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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이화동 ‘책읽는 고양이’ 고양이의 퀘렌시아,
사람의 퀘렌시아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퀘렌시아querencia라고 한다. 바람은 바람대로, 노을은 노을대로, 오랜 수령의 뽕나무는 뽕나무대로, 조형물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길고양이는 길고양이대로, 풍경부터 공간, 오가는 모두가 저마다 아름다울 수 있는 곳. 낙산공원길의 퀘렌시아 ‘책읽는 고양이’를 소개한다.

‘책읽는 고양이’에서 바라본 전경

소소하면서 정겨운 공간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성곽길을 올라간다. 새소리도 들리고, 벤치엔 동네 어르신이 마스크를 낀 채로 앉아있다. 금계국이 한창 피어나고 축성 시기별로 성기기도, 촘촘하게도 쌓인 한양도성 아래 두 번째 암문으로 들어가면 축대 위에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이층집이 보인다. 지난 5월 7일 문을 연 ‘책읽는 고양이’ 다.
이곳 주인장은 서울문화재단 대표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그리고 《씨네21》 편집장을 지내고 소설 《세 여자》를 쓴 조선희 작가다. 책 읽고 이야기하는 공간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5월 즈음에 그가 SNS에 게시한 글의 내용을 옮겨보면, 소소한 프로그램과 모임이 있는 문화 공간, 사람들 만나는 데 필수인 술과 음식,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람 이상으로 막대한 도움을 준 고양이들에 대한 오마주로 공간을 헤아려서 갖췄다고 한다.
이곳엔 주인장과 함께한 추억 속 네 마리의 고양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재롱은 가장 의젓한 모습으로 동그랗게 앉아 서울 하늘 아래를 굽어보고 있고, 2층 유리창 벽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다리를 뻗고 있는 도롱이와 빨간 계단에서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는 티거, 그리고 2층 정면 창문틀에 두 발을 올리고 서 있는 샴고양이 초롱이 있다.
출입구 옆 1층 책꽂이엔 고양이를 주제로 한 책을 비롯해 공간을 돌보는 요일별 아르바이트생 7인의 여성 중 글을 쓴 저자의 책이 꽂혀 있고 주인장인 조선희 소설가가 큐레이션한 책을 담아 그의 취향을 살짝 경험하는 재미가 있다. 1층 벽면을 채우고 있는 고양이 소품장엔 200여점이 전시됐다. 선물받게 된 인연부터 일본에서 말레이시아·중국·홍콩·프랑스·영국·폴란드·스웨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구하며 얻은 이야기 하나하나 정겹다. 또 김미경 옥상화가가 그린 고양이 드로잉을 비롯해 박선미·정은혜 작가의 그림과 고양이 사진, 주인장이 직접 수를 놓은 가방 공예 작품까지 고양이를 테마로 한 작품을 1층과 2층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층 천장과 벽을 장식한 김래환 조각가의 고양이 모양 나무 접시 세트는 이곳에서 만드는 음식과 차 그리고 술에 ‘책읽는 고양이’라는 인증 마크를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은 팬데믹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해야 하지만 ‘책읽는 고양이’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주인장인 조선희 소설가의 사회비평서 《상식의 재구성》 출간 후에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북토크를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층 테라스에서는 대학로 공연의 뒤풀이가 펼쳐지고, 2층 넓은 테이블에서 고양이 테마의 영화 감상을 비롯해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는 현장을 상상해 본다. 자기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해 온 7인 7색의 여성이 요일별 아르바이트생으로 기꺼이 나서고, 모든 요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대타 시스템에 면접을 자청하는 아르바이트 지원자가 줄을 잇는다니 앞으로 얼마나 신나고 재미난 일들이 팡팡 터질 것인가! 물론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는 지금 테라스로 나가서 서울의 노을을 바라본다든지, 공간 어디에서도 누릴 수 있는 서울 풍경과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 1 고양이가 그려진 가방이 벽에 걸려있다.
  2. 2 ‘책읽는 고양이’ 내부에 다양한 고양이 오브제가 있다
개에게는 주인이 있고 고양이에겐 집사가 있다

개는 충성심을 자랑하지만 고양이에겐 자존감이 있다. 고속 압축성장에 지친 현대인은 이제 국가나 조직이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살기보다 그저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뭔가 억눌리고 내심 찜찜하던 구석을 내놓고 남이야 어떻게 보든 말든 신경끊고 그저 생긴 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2020년 6월 말, 정년 퇴임한 필자의 상태도 딱 그랬다. 가족을 위해서,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서, 공공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팬데믹 이후 지구 환경의 보존을 위해서, 위해서, 위해서….‘나’의 성장이니 ‘나’를 위해 어쩌고저쩌고 이런 것보다 ‘그냥 나로서’ 살고 싶었다.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일 중 하나가 ‘책읽는 고양이’의 아르바이트다. 원두 가루를 담아 커피를 내리고,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크로플을 만들고 ‘어른의 맛’을 느끼게 하는 칵테일 하이볼과 모히토를 제조하며 단순하게 지낸다. 바람은 바람대로, 노을은 노을대로, 카페 앞 오랜 수령의 뽕나무는 뽕나무대로, 조형물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길고양이는 길고양이대로, 풍경부터 공간, 오가는 모두가 저마다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 곳. 낙산공원길 ‘책읽는 고양이’가 그곳이다.

책읽는 고양이

주소 서울시 종로구 낙산성곽서1길 18-2

운영 평일 오후 1시~9시, 주말·공휴일 오후 12시~9시

문의 02-766-0425

프리랜서 알바오 | 사진 제공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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