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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작가의 방
'작가의 방'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본 게시글은 한겨레신문의 <서울&>에 소개되는 '사람in예술'에 동시 게재됩니다.
김효찬 그림작가 눈 아닌 감정이 그린 그림

“굳이 남들과 똑같이 그려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일상의 한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작가 김효찬은 평상시에도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순간을 포착한다. 그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림체가 정해져 있지 않고 스토리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사람을 그릴 때는 얼굴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풍부하게 보이는데, 그만의 왜곡된 곡선이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작가만의 느낌을 담아 역사를 기록한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가 지난 11월 10일 발간됐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이후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글을 써온 정명섭 소설가와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들은 지난해 봄부터 늦가을까지 종묘, 서순라길, 덕수궁, 정동길, 수성동 계곡에서 내려오는 서촌과 벽수산장 등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기록했는데, 여기엔 3~4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8개의 탐방 코스를 소개했다.
“난독증이 있어 글을 집중해서 읽지 못한다”고 고백한 작가는 약점이 오히려 자신만의 그림체를 완성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느 화가와 다르게 정규 과정을 밟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마스터했으며, 왜곡되어 보이는 그의 그림은 어떤 것보다 대상의 특징을 잘 뽑아낸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미술 학원은 근처에도 못 갔어요. 건설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퇴근할 때 가져온 청사진의 뒷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대학 전공도 미술 쪽이 아니라며 오히려 “지도교수의 그림체가 주입식으로 각인되지 않았던 시간이 나에겐 천운이었다”고 말했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 그만의 그림체를 토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드러냈다.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장인’보다 끊임없이 변하는 모습을 그리는 ‘천재 화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김효찬은 일상의 한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일상드로잉, 인물드로잉, 크로키 등을 강의하고 그림책 작업을 한다. 일러스트 책으로는 <유혹의 학교>, <불교를 철학하다>, <초딩도 안다 당신도 알 수 있다>, <영화, 뉴욕을 찍다> 등이 있다. 그림책으로 <나는 개구리다>, <괜찮아, 방법이 있어>, 지은 책으로 <펜과 종이만으로 일상드로잉>, <펜과 종이만으로 인물드로잉>, <펜과 종이만으로 어반드로잉>, <하나로 연결된 삶> 등이 있다.

이오진 연출가 타지의 ‘소수자 삶’ 조명

“사람들이 당신을 또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경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시안 2세의 쌍둥이 자매가 저지른 살인을 다룬 블랙코미디 <피어리스: 더 하이스쿨 맥베스>(1월 9~19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를 연출한 이오진은 작품의 원작자가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작품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미국 대학원에서 연극 비평을 공부하던 시절에 우연히 접한 한인 1.5세 극작가 박지해의 <피어리스>를 토대로 만든 연극이다.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은 쌍둥이 자매가 소수인종 특별전형에 같은 반의 백인 남학생이 합격하자, 그를 죽이고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를 그렸다. 이 연출가는 “작품이 웃기면 웃길수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의 폭력을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작품은 전장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인을 선택한 그들에게 “과연 무엇 때문에 비극이 초래됐을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듯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파국의 길을 선택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모티브로 따왔다. 이 연출가는 자매가 선택할 수 있었던 대안이 과연 이것뿐이었는지 고민했지만, 자신도 유학생으로서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말하든지 미국 사회는 저를 ‘20대 동양인 여성’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수줍고 약한 존재처럼요.” 이는 최근 솔직함 때문에 사회로부터 죽임을 당해 자살한 여자 연예인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타지에서 당했던 소수자의 삶과 그들이 겪었던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이 연출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청소년·소수자가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무기가 필요할지 고민했어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공감대라도 형성되면 좋겠어요.”

이오진(본명 이정현)은 극작가와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거쳐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연극 비평을 공부했다. <가족오락관>(2009)의 극작가로 데뷔하여 <바람직한 청소년> (2014), <오십팔키로>(2016) 등을 썼고 <페미니즘 청소년극>(2017),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2018) 등을 연출했다.

문병남 안무가‘광주’서 찾은 우리 발레

“자유와 평화를 갈망했던 인간의 감성을 느껴보세요.”

40년 전, 5월 18일 광주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담은 <오월바람>(1월 11~1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문병남 안무가는 이렇게 말했다. 80학번인 그는 광주에서 직접 겪은 악몽을 토대로 두 남녀 무용 학우의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연습실로 가던 도중 금남로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혀 3박 4일간 부대에 감금됐던 기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어요.”
작품은 계엄군에게 맞선 시민군의 항거 속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최루탄이 터지는 현장과 이들을 바라보는 여주인공 혜인 엄마의 시선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절규를 극적으로 담았다. 여기에 연극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 27명 중 연기를 전공한 배우까지 등장시켰다.
이런 시도를 두고 문 안무가는 고전발레와 다른 드라마발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구상한 초창기엔 제목을 광복절인 8·15와 라임을 이루어 ‘518815’로 정했으나 “외부에서 불어오는 억압의 에너지를 뜻하는 바람(wind)과 단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광주 시민의 바람(wish)을 다의적으로 표현해 <오월바람>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뜻을 같이하는 국립발레단의 전·현 무용수들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 ‘엠(M)발레단’을 이끄는 문 안무가는 40주년을 맞는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우리 고유의 역사가 깃든 발레를 제작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미국과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을 돌며 발레를 배웠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발레는 따로 있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정작 우리 발레는 모르면서 엄청난 개런티를 주고 외국의 것만 흉내내는 데 급급하죠. 해외를 돌아다녔지만 정답은 바로 한국에 있더라고요. 우리의 역사와 정신이 깃든 발레를 보여주고 싶어요.”

문병남은 조선대 무용학과를 졸업했다.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1984~1992)로 시작해 국립발레단 지도위원(1993), 국립발레단 상임안무가(1999~2002),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2002~2005),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을 지냈으며, 현재는 엠(M)발레단 대표이자 예술감독이다. 문화부 장관상(1986), 체육부 장관상(1988)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안중근>, <처용>, <남남북녀>, <어느 장군의 죽음> 등이 있다.

이아람 대금 연주자 종묘제례악 재해석하기

“당연하게 전해 내려온 음악이 과연 우리에게 꼭 맞는 옷일까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한국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종묘제례악을 재해석한 <팔음>(1월 17~18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는 15세기 때 세종대왕이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음과 동작으로 종묘제례를 지낸 고려의 예종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이아람, 황민왕, 최인환 등 전통음악과 재즈로 각자의 어법에 익숙한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음악그룹 나무’가 같은 질문을 세종대왕에게 던졌다. 중국에서 건너온 아악(고려·조선의 궁중의식에서 연주된 전통음악)으로 왕가의 제례를 지내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맞는 음악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것처럼 이들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 가치가 후세에까지 계승되지 않을 것이기에” 이 공연을 만들었단다. “개인이 500년 넘게 내려온 민족문화를 짧은 시간에 해체, 조립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래도 지금 이 시대에 통용되는 보편적 정서를 담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었어요.”
이아람 예술감독은 이를 위해 종묘제례악을 원자 단위까지 쪼갰다. 쇠·돌·줄·대나무·바가지·흙·가죽·나무 등 악기를 제작할 때 쓰이는 여덟 가지 재료를 뜻하는 8음이 관념적인 개념이라면, 종묘제례는 공연을 채우는 형식을 뜻한다. 이처럼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만드는 이 예술감독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 생각의 틀을 허물어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팀이 창단된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실험을 이끄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전통예술을 하는 팀이 왜 굳이 종묘제례악을 비틀고 해체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승되는 음악이 다음 세대에도 멋진 모습으로 전승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죠.”

이아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를 졸업했으며 단국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창작하는 대금 연주자이자 프로듀서로,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을 거쳐 현재 ‘음악그룹 나무’ 대표와 ‘블랙스트링’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제18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2002),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연주상(2017), 제36회 KBS 국악대상 연주(관악)상(2017) 등을 수상했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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