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부터 5일 동안 작업하고, 서교예술실험센터와 올림푸스 갤러리 펜에서 두차례 전시하게 될 관계;대명사의 <엉뚱한 사진관-3×4cm: 우리들의 초상> 기획은 명확하다. 구직자가 3×4cm 칸에 담아 제출하는 증명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인 이력서에서 읽을 수 없었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앞모습과 함께 뒷모습 증명사진을 찍는다. 증명사진이 인화되는 동안 구직자와 대화하고 공감대를 기록한다. 그 기록을 전시하고 책으로 제작해 참가자들과 다시 한 번 공유한다. 뒷모습 사진 한 장을 제외한 다른 사진들은 구직자가 무료로 가져간다. 앞모습은 이력서에 쓰일 테지만, 엉뚱한 질문을 받은 뒷모습은 아마도 자기소개서에 적지 않은 이야기로 작가들과 조금 다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관계;대명사팀 작가들을 만난 날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4일 전인 11월 12일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한창 참가자를 모집하던 때였다.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심사 공모 결과를 발표(10월 14일)한 날로부터 한 달 만이라 매우 바쁘거나 들뜬 모습을 상상했는데,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관계’의 대명사가 되고 싶어요
큰일을 앞두고 차분해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이 팀이 프로젝트를 위해 급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문해주(31), 손민지(28), 한누리(27), 서유진(26) 작가 네 명이 문래동에서 처음 만나 “각자 작업 주제는 다르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작업,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함께 꾸려보자”며 의기투합하게 된 지는 딱 2년이 됐다.
“대학 친구인 손민지 작가의 작업실이 문래동에 있어 자주 놀러 가는데, 문래동에서는 작가들 간의 협력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관심을 갖던 상황이었는데 문해주 작가와 서유진 작가를 알게 되어 팀을 구성하게 됐어요.”(한누리)
“돌이켜보면 함께 공부하는 과정이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관계는 무엇입니까?’라는 주제로 리서치를 하고, 함께 몇 가지 프로젝트에 지원했지만 선정은 잘 안되고 힘든 시기가 있었죠.”(문해주)
대안공간 정다방에서 기획전을 열어보라는 제안을 받고 전시 제목을 짓기 위해 검색해보았지만 인터넷 속 ‘관계’는 그들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마침 당시 영어학원을 다니던 문해주 작가가 ‘관계대명사’라는 단어를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지금의 이름을 지었다. “관계에 대해 대표적인 팀이라는 뜻”(문해주)이라고. 그렇게 <관계; 대명사<展(2014. 3. 26~4. 5)으로 소소하게 시작한 전시가 팀 활동으로 이어졌다. 올해 9월 열린 ‘예술 야시장’에서 ‘당신의 침 묻은 작품을 삽니다!’라는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어떻게든 이를 확장하고 싶던 차에 서교예술실험센터 ‘소액다컴’을 목표로 지원을 준비하다 서유진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 공모를 발견했다.
“제가 느끼는 관계;대명사는 경직된 팀이 아니라 유연해요.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번엔 하기 싫다고 하면 빠져도 무방하죠.”(손민지)
“일이 아니라 재미로 하다가 차곡차곡 쌓인 것. 일방적인 소통은 없어요.”(문해주)
“개인적으로는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데, 이 팀원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관계’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해요. 재미없으면 하지 않을 것 같아요.”(서유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에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재미있어요. ‘뒷모습이 뭘까’ 이야기하면 다른 작가가 대답을 하고 계속 주고받는 거죠.”(한누리)
<엉뚱한 사진관>에 지원하려면 ‘기획자 포함 최소 3인 이상으로 구성된 팀’ 이어야 했는데, 주최 측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사업인 데다 작가 단위가 아닌 팀 단위로 모집해본 경험이 없어 우려 속에 공모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 접수율이 생각보다 높았는데, 사업 담당자는 기발한 기획들 속에서 ‘관계;대명사’가 선정된 이유를 “기존에 팀으로 활동해온 만큼 서로 소통이 잘된다는 것이 발표 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계;대명사 멤버 (왼쪽부터) 한누리, 손민지, 서유진, 문해주 작가."
작업은 따로, 기획은 함께
‘관계;대명사’의 구성원은 모두 개인 작업을 하며, 따로 돈을 벌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대표는 팀내 연장자인 문해주 작가가, 지원금의 사용 등을 담당할 총무는 가장 꼼꼼한 손민지 작가가 맡았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세부적인 것은 모두 함께 정한다.
“모든 걸 함께 준비했어요. 밤새우며 프레젠테이션도 연습했고, 대본도 다 같이 짜고, 특히 아이디어 회의가 정말 오래 걸렸네요. 각자 일 끝나고 밤에 모여서 열두 시 넘겨 집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오프라인에서 만나 얼굴 보고 생각 맞춰가는 시간이 오히려 힘이 됐습니다.”(문해주)
기획, 홍보, <엉뚱한 사진관> 운영, 자료 정리는 모두 함께 하지만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각자의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프로젝트 참여자 모두의 이야기로 전시하고 출판할 계획인데, 모두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꺼내기엔 시간이 촉박해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하고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일단 대표를 맡은 문해주 작가로부터 각 팀원의 이야기를 듣고, 작가별로 작업에 대한 설명과 이번 작품의 계획을 들었다.
“폭발적(?)인 성향으로 팀원의 머리 회전에 도움을 주는” 서유진 작가는 염세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졸업 후 겪게 된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쿨해지기 위해 에디션 없는 판화를 길거리에 붙여 뜯기고 밟히는 경험을 했다. 올여름에는 식물이 마르면 조명이 꺼지는 센서를 설치해 작품을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게 전시하기도 했다. ‘조명’에 관해 작업하기에 이번에는 조명 받는 직업을 가진 주변인(연기지망생과 연주자들)을 사진관으로 불렀다.
“원점으로 돌아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탐구하게 만들어주는, 철학적인” 한누리 작가는 불안한 주체성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시스템 속에서 주체성을 찾지 못해 불만을 갖지만 한편에서는 시스템에 편입되길 원하는 모순을 다루고 싶다고.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이력서를 통해 직장이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과정에 주목할 예정이다.
“팀원들 중 작품 퀄리티가 가장 높으며 총무로서 1원도 놓치지 않는 꼼꼼함이 돋보이는” 손민지 작가는 자수작업을 해왔다.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보이는 작업의 특성상 평소에도 뒷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탈북민 관련 단체에서 사진 찍는 일을 했는데 신변 안전 문제로 뒤통수 사진밖에 쓸 수 없었다는 경험담과 함께, 그들의 정착 수기로 작업할 계획을 이야기했다.마지막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낸 문해주 작가는 기존에도 ‘이방인 프로젝트’라는 작업으로 동네 미용실 아줌마들의 뒷모습에 관심을 갖고 이방인으로서 미용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진 작업을 해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를 맺고 세밀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는 그는 이번에 평소 알고 지내는 중장년층 세 명의 일상을 파고들기로 했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이번 프로젝트가 구직자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구직 중인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힘들지?’ 하는 태도가 깔리거나 그런 말을 유도하게 돼요. 섣불리 다루다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풀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기검열이 필요한 부분이죠.”(한누리) 손민지 작가도 작업을 위해 탈북민을 이용한다는 생각이들어 직접 사람을 데려다 사진을 찍는 것은 포기했다. “그런데 이메일 신청서 들어오는 것을 보면 구직자들이 생각보다 내용이 밝고 희망차서 오히려 놀랐어요”라고 한누리 작가는 말을 이었다.
서교에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전경.
관객과 만남의 장 계속 이어갔으면
“프로젝트 아직 안 했잖아요, 하기 전과 한 후의 마음 상태가 다르거든요. 준비할 때는 많이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감동이 밀려오며 고양되죠. 그게 프로젝트의 묘미”라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같이 뛰어들 자신이 있다며.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진행 마지막 날인 지난 11월 20일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찾았다. 벽면에는 온통 사람들의 뒷모습 이력서가 붙어있고, 작가들은 올림푸스에서 협찬해준 사진기를 목에 걸고 분주히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애초 계획했던 100명을 훌쩍 넘긴 260명이 뒷모습 사진을 찍고 증명사진을 가져갔다고 한다. 관람객은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엉뚱한 이력서를 작성하며 같이 온 사람 혹은 작가와 편안하게 대화했다.
“아무리 SNS가 발달했다곤 하지만 실질적 만남에 대한 갈증도 여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프라인 예술 공간도 많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관계;대명사 활동으로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다양하게 확장해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고 싶어요.”(손민지, 문해주)
<3×4cm: 우리들의 초상>展 (엉뚱한 사진관 결과전시)
전시1.
- - 기간
- 2015.11.27(금)~12.10(목) / 11시~20시
- - 장소
-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 전시장
- - 증명사진 무료 촬영
- 전시 기간 중 현장 접수를 통해 증명사진 촬영 / 13시~17시
전시2.
- - 기간
- 2016. 1. 8(금)~23(토) / 9시~18시
- - 장소
- 올림푸스타워 지하 2층 갤러리 펜
- - 전시내용
- 증명사진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사진작품과 ‘관계;대명사’ 4인의 작가가 주목한 인물들의 뒷모습 사진 작품 전시
- - 문의
- 문의 ‘관계;대명사’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gwangaedemyungsa
- 글 이준걸
-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 사진 최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