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작품에만 전념 가능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영화·드라마화 등 2차 저작권 문제, 방송·강연 등 외부 업무를 담당한다. 계약서를 검토하거나 2차 저작권을 염두에 둔 작품 기획도 함께하는 등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도움을 준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송중기, 박보검 등이 소속된 블러썸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계열사로, 소설 <곰탕>을 쓴 영화감독 김영탁도 소속돼 있다.
작가 에이전시의 등장은 작품이 출판으로 끝나지 않고 영화·드라마·뮤지컬 등의 원작으로 활용되는 일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비롯한다. 오디오북 시장이 커지고, 전자책 출판도 늘어나면서 작가들이 신경 써야 할 저작권 문제는 더욱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대부분의 작가들이 2차 저작권 및 외부 행사 문제를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처리한다. 책을 낸 출판사의 편집자가 '매니저' 역할을 도맡는 형식이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전문성 및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설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김중혁은 "한국 출판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세하고, 편집자들이 2차 저작권까지 관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편집자는 책을 만들고 작가와 책에 대해 소통하는 사람이다. 업무량이 과중한 데다 영화나 방송계를 잘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전문 에이전시가 생겨 업무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에이전시에 들어간 작가들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1차적 이유로 꼽는다. 계약서 검토 및 대외 업무를 에이전시에서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처리해주니 작가가 나서서 협상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SF 작가 배명훈은 "글에 집중하고 싶은데, 대외 활동을 하거나 협상이나 교섭을 할 경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라며 "작가들은 대부분 개인으로 활동하는데, 상대는 조직이나 기관이다 보니 협상이 쉽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특정 출판사에 전속돼 책을 내기보다는 여러 출판사를 돌아가며 책을 내는 국내 문학 출판 풍토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홍보하는 일도 어렵다. 배명훈 작가는 "행사를 할 경우 출판사가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만 홍보하는 등 작가의 전체적 활동을 알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이미 기존 출판사가 전담하던 업무는 세분화되고 있다. 국내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출판하며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KL매니지먼트는 신경숙, 한강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현재 신경숙, 공지영, 정유정, 김중혁, 김연수, 편혜영, 김언수 등 유명 작가들이 소속돼 있다. 해외 판권은 KL매니지먼트를 통해 관리하고, 2차 저작권 및 외부 활동은 블러썸크리에이티브를 통해 관리하고 있는 소설가 편혜영은 "해외 출판 에이전시가 생기면서 전문 영역으로 나눠 저작권을 관리해도 된다는 개념이 생겼고, 전문 기관에 맡기는 게 효율적임을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편혜영 소설가는 "최근 계약서 검토를 의뢰했는데, 기존에 습관적으로 넘겨왔던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껏 표준계약서 없이 써왔던 관행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문학 콘텐츠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문학 작가도 에이전시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영화화된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책 표지와 영화 포스터.
지켜보는 출판사, 좁은 국내 시장에서 '수익성' 고민
장은수 이성과감성콘텐츠연구소 대표는 "현재 하나의 콘텐츠를 한 번만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작가가 인세 말고도 자신의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작가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출판사 안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출판계는 '작가 에이전시'의 출현을 주목하면서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문학동네 김소영 편집국장(공동 대표)은 "해외는 전 세계 판권이 있고 시장 규모도 크지만 국내 도서시장에서 작가 에이전시가 어느 정도로 활동 영역을 넓힐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도 사업 확장에 대해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진희 블러썸크리에이티브 본부장은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작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른바 '순문학' 진영의 작가들이 소속된 에이전시는 이제 시작 단계지만, 시나리오 작가나 웹소설 작가들이 소속된 에이전시는 이미 많이 존재한다. 소설이나 문학이 다양한 콘텐츠로 파생되는 '원천 스토리' 역할을 하는 시대가 오면서 국내 출판계에도 지각 변동이 시작된 셈이다.
- 글 이영경_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