의 없다”던 ‘메뚜기족’ 문제도 가시화됐다. 최근 이코노미존의 좌석을 사고 프라임존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한 관객이 차액을 지불한
사연이 SNS에 올라와 논란의 불을 지폈다. 꼼수를 쓴 ‘메뚜기족’에 대한 비판부터 추가 결제 사전 고지를 하지 않은 극장 측의 잘못과 좌석 이동 제재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까지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다. ‘애초에 관람료 인상을 하지, 왜 관객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1 CGV 좌석도 (소형관 기준). 전체 좌석(117석) 중 가격이 오른 프라임존 좌석(44석)의 비율이 37.6%를 차지한다 (좌석도는 CGV 각 지점 및 상영관마다 상이함. 출처: CGV).
차라리 속 시원히 ‘인상’했더라면
팅 강화의 전초 작업인 셈이다. CGV 측은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 끝에 가격 차등제를
내놓게 됐다”며 “가격 인상 효과가 있는 것은 맞지만 기껏해야 한 좌석당 200원 정도다. 고객 마케팅 세분화를 위한 기초 단계로 추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화 관람료 인상이 정당하다는 의견도 많다.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의 정상진 대표는 “영화관람료가 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률에 한참 못 미친다”며 “가격 인상은 극장 가격 체계의 정상화를 위해선 칭찬받을 일이다. 다만 ‘가격 다양화’로 포장한 것이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고 진단했다. 또 “CGV가 리딩 기업으로서 영화산업을 대표해 관객에게 관람료 인상을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산업 전반에서도 관람료 인상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 영화의 경우 ‘부율’에 따라 투자자·제작사·배급사가 통상적으로 수익의 55%를 가져가는데 이보다 줄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소형 배급사에 따르면 극장 스크린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부율을 10%까지 내리는 ‘딜’을 하기도 한다고.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CGV가 경영적 선택을 한 것일 뿐 가격 차등제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영화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익이 많아져 산업적으로 순기능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 글 이다해
- 파이낸셜뉴스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