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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배우 정동환 연극의 심연을 향한 끝없는 항해
흔히 노년의 배우라고 하면 특정 캐릭터가 연상되게 마련이지만, 배우 정동환은 오히려 이러한 편견을 뛰어넘어 연극계에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만으로 일흔 살을 맞은 지난해에는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했고,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9회 아름다운 예술인상’(SACF)에서 연극예술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는 연기혼으로 연극의 심연을 향해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영원한 현역의 늙지 않는 연기

지난해 11월 8~1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한 이보 반 호브의 연극 <로마 비극>은 독특한 관람 풍경으로 회자될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만든 5시간 30분짜리 대작. 특히 기존 인식과 다른 새로운 공연 관람 경험을 제공했다. 관객들은 러닝 타임 동안 자유롭게 무대와 객석을 옮겨가며 원하는 위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능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로 코앞에서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로마 비극> 첫날 공연에서 한국 연극 관객이라면 흥미로워할 정경이 빚어졌다. 연기하는 외국 배우들 사이에서 배우 정동환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무대 중앙 의자에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배우들의 연기, 관객들의 표정, 무대 전체를 톺아보고 있었다. 연기를 하지 않고 관객들 틈에 섞여 있는 그의 모습 자체가 한국 관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연극처럼 보였다. “이런 것이 ‘연극적 교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밖에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극 안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이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고전이 정말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었죠. 형식적으로 이상을 맞추는 것이 아닌, 과연 연극이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린 1월 10일 낮 대학로에 위치한 대학로 서울문화재단(구.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정동환은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마 비극>의 경험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했다. 갓 연극을 경험한 ‘열혈 청년’처럼 아직까지 설레는 눈빛이었다. “귀한 경험이었어요. 이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공연 개막 석 달 전에 예매했었거든요. 많이 기다렸는데, 크게 만족했습니다. 하하.”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등 산행을 자주 다니는 정동환은 최근 몇 년 동안은 주로 그리스·로마 여행을 다녔다.
그리스·로마 옛 이야기에 빠져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하며 역사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로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호주 작가 콜린 매컬로의 대하소설 <마스터스 오브 로마>도 완독했다. 한국어판이 무려 22권인 작품으로 인터뷰 당일 아침까지 책의 마지막 부분인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읽고 나왔다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의 끝은 결국 연극 이야기로 귀결된다. “역사를 공부하며 여행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극장이에요. 세상의 모든 극장을 다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제 인생이 연극에 빚을 졌잖아요.”
정동환은 연극에 출연하지 않는 날에도 연극에 빠져 산다. 관객으로서 여러 작품을 섭렵하고 다닌다. 작년 9월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국내 초연한 연극 <사랑의 끝>을 인상적인 관람 작품으로 꼽았다. 배우 문소리와 지현준이 주연한 2인극이다. 전반부는 남자의 독백, 후반부는 여자의 독백 등 두 개의 긴 독백만으로 이뤄진 작품인데 두 배우가 각각 1시간가량을 혼자서 쉬지 않고 대사를 쏟아내야 한다. 정동환은 두 배우의 연기와 함께 무대 연출에 높은 점수를 줬다. “두 명만 출연하는데도 공연장의 5분의 4를 텅 비워놓고 무대로 썼어요. 객석도 늘리지 않고 딱 120석만 팔았죠. 이건 위대한 일이에요.”
이미 정동환은 한태숙 연출과 작업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에서 이런 신념을 지키는 순간을 목도했다. 2016년 창극으로도 공연한 <레이디 맥베스>는 한 연출이 이끄는 극단 물리가 1998년 초연했다. 왕위를 찬탈하나 양심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파멸하는 장군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막후 조종자인 맥베스 부인에 초점을 맞춰 새로 구성한 작품이다. 찰흙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채 온몸으로 열연하는 정동환은 이 연극의 초창기부터 계속 맥베스를 맡아왔다. 매번 매진되는 연극이라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게끔 “내가 연기하는 공간 앞에 좌석을 더 마련해라. 내가 관객을 잘 피해서 연기하겠다”라고 한 연출에게 거듭 제안했지만 한사코 거부했단다. “연극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위대한 사람들은 가치가 값보다 우선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겠죠. 연극 정신은 위대합니다.”
2017년 3월 대학로에서 공연한 극단 피악의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연극의 존재 가치, 정동환의 연극 정신을 우직하게 증명한 작품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1880년에 발표한 이 고전은 러닝 타임이 각각 3시간 30분(15분 인터미션 포함)인 개별 공연 1부와 2부로 나눠져 총 7시간 동안 펼쳐지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영혼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해부도(解剖刀)였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이 자칫 긴 물리적인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에 대한 감탄 또는 격려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인 4역을 맡은 정동환이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대심문관을 연기하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추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독백을 무려 20여 분간 쏟아냈던 순간, 무대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마치 그가 홀로 있는 듯이 관객들은 그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작품에는 이뿐만 아니라 연극의 경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수두룩했다. 커튼콜에서 그를 향한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영원한 현역’의 ‘늙지 않는 연기’는 그렇게 꿈틀댔다.

1, 2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 모습.

연극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정동환의 연극에 대한 애정을 지피는 원동력의 땔감은 이 장르 자체를 향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여전히 활활 불타오르는 혼이다. 고입 재수 시절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연극 경연대회를 우연히 보고 호기심이 생긴 그는 중동고 연극반 시절부터 연극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기 위해 돛을 올렸다. 1969년 연극 <낯선 사나이>(연출 유덕형)로 데뷔, 연극 무대는 물론 영화와 TV 드라마 등을 오가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그렇게 바쁘게 연기에만 매진하던 중 몸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2007년 초반 TV 드라마 <연개소문>에 출연하면서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시리즈의 하나인 아서 밀러의 <시련>에 참여했는데 결국 공연장에서 쓰러진 것이다. 당시 어느덧 예순에 가까운 나이. 연극을 과연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자문이 들었지만 결국 그의 항해에서 최종 도착점은 언제나 무대였다. 바로 이듬해, 그해 연극계 최고 수확으로 통한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고곤의 선물>에 출연해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극작가 피터 셰퍼가 1992년 발표한 작품으로 파멸로 치닫는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의 드라마틱한 삶을 통해 연극의 의미, 연극의 사회적 역할 등을 진지하게 고민한 수작이다. 에드워드를 연기한 정동환은 이 작품으로 ‘제19회 이해랑연극상’을 받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극 속에서 ‘연극은 죽었다’고 외쳤지만, 결국 이 작품의 핵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몸부림이었다. 빠르게 돌변하는 세상에서 연극의 가치를 왜 지켜나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숙고하게 하는 작품으로 정동환의 신념이 인물과 작품으로 승화됐다.
정동환은 60대에 접어든 2010년대 들어 더 왕성하게 연극판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국내 연극판에서 노배우는 특정 캐릭터로 소비되게 마련인데 이런 클리셰조차 연기혼으로 무장한 정동환을 피해갔다. 그는 <오이디푸스>, <단테의 신곡>, <메피스토>, <태풍기담>, <햄릿> 등 굵직한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나갔다. 2018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 2인 연극 <하이젠버그>에서는 서른세 살의 나이 차가 나는 남녀가 교감하고 서로에게 위안받는 내용을 30대 후반의 배우 방진의와 연기하기도 했다. 만으로 일흔 살을 맞이한 해이자 데뷔 5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하며 시들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상반기에 공연한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은 같은 해 하반기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의 희곡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거장 연출가 임영웅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단 산울림의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었다. 이런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기념할 만한 일인데 정동환은 작년 11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9회 아름다운 예술인상’(SACF)에서 연극예술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동환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제게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라면서 “매번 생물학적인 연령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대학로는 연극의 산소 공급소

사실 젊은 층에게 정동환은 ‘단명 전문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SBS 드라마 <열혈사제> 등 인기 드라마에서 그는 초반에 세상을 떠나는 역을 주로 맡았다. 하지만 캐릭터의 소비되지 않음은 드라마에서도 이어졌다. <호텔 델루나>에서는 30년 동안 ‘장만월’(아이유)을 보필하며 호텔 델루나를 운영해온 노지배인을, <열혈사제>에서는 방황하는 신부 ‘김해일’(김남길)을 따듯한 보살핌으로 사제의 길로 인도한 스승 ‘이영준’을 연기했다. 두 캐릭터 모두 드라마에서 이야기가 움직이는 데 주요 동력이 되는 인물들이었다. 1월 15일 첫 방송한 드라마 <머니게임>에서는 경제학계의 거목인 경제학자 ‘채병학’을 맡았는데 마찬가지로 2회에서 사망, 단명했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죽음 역시 드라마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는 “제 캐릭터가 죽어서 열매를 맺는다면 연기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아무래도 저희 나이대의 배우는 비중이 작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면 중요하죠”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관록을 TV 드라마가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1월 22일 첫 방송된 MBC 드라마 <더 게임:0시를 향하여>에서는 극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예언가 ‘백선생’을 연기한다.
그래도 역시 정동환의 고향은 무대. 지난해 말 서울문화재단이 올림푸스한국과 함께 진행한 사진 프로젝트 ‘엉뚱한 사진관’의 결과전시 <찍다: 리메이드 인 서울>과 관련해 인터뷰를 한 정동환은 당시 대학로가 있는 동숭동에 얽힌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인터뷰를 진행한 대학로 서울문화재단(구. 동숭아트센터)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민간 시설로 지어졌는데도 상업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작품들을 주로 공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장민호 선생님이 출연하셨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인상 깊었죠. 긴 작품을 줄여서 선보였던 작품인데 아주 잘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사이 대학로의 풍경은 천변만화했다. 정동환도 “무지하게 많이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 변화에 대해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것은 유보했다. 하지만 언젠가 우연히 참여한 정부와 대학로 인사들의 대화에서 그가 강조한 것처럼 대학로가 ‘연극의 산소 공급소’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한 건물만이라도, 특히 대학로에서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건물에서만이라도 음식점, 술집 없이 공연장만 들어섰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수익성이 좋은 가게에 건물 한편을 임대 주고 극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연극인, 관객들에게 극장은 일종의 성지(聖地)와 같은 곳이에요. 극장이 곧 절일 수도, 교회일 수도 있는 거죠. 경제적으로 혼재될 수 있는 흐름에 놓여 있는 것은 잘 알지만 산소 공급소만큼은 같이 뭉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같은 극장은 우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1960년대에 지어졌는데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어요. 그런 극장을 우리가 안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죠.”
어느덧 칠순이 넘었지만 정동환은 지금도 자주 산에 오른다. 그는 산에 오르는 것을 도전에 비유했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같은 높은 산에 못 오를 수 있지만 그곳을 오르고자 시도하는 것 자체가 귀한 일이고 앞으로도 자신은 그런 마음으로 연극에 임하고 싶다고 했다. “못 오를 것 같은데 왜 바보같이 도전하느냐는 소리도 들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실용적인 것, 돈에 앞서는 가치들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몸보신하면서 몸을 숙이고 있는 것이 더 비참하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하릴없이 세월이 흘러가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더 노력하게 되는 거죠. 그것이 칠순이 넘어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제 원동력입니다. 그 가치를 함께 귀하다고 여겨주는 분들이 있는 한 같이 지켜나가고 싶어요.”
50년 동안 테마로 삼아온 연극의 심연까지 들어가 통달한 눈빛으로 아직도 형형한 빛을 내고 여전히 분명하게 발음할 수 있는 정동환의 에너지는 더 오래도록 항해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어디에선가 시작된 항해는 언젠가 끝나게 돼 있지만, 정동환의 항해지도만큼은 계속 그려나갈 공간이 남아 보였다. 한때 자신을 “연극에 대한 광신자라고 비웃어도 좋다”고 고백까지 했던 그는 이제 사제처럼 보였다. 여전히 성지를 지켜야 하는 사명이 그에게 남아 있으니까.
글 이재훈_뉴시스 기자
사진 손홍주
사진 제공 극단 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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