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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기준 없는 공연 관람 등급공연 관람 등급, 믿어도 될까?
‘손님들이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추행한다. 광기 어린 과학자는 자신의 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5월 19일 막을 내리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줄거리다. 연쇄살인에 성매매 이야기가 나오는 이 뮤지컬은 몇 살부터 관람이 가능할까? 만 7살 이상이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관람 등급은 또 있다. <지킬 앤 하이드>보다 잔인한 내용이 더 많이 나오는 뮤지컬 <잭 더 리퍼>도 8살 이상 관람가다. 3월 막을 내린 이 뮤지컬은 연쇄살인범이 성매매 여성만 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이 내내 펼쳐졌다.

주먹구구식의 관람 등급 결정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적어도 15살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 초등학생 관람이 허용된 걸까. 드라마, 영화와 달리 공연 관람 등급은 제작사에서 알아서 정하는데 세밀한 고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폭력성, 선정성 등 7가지 요인을 고려해 전체 관람가, 15살 이상, 19살 이상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공연은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미취학 아동 관람 불가), 중학생 이상으로 뭉뚱그려진다. 특히 대형 뮤지컬은 <미스터 쇼>처럼 선정성을 흥행 코드로 내세운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내용과 관계없이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로 정한다.
이는 수익성을 고려한 이유가 크다. 한 대형 뮤지컬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대형 뮤지컬의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관람 연령대를 낮추는 게 유리하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 온 가족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작이 있는 뮤지컬은 문화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 브로드웨이의 관람 등급을 그대로 따르기도 한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초창기 한국 뮤지컬은 라이선스 시장이 주도했기 때문에 현지 관람가 기준을 그대로 통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킬 앤 하이드> 제작사는 “2004년 초연 때 정한 연령대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이 없다 보니 같은 작품이라도 지역에 따라 관람 가능 연령대가 달라지는 촌극도 벌어진다. 뮤지컬 <빨래>의 경우 서울 공연은 14살 이상이지만 지방 공연은 8살 이상인 곳도 있다. <빨래> 제작사 관계자는 “지방은 각 지역 프로덕션이 관람 연령대를 다시 정한다. 가족 단위 관객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관람 가능 연령대를 낮춰야 수익적인 측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령대를 낮춘다고 내용을 완화하는 건 아니다. 애초 초등학생을 배려해 등급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이 보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그대로 공연된다. 아이들의 도전을 그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17년 공연 당시 특수 담배이기는 하지만 흡연 장면이 많아 아이들을 데려온 어른들이 불편해하기도 했다. “1부에서만 다섯 번이 넘을 정도로 담배 피우는 신이 많다. 연기가 위로 올라와 1부가 끝날 때쯤에는 목이 아프다”는 식의 관람 후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 지킬이 성매매 여성 루시의 몸을 더듬는 장면이 있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데다가 번개가 치며 하이드로 바뀌는 순간 등 아이들이 모르고 보면 깜짝 놀랄 장면도 있다. 제작사들은 “예매처 공지 사항에 ‘어린이와 청소년 관람 시 보호자 및 인솔자의 동반 관람이 필요하다’는 식의 안내 문구를 넣는다”지만, 언제 어떤 장면이 나올지는 어른 관객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눈과 귀를 가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관련사진

1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2 <잭 더 리퍼>의 한 장면. (엠뮤지컬컴퍼니 제공)

관객이 완성하는 장르, 관객의 입장에서 기준 정해야

공연은 드라마와 영화와 달리 무대에 오르기 전 공개되지 않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사전 심의는 규제나 검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1988년 공연윤리위원회가 폐지되고, 1999년 사전각본심의 제도가 폐지된 것도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공연업계가 모여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한 공연 제작사 대표는 “미투 운동 이후 <맨 오브 라만차>에서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자체적으로 없앴던 것처럼, 현재 시점에서 등급 역시 적절한지 논의해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규제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관객은 공연의 제3요소라는 점에서도 이런 의견이 힘을 받는다. 브라운관 앞에서 시청하고, 스크린을 거쳐 영상을 보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공연에서 관객의 역할은 중요하다. 관객이 몰입해서 지켜봐야 극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빨래>가 올해부터 기존 13살 이상이던 관람 가능 연령대를 14살 이상으로 올려 책정한 것도 관람 태도 때문이다. “작은 극장이다 보니 관람 태도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극에 영향을 받는다. 다른 관객과 배우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등급을 올렸다.” 어른들의 동화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봐도 무방한 낭독극인 <어린 왕자> 역시 주요 타깃 층인 어른 관객들이 보다 집중해서 즐길 수 있도록 관람 가능 연령대를 12살 이상으로 정했다.

글 남지은_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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