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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뮤지컬 <드라큘라>와 연극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상실한 자의 상처로부터

누군가는 400년 전 사랑을 잃은 아픔에 수백 년 동안 세상을 떠돌며 점차 인간 세계와 엇나간다. 다른 누군가는 급격한 사회 변혁 속에서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한다. <드라큘라>와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각각 원작 소설과 실제 미국의 사회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작품의 창작자들은 무언가 상실한 자의 상처로부터 영감을 받아 극을 완성했다. 아픔과 결핍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지 느껴보고 싶다면, 두 작품에 주목해도 좋겠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김준수
사랑의 상실, 위험한 사랑의 늪 속으로 초대 <드라큘라> | 5. 20~8. 1 |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 <드라큘라>는 1897년 출간된 동명의 원작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뮤지컬만 해도 여러 버전이 있는 데다 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오랜 시간 창작될 만큼 매력적 소재다. 작품은 한마디로 죽음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뒤 400년이 넘도록 그 여자를 그리워하는 순애보 이야기다.
2001년 캘리포니아에서 첫선을 보인 이번 작품은 20년 동안 끊임없이 수정·개작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왔다. 국내에서는 2014년 첫 공연 후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이다.
극의 배경은 19세기 유럽 빅토리아 시대 말엽. 드라큘라 백작은 새로운 피를 찾기 위해 영국으로 이주하는데 우연히 ‘미나’라는 여인을 만난다. 드라큘라는 미나를 보며 400년 전 그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옛 애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극 중 드라큘라는 사랑을 갈구하는 흡혈귀인 동시에 불쌍하면서도 인간적 성격을 표현해야 하는 입체적 캐릭터다. 복합적인 내면에는 기본적으로 사회와 융화하기 어려운 숙명이자 결핍이 녹아 있다. 여느 뮤지컬보다 주인공의 연기력과 넘버 소화 능력 등이 극에 큰 영향을 준다. 이번 시즌 ‘드라큘라’ 역의 김준수는 2014년 초연부터 모든 시즌에 참여했다. 캐릭터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물론 처절하게 절규하는 넘버는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낸다. 전동석은 섹시하고 매혹적 드라큘라를, 이번에 처음 합류한 신성록은 신들린 감정이 담긴 드라큘라를 선보이며 모든 배우가 무게감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극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서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에 드라큘라의 세심한 연기가 필수다.
작품의 판타지적 속성을 극대화하는 건 무대세트와 조명이다. 그야말로 보는 맛을 느끼게 하는 화려한 세트다. 드라큘라 백작의 성·감옥·기차역·병원·납골당 등이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조명과 어우러져 몰입감을 최대로 이끌어낸다. 회전 턴테이블의 활용도 돋보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몬테크리스토> <엑스칼리버> 등 그가 빚은 서정적 선율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에서도 넘버에 푹 빠져들 만하다. 웅장한 맛도 있다. 무더운 여름, 드라큘라가 펼치는 사랑의 늪과 한 속으로 빠져보시길.

연극 <SWEAT 스웨트:땀,힘겨운 노동>무대 배경 술집과 배우들
‘노동의 상실’ 축제에서 파국까지, 그럼에도 다시 연대를 외치다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6. 18~7. 18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시사 주간지 《TIME》이 2019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힌 미국 출신 극작가 린 노티지Lynn Nottage.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소외된 이에 주목해 왔다. 《Ruined》에서는 콩고 여성들의 무자비한 학대 역사를 기록했고, 2017년엔 《Sweat》에서 직접 취재한 미국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의 두 작품 모두 퓰리처상을 탔다.
2020년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공연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 처음으로 관객과 만난 국립극단의 신작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은 그가 두 번째로 퓰리처상을 탄 희곡 《Sweat》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극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레딩Reading’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미국 러스트벨트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곳은 한마디로 공장 노동자의 도시다. 주민들은 몇 대에 걸쳐 가족들이 매일 10시간씩 공장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레딩을 비롯한 공장지대의 쇠락과 함께 이들의 삶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거대 금융자본·신산업에 밀려나던 레딩의 노동자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건 노동의 상실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권을 쟁취하려 격렬히 저항하지만, 이들의 힘은 이전 세대가 일하던 때와 같지 않다. 노조가 말을 안 들으면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통째로 옮기면 그만이다.
극은 마을 공동체가 매일같이 축제를 벌이는, 사교의 장이던 바Bar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극의 주된 배경이 공장이 아니라 술집인 점은 상징적이다.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돼 잠시나마 노동자들에게 안식을 주던 곳은 역설적으로 가장 황폐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가족인 줄로만 알았던 이웃들은 노동자·관리자 등으로 계급이 나뉘며 갈등이 시작된다. 그간 미국 사회 내 묵은 인종 갈등도 함께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의 상실은 폭력을 낳으며 폭발한다.
바텐더로서 늘 한곳에 머물며 포용력을 보여주는 인물 ‘스탠’은 박상원 배우가 맡았으며, 강명주·김세환·김수현·문예주·박용우·송석근·송인성·유병훈 등이 개성적 인물 군상을 대표한다. 한국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타지의 이야기지만, 배우들의 과하지 않은 담담한 연기는 극이 우리네 현실과 어딘가 닮아 있음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장면 전환 때마다 무대를 가득 메우며 흘러가는 방송 뉴스 화면과 공간적 배경인 바의 무대세트가 인상적이다. 도현진 무대디자이너는 “극중바와 실시간 뉴스 등을 통해 2000년, 2008년 그리고 2021년 작품을 보는 한국 관객에게 중첩적 의미를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원작 희곡에서 작가는 세상의 변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뉴스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한다. 안경모 연출가는 “작품을 접하는 건 결국 한국이다.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은 뉴스를 선택하며 관객의 이해도와 공감을 높이려 했다”고 밝혔다.
노동의 상실로 표류하던 인간들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작품 마지막 장면에선 폭력적으로 맞서던 젊은이 3명이 바에 다시 모인다. 이전의 폭력과 광기는 사라졌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뉴스 화면에는 미군의 이라크 철수 합의, 미국 주식시장 폭락 등의 뉴스가 흐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이지만, 작가는 한 줄기 희망이자 작품 제목인 ‘땀’을 슬며시 내비친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으나 극에 참여한 배우들은 한목소리로 “결국 우리는 연대를 외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윤 《동아일보》기자 | 사진 제공 오디컴퍼니(주),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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