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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건축물 미술작품 둘러싼 지자체 - 작가 간 갈등누구를 위한 공공미술인가?
지난해 12월 초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 대로변에 있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은 “저승사자가 연상돼 무섭다”는 민원이 급증한 바람에 철거됐다. 원래 2015년 세종시 국세청 앞에 설치됐다가 소방청 앞으로 쫓겨난 작품이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빌딩 조형물은 당초 예술가와 시민들을 위해 세워지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 설치’ 관련 조항에 따라 국내에서 1만㎡이상 대형 건축물을 신·증축하려면 건축비의 1% 이하 범위에서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건축주의 사회 환원을 유도하는 법적 장치로 공동주택의 경우 건축비의 0.1~0.7%, 근린생활시설 등은 0.5~0.7%, 공공건축물은 1%에 달한다.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 부결률 높아진 이유는?

좋은 취지에도 비판이 자주 제기되자 지방자치단체들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강화해 부결률이 높아졌고 이번에는 작가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조각가협회는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경기도의 건축물 미술품 부결로 많은 작가들이 창작활동과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심의 제도 개선 요구와 함께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부결률은 실제로 급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7년 11월 이전에 평균 35%였던 미술품 심의 부결률은 지난해 60%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8월 이전에는 부결률이 37.5%였으나 9월에는 88%, 10월에는 100%로 심의 대상 33작품 중 한 작품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심의 부정과 작가들의 자기 복제를 막기 위해 공정성을 강화하자 부결률이 높아졌다”고 밝혔고, 경기도 관계자는 “작품성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이에 수긍하지 않고 심의위원의 전문성과 공정성 등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첨예화됐다.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조각가협회는 서울시 심의제도의 문제점으로 심의위원 특정 취향의 편중 현상 심화, 고정 심의제(20명 3년까지 연임 가능) 장기화로 인한 부작용 표출, 심의 전문성 결여(조각 전문위원 4명) 등을 들었다. 특히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 심의위원이 9명으로 편중됐다고 지적했다.
두 협회는 “심의위원의 전문성이 부족해 제대로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며 “서울대와 홍익대를 졸업한 작가들의 심의 승인율은 54%로, 그 외 대학 졸업 작가들의 승인율 36%보다 높다. 특히 심의위원과 친분이 있는 특정 작가 승인율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5년 안에 5번 이상 서울시에 작품을 설치한 작가는 심의에서 제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서울시는 기존 윤번제의 전문성, 책임성, 일관성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7년 11월부터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심의위원회를 기존 80명 윤번제(건마다 15명 심의)에서 20명 고정제로 바꿨다. 경기도는 지난해 9월부터 85명 윤번제에서 55명 윤번제로 변경했다.
두 협회 측은 부결률이 높아진 근본 원인으로 ‘선택적 기금제’를 꼽았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작품이 선정되지 않아 건축물에 미술작품을 설치하지 못하면 해당 금액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돼 있다. 두 협회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부결률을 높여 기금으로 받으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로 2011년부터 걷은 기금이 300억 원이며, 공공미술 사업에 쓴 액수는 30억 원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경기도청 관계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관리해 지방자치단체가 활용하지 못한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되는 현행 제도를 지방자치단체장이 설치하는 지역문화예술기금에 출연하도록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이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협회 측은 “경기도가 이석현 의원에게 부탁해 만든 법이라는 소문이 들리는데 이를 해명하라”라고 촉구했다.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

대화와 공개 토론회 통해 문제점 개선 중

두 협회는 서울시에 현재와 같은 심의위원 20명 고정제를 예전처럼 윤번제(80~100명, 심의는 15~20명)로 해 다양한 견해 수렴, 심의위원 구성을 ‘건축 심의’와 같이 전공자 80% 이상(현재는 10~20%) 보장, 심의위원의 학력 및 지역 형평성 고려해 인력 구성, 심의위원 공개와 작가의 작품 설명 기회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경기도에 대해서는 심의위원 선정위원회 구성 및 과정 공개를 요구 중이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부터 작가들과 대화를 통해 심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로 결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초 한국조각가협회와 면담을 가졌으며 이날 심의 가결률은 70%까지 올라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올해 2월에 작가들과 유튜브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으며, 지난 1월 가결률은 40%로 올라갔다. 다만 경기도청 관계자는 “개인 신상 정보 노출 문제로 인해 심의위원 공개는 어렵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글 전지현_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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