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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복합문화예술공간의 장례식 함께 예술로 목욕하던 행화탕, 이젠 안녕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이 문을 닫았다. 그곳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상혁이 이 지면을 빌려 행화탕과 함께한 때부터 지금까지를 되돌아봤다. 2016년 1월, 그때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운명’이라 말할 수 있는, 행화탕과의 만남이 있었다.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의 시작

행화탕은 1958년 마포구 아현동에 지어진 대중목욕탕이다. 남녀노소 목욕을 하기 위해 찾는 세신 공간이자 주민들이 삶과 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랑방이기도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무렵 여러 기능을 겸한 찜질방·고급 스파와 같은 경쟁 시설이 생겨나면서 쇠퇴했고, 손님이 줄었다. 결국 2008년 폐업했다. 탕과 벽을 허물고 창고나 고물상으로 1~2년 쓰였으나, 오랜 기간 유휴 공간으로 방치됐다. 그리고 2016년 1월의 만남을 통해 2016년 5월 15일부터 2021년 5월15일까지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은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모토로 다양한 ‘예술 목욕’ 활동을 했다. 본래 공간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아 꼭 목욕탕일 필요는 없었다. 반드시 행화탕일 이유도 없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행화탕과의 만남과 그 인연의 실타래가 풀려나가며 동행이 시작됐고, 동료인 주왕택 아이플래닛 대표가 행화탕의 공동운영자로서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과거 몸의 때를 밀던 목욕탕은 예술이란 매개체를 통해 마음의 때를 미는 ‘예술 목욕’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예술로 매개된 수많은 개인이 ‘목욕’을 했고, 기존의 탈의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이나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두는 행위로 전환됐다. 2016년 예술 작업 공간으로 시작했고, 2017년 예술 정신과 활동을 기본 정체성으로 두고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을 지칭하는 문화를 복합적으로 구축해 간다는 지향성을 담아낸 ‘복합문화예술공간’임을 선언해 본격적으로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으로 탈바꿈했다.

‘예술로 목욕합니다’를 실천한 주요 활동

5년 동안 행화탕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프로젝트가 100여 차례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국 나이로 행화탕이 61세 환갑이 됐을 무렵 기획한 <행화환갑>과 <행복 목욕키트> 준비 과정과 모바일 AR 장치를 활용해 장소를 특정하고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공연 <행화탕 장례날> 제작 과정이다. 물론 행화탕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이 유의미했다. 그럼에도 손꼽힌 ‘환갑’과 ‘장례’ 프로젝트 간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는데, 행화탕을 생명과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생각하며 진행한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행화환갑>은 행화탕이 자신이 ‘태어난’ 1958년에서 한 갑자 돌아 마주한 2018년, 문득 ‘끝이 아닌 시작’이란 생각을 염두에 두고 예술가(서울괴담·송광찬·투스토리)를 초청해 공간의 특성과 이야기를 각각 연극과 사진 그리고 음악으로 창작한 예술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기획과 연출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내게 연출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영감을 준 <행화탕 장례날>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함께한 예술가들의 상호 신뢰와 온 마음의 협력으로 만원 세례를 이룬 공연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는 언젠가 맞이할 행화탕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굳건히 하는 초석이 됐다.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커피 전문점 밸런스포인트와 협업해 ‘행화커피’라는 브랜드로 2017년 6월 25일 행화탕의 탈의실 공간을 카페로 운영하기도 했다. 목욕탕만의 독특한 메뉴를 개발하고 워크숍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주력 메뉴로는 ‘살구꽃’을 뜻하는 ‘행화杏花’의 의미에 착안해 직접 담근 수제 행화청(살구청)을 활용한 ‘행화에이드’와 ‘행화차’, 목욕을 연상케 하는 ‘반신욕라때’(떼를 ‘때’로 바꿈), 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바나나탕우유’가 있었다. 행화탕의 시그니처 음료를 흥미로운 멋으로, 독특한 맛으로 즐겨 마시던 손님들이 남긴 많은 사랑의 흔적은 여러 매체와 개인 SNS에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글로 공유됐다. 한 분 한 분께 감사한 마음을 이제야 밝힌다.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행화장례삼일장> 1일차. 사진 송광찬

행화장례 삼일장: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기억합니다’

행화탕은 ‘마포로3구역 제3지구 도시환경정비구역’에 속한 재개발 예정지였다. 2021년 2월, 행화탕 인근 어느 집 담벼락에 ‘이주 개시 안내’ 글을 발견했다. ‘이주 기간: 2021년 1월 25일~5월 24일 문구를 보고 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언젠가 때가 오리라 생각했지만, 마음은 혼란하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문득 ‘죽음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오지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2021년 5월이 오기 전, 마음의 정리를 했고, 자연스레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이 사람들의 발길로 따뜻할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행화장례 삼일장>을 떠올렸다. 그렇게 한국나이로 64세가 된 2021년, 행화탕은 역사와 개개인의 기억 속으로 영면했다. 2021년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행화장례 삼일장>을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2시간씩 3일간 치렀다. 이를 위해 염하듯 행화탕 구석구석 정갈히 정돈해 곳곳을 전부 열었다.
이 모든 것은 상주 혼자 할 수 없는 일임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행화탕과 인연이 귀하게 맺어진 몇몇 지인에게 공동 상주를 사전에 부탁하며 각각의 역할을 요청했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하며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조의를 표한 1,000명 내외의 조문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죽음 이후 치러지는 ‘장례’라는 의례를 죽음 직전으로 시점을 옮겼다. 과거 몸의 때를 미는 목욕탕이 그러했듯, 마음의 때를 밀던 예술 목욕탕이 그러했듯,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을 남녀노소 함께한 까닭에 행화탕은 저마다의 기억에 남아 살아 숨 쉴 것이다.

서상혁 복합문화예술공간행화탕크리에이티브디렉터,축제행성대표 | 사진 제공 축제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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