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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정형화되지 않은 도전의 장, 서커스 창작집단 ‘봉앤줄’ 한국형 컨템포러리 서커스의 실험
아직도 서커스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커다란 천막 무대와 어릿광대, 동물의 묘기, 공중그네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서커스가 세월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반면,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컨템포러리 서커스라는 이름으로 서커스 안에 여러 장르를 수용하면서 그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태양의 서커스’가 유명하다. 동춘서커스 이후 유명무실했던 한국에서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개관을 기점으로 한국형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대표적인 팀이 얼마 전 공연을 마친 ‘봉앤줄’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서커스 창작집단 봉앤줄 멤버 (왼쪽부터) 강승우, 안재현, 김재섭.

지난 11월 18·19일 서강대 메리홀에서는 무용, 시각, 판소리와 연극, 민중 엔터테인먼트 등 4개 장르의 연출자들과 색다른 협업을 한 서커스 창작 공연 <봉앤줄>이 첫선을 보였다. 다양한 예술 장르 연출자와의 협업이 가장 큰 특징으로 연극 파트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적극이 연출을 맡았고, 소리꾼 이자람이 드라마터그로 참가했다. 무용 파트는 황수현 안무가, 안데스는 시각 파트의 연출, 민중 엔터테이너 한받은 서커스 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 실험작을 내놓았다. 4가지 장르의 옴니버스식 작품 속에서도 연극과 판소리를 결합한 작품은 소리와 재담을 담은 독특한 감각과 취향으로 관객들에게 한국의 전통 연희적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어필했다. 생각보다 아찔하지도 기술이 화려하지도 않았으나 한국 컨템포러리 서커스의 미래를 여는 신선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봉앤줄>의 무대에 선 배우들을 만났다.

먼저 서커스 창작집단 ‘봉앤줄’과 배우들을 소개해주었으면 한다.

안재현 서커스 창작집단 ‘봉앤줄’은 내가 2015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설립했다. 봉앤줄은 일상 속에 꿈을 꾸는 듯한 세상이라는 뜻의 ‘헤테로토피아’ 구현을 목표로 하는데 중력을 거스르는 봉과 줄을 탈 때의 움직임은 몽환적이고, 비일상적인 헤테로토피아 구현을 위해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는 타 장르와 접목되었을 때 더욱 부각된다.
난 서른 살이 넘어 뒤늦게 연극을 시작했다. 늦은 만큼 빨리 인정받고 싶어 했으나 오히려 연극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점차 연극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 우연찮게 서커스 워크숍 공고를 보고 서커스를 시작했다. 나는 봉앤줄(차이니즈폴과 타이트와이어) 퍼포머다.
김재섭 나 역시 비보이를 하다가 잘되지 않았다, 세계대회에 나가는 어린 친구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춤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남자 폴댄스 영상을 접하고 서커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서커스 공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전에 해왔던 비보잉이나 뛰어놀던 것까지도 서커스 안에 결합될 수 있도록 나만의 서커스를 만들고 싶다.
강승우 서커스를 하기 이전에 음악, 연극, 뮤지컬 등에 관심이 있었다. 모든 예술이 좋았다. 한 가지를 깊이 있게 못해 어느 경지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한 가지에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예술을 즐겁게 하고 싶었다. 서커스는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서 선택했다.

서커스를 모르는 연출들이 바라보는 서커스 작품이 흥미롭다. 각 장르별 연출자들과 서커스 창작물을 함께 만들면서 어떤 점이 제일 흥미로웠나?

안재현 태양의 서커스 공연자의 수준이 ‘100’이라면 난 ‘5’ 정도다. 그냥 지금 나의 수준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 가능성을, 나의 위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역시 기예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니 장르별 10~15분 내외씩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생각해냈다. 협업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함께 작업하는 연출자들은 단지 유명한 연출이 아니라 서커스에 대해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의 작업 안에 서커스적인 부분이 뭐가 있는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예술가를 찾았다. 연출과 배우라기보다는 작가와 작가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며 나에게 서커스는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강승우 이 공연 직전에 신체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던 공연을 하다가 이번 공연은 출연하는 시간도 짧고 신체적으로 편하다 보니 내가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이것도 서커스일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무대 위 나의 모습에 공감해주었다. 서커스라는 것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니 이것도 서커스라고 생각했다.

‘봉앤줄’이 앞으로도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이어갈 것인지 궁금하다.

안재현 힙합서커스 ‘봉타줄타’의 자작 랩 중 ‘신체 한계의 확장은 정신 한계의 확장이 되고, 무대에서의 자유로움을 준다’라는 대목이 있다. 신체 한계의 확장은 트레이닝을 통해서 근육들을 꽉 채워 자유로움을 준다면, 정신 한계의 확장은 생각을 계속 비워야만 하더라.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비우고 이야기를 해야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본적인 기예 트레이닝에 집중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물론 신체 한계가 확장되고 다시 생각이 비워지면 언제든 다른 장르와 협업을 이어가고 싶다.

관객들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성향이 짙은 태양의 서커스를 기대하고 한국의 서커스를 바라본다. 한국의 현대 서커스는 어떤 모습이고 당신의 서커스는 무엇인가?

안재현 봉타기 줄타기 동작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일 수 밖에 없다. 더 뽐내고 싶어도 안 되니까, 그럼 정말 위험하니까. 가진 능력만큼만 연기하면 되는데, 딱 한 번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을 하려고 하다 큰 부상을 당했다. 서커스를 하다가 다친 대한민국 1호이지 않을까.(웃음) 내가 하고 싶은 서커스는 단순하게 봉에 오르는데 그 걸음에 내가 살아온 모습이 보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 한국의 서커스, 나의 서커스는 지금 이 순간에 솔직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재섭 서커스는 기예가 기본이 되어 기술로 보여줄 있는 것이 더는 없을 때 컨템포러리 서커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서커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강승우 서커스는 개인적 집단주의, 개인적 다양성의 인정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서커스는 빠르다. 서커스 전문가 양성 과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현대 서커스 창작워크숍을 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틈도 없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력, 잠재력은 대단하다. 전통 줄타기만 봐도 태양의 서커스의 줄타기에 견줄 만하다. 우리나라에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한국 서커스는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단체의 공연이 초대권 없이 전석 매진됐다. 관객을 사로잡은 서커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안재현 가장 큰 매력은 죽음이다. 아슬아슬함. 그것이 어디서 기인할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내 눈앞에서 목격하는 상상을 한다. 떨어질까? 떨어지면 머리가 깨질까? 등등을 짧은 시간 상상한다. 그러다 배우가 성공하면 안도하고 환호한다. 죽음과 살아 있음을 같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 서커스의 매력인 것 같다. 화려함은 대체 가능하나 죽음과 삶을 보여주는 것은 서커스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서커스만의 차별성이다.

앞으로 어떤 서커스를 하고 싶은가?

안재현 관객들이 일상에서 지쳐갈 때 내 공연을 보고 한 번쯤은 이런 걸 도전해볼까를 생각해보면 삶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구체적으로는 매달 공연을 하는 <월간 봉앤줄>을 구상하고 있다. 사람마다 봉과 줄을 타는 방식이 다르기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봉과 줄을 타는 공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그 안에서 다양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함께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봉 위에서 줄 위에서 자유롭기 위해 트레이닝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봉앤줄의 공연 <봉타줄타> (위 사진, 서커스+민중 엔터테인먼트, 봉기보이 B보이 김재섭)와 <봉앤줄> (아래 오른쪽 사진, 서커스+연극, 적극 연출+이자람 드라마터그).

서커스를 하고자 하는 배우나 연출자에게 조언한다면?

김재섭 연출이 서커스를 잘 모를 경우 배우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는 배우가 단호하게 본인의 요구를 이야기해야 한다. 서커스 배우를 위한 위험수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강승우 서커스를 하는 사람보다는 서커스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안전을 생각해야 하지만, 서커스가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죽음을 감수하는 도전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향한 즐거운 여행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동료가 필요하다.안재현 서커스는 이래야 한다라고 미리 규정짓지 말고 뭐든 도전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물구나무를 한 시간씩 서려고 하는 것도 서커스다. 흥미로운 점을 느낀다면 도전해봐야 한다.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서커스다. 물론 죽지않기 위해서 죽도록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봉이나 줄을 타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장소만 있다면 함께 하자.문화+서울

글 최봉민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사진 김창제
공연 사진 제공 봉앤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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