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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작가의 방
'작가의 방'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본 게시글은 한겨레신문의 <서울&>에 소개되는 '사람in예술'에 동시 게재됩니다.
정은혜 작가생존을 위한 ‘예술 소통’

“예술은 아름다움을 넘어 생존을 위한 소통의 언어죠.”

국내 유일의 장애 예술가 창작공간인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 기획전시 <무무>(10월 16일~30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 참여한 정은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얼굴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정 작가에게 모델들이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에이 다 예쁘면서…”라고 웃으며 둘러댄다. 최근 서촌에서 진행된 전시 <은혜씨의 얼굴>에선 각자의 표정을 담은 2천 명의 얼굴을 전시했다. 2017년 도심과 북한산을 잇는 우이신설선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달리는 미술관>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1천 명이었는데, 벌써 2천 명을 돌파했다니…. 매일 한 명씩 늘려간 셈이다.
몇 년째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고행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만화가인 어머니의 화실에서 우연히 어깨너머로 그리게 됐어요.” 이후 한 동네의 벼룩시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단다. 그의 작품은 여느 그림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가는 연필로 스케치한 얼굴은 마치 끊어지지 않은 실타래처럼 하나로 이어진다. 각각의 특징이 과장되게 그려진 2천 명은 좀처럼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없다. 주로 부정적인 면을 감추는 데 급급한 것과 달리 ‘예쁘든 안 예쁘든 각자의 개성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되묻는다. “낯설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만으로도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 되죠. 차가운 눈빛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의 병까지 얻거든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그는 그림을 접하기 전에 겪었던 일상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매일 그린 수천 명의 얼굴을 통해 고통받았던 시선강박증뿐만 아니라 말더듬증과 틱 장애까지 이겨냈다고 한다. 2천 개의 미소를 담은 것에 대해 그는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 속의 발달장애인이지만, 인간 본연의 ‘사랑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요.”

정은혜는 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이다. 주요 전시로는 <은혜씨 천명의 얼굴>(2017, 문호리 리버마켓), <달리는 미술관>(2017, 우이신설선), <SPRING>(2019, 양평 폐공장), <은혜씨의 얼굴>(2019, 서촌 갤러리비) 등이 있으며,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포럼 ‘같이 잇는 가치’(2019, DDP) 등에 참여했다. 단편영화 <다섯 개의 시선>(2006)에 출연했으며, 컬러링북 <네 마음을 말해봐>(2016)를 펴냈다.

최여정 작가 연극 이해의 출발은 ‘읽기’

“마지막으로 연극 본 게 언제예요?”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된 <이럴 때, 연극>(2019)의 저자 최여정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공연 분야의 마케터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연극을 보게 할까?’라는 고민을 놓지 않았다. 한때는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연극열전’부터 창작극의 예술성을 알리는 ‘남산예술센터’까지 상반된 경험도 했지만 늘 ‘전공자를 위한 이론서가 아니라 초보자를 위한 연극 입문서는 왜 없을까?’를 고민해왔다.
현장에 뛰어든 지 10년째 되던 해에는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고자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발간한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2018) 이후 7개월 만에 연극 초보 관객을 위한 입문서를 펴냈다. 여기엔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지금도 전 세계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는 피터 섀퍼의 <에쿠우스>까지 총 12편의 서양 희곡이 담겨 있다. 왜 희곡을 선택했을까. “연극에 다가가는 첫 번째 방법은 ‘읽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연극은 희곡에서 시작해요. 우연히 듣게 된 대사 한마디를 붙들어두고 싶을 때 희곡을 펼치면 좋거든요.”
그는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12가지로 나누고 여기에 맞는 연극 처방을 내렸다. 연극을 접하기 어려운 초보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물으니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고 대답한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보낸 책 한 권이 우편함에 있더라고요. 그 책 첫 구절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정말 중요한 것은 그동안 내가 꿈꿔왔던 명성이나 화려함이 아니다. 바로 견뎌내는 법이다.’ 젊은 시절, 영광과 욕망을 좇아 미처 보이지 않던 이 대사가 지금에야 눈에 들어오는 건 우리에게 남은 긴 인생에서 무엇보다 용기가 값지다는 뜻 아닐까요?”

최여정은 경희대 브랜드 엠비에이(MBA)를 졸업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서울문화재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홍보를 총괄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나눔도서에 선정된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2018, 바다출판사)와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된 <이럴 때, 연극>(2019, 틈새책방)이 있다.

정화영 생활예술인생활에서 끌어낸 예술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재료로 예술교육을 하면 어떨까?”

20년 전, 맞벌이 부부가 많고 생계가 중심인 마을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정화영 씨는 ‘생활예술’에 빠지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미술 심리치료를 하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수업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결혼 이후 육아에 전념하면서 새로운 치료 매개체를 고민했는데, 그때 눈을 뜬 것이 ‘직조공예’였다. “느리고 정적인 이 작업은 결과물도 예쁘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다양한 색감의 실로 만들어 촉감은 특히 미술치료와 잘 맞죠.” 그는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해외 결연을 위한 정기후원을 비롯해 장애인, 치매 어르신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미술치유와 직조공예에 더욱 빠져들게 됐단다.
길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남들보다 두세 배 더 걸리는 길치라고 말하는 그는 “몸은 피곤하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며 전문가의 공예와 차별화된 생활예술만의 장점을 여기에 비유했다. “고가의 직조기에 한 올씩 쌓아 올리는 것과 달리 생활예술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죠.” 평면보다 입체에 기반한 공예품이 많은 것도 생활예술의 본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버려진 재료를 가지고 직조공예를 하면서 환경까지 생각하게 됐다며,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는 ‘나홀로 취미족 모여라!’라는 문구를 보고 도전한 아마추어 생활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지난 10월 26일~2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생활예술인 페어’에 참여했다. “다양한 취미를 가진 194명의 동호인과 오랫동안 준비했어요.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진행된 해커톤(끝장 토론, 사진.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정화영)까지 마쳤어요.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참여했죠. 생활예술 자체가 즐거움을 줍니다.”

정화영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으며, 유치원 교사와 미술 심리치료사로 활동했다. 예술을 매개로 한 환경교육에 관심이 있어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환경 전문가 과정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민 큐레이터 과정을 수료했다. 그동안 문화비축기지, 도봉구청,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직조에 관한 환경 수업을 진행했으며,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생활예술인에 선정돼 생활예술 해커톤에 참여해왔다.

안성수 안무가 ‘현대무용-전통음악’의 만남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오히려 ‘낯설기’ 때문에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지난 2016년,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입국한 세계적인 안무가에게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예술감독이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을 들려주며 어떠냐고 물었을 때 되돌아온 말이다. 이에 용기를 얻었을까. 보통 현대무용극은 유럽의 고전음악인 ‘클래식’에 기반한 공연을 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11월 1일~3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초연한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신세대 전통음악 작곡가로 불리는 라예송과 손을 잡았다.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현대무용과 전통음악의 만남. 이는 ‘안성수만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탁월한 음악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세련된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린 안무가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단을 이끌면서 타 장르와 꾸준히 협업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걸어왔던 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과 영화를 전공했고, 군 제대 후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입문했다. 미국에서 전문 무용수로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섭렵한 그는 귀국 이후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을 멈추지 않았다. 국립발레단 50주년 기념작 <포이즈>(2012)에서 안무를 맡은 것도, 국립극장 산하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시즌 <단>(2013), <토너먼트>(2014)에 참여한 것도 그렇다.
이렇게 현대무용에 기본을 두면서 발레와 한국무용의 접점을 늘려간 포용력은 안성수의 무용을 탄탄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1월 말 국립현대무용단 3대 예술감독의 임기 3년을 마쳤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공연을 앞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현대무용·한국무용·발레의 3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의 시선도 중요해요. ‘오픈 리허설’이나 ‘워크숍’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늘려나갈 거예요.”

<검은 돌: 모래의 기억> 브라질 공연.

안성수는 국립현대무용단 3대 예술감독을 지냈다. 1991년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안성수픽업그룹’을 창단해 조이스극장, 링컨센터 등에서 활동했으며, 귀국 이후 재창단한 단체에서 만든 <볼레로>로 무용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작품상(2005) 최종 후보에 선정됐고, <장미>로 무용예술상 작품상(2009)을 받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작으로는 <제전악-장미의 잔상>(2017), <스윙>(2018), <검은 돌: 모래의 기억>(2019)이 있다.

최용석 소리꾼 유튜브로 간 판소리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이야기했던 ‘달문’을 닮고 싶어요.”

서울문화재단이 제작한 웹 판소리 <달문, 한없이 좋은 사람>에서 작창과 소리를 맡은 최용석은 11월 8일 영상 공개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2002년부터 창작 판소리와 창작 민요, 소리극을 만들고 공연하는 ‘바닥소리’의 대표로 활동했던 그는 2018년 단체를 그만둔 후 새로운 길을 나섰다. 10대 이후 줄곧 한길만 파왔던 그가 이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2년 전, 불현듯 찾아온 건강 이상 때문에 당산동에 카페를 열고 바리스타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기서 공연을 하고 싶더라고요.” 이번에 제작한 웹 판소리도 손님으로 찾아온 김탁환 소설가와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평소 팬이었는데 여기서 인연이 닿았죠. 김 작가님의 소설과 판소리가 어울리지 않나요?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로 판소리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죠.” 지난 10월엔 <가시리>를 원작으로 해 그가 대본을 쓰고 바닥소리에서 소리극으로 만들어 공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웹 판소리 영상은 조선시대를 풍미한 광대 ‘달문’이 청계천을 떠돌며 민중과 함께하는 일을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광대 옷을 걸치고 평생 판소리로 대중과 호흡해온 그는 달문의 캐릭터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그는 “촛불집회나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현장에서 펼친 공연이 생각난다”며 “약 2년간의 공백이 나를 되돌아보는 약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시대를 담은 판소리는 삶의 일부이자 여전히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달문은 제게 큰 스승과도 같은 존재죠. 이제는 사람과 소통하는 판소리에 더욱 집중하고 싶어요.”

웹 판소리 <달문, 한없이 좋은 사람> 포스터.

최용석은 중앙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김세종제 춘향가) 이수자이며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의 공동 대표를 역임했다.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의 극작가 겸 배우로 활동했고 <순실가>, <쥐왕의 몰락기> 등을 제작, 발표했다.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 최우수상 및 음악상(2014), 제2회 창작국악극대상 남자창우상(2015), 제3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전통 부문 최우수상 및 대상(2016), 서울어린이연극상 대상(2019)을 수상했다.

이명호 사진작가 거꾸로 찍은 역사의 진실

“내면에 숨겨진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 50돌을 맞아 홍보대사로 임명된 이명호 사진작가는 ‘사진과 역사를 대하는 방식’을 이렇게 강조했다. 흔히 역사를 생각하면 인공적인 건축물이나 공예품을 떠올리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단다. 많은 이들에게 인문학이 정해준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역사의 근본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진의 원리를 체험하는 방식처럼 역사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사진 원리인 ‘카메라 옵스큐라’로 역사를 되돌아보는 <역사가 있는 풍경>(11월 18일~29일, 경복궁)을 기획하게 됐다. 우리말로 ‘암실’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을 뜻하는 옵스큐라(obscura)와 ‘방’을 의미하는 카메라(camera)의 합성어다. “암실에선 사물을 보기 위해 몰입감이 높아지죠. 게다가 상하좌우가 뒤바뀌면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새로운 시선을 안겨주기도 하고요.”
그는 정해진 사진과 예술의 정의를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사물에 매몰되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사진을 대하는 이런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뒤바뀐 사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가설을 만들고 정설을 세워야 하죠. 이것이 역사가 흘러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 있는 풍경>은 지난 9월 말, 국보 1호인 ‘숭례문’에서 시작해 ‘울릉도-독도’와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에서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했다. 아직도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그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필름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죠.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시공간의 한 지점을 드러내 본질을 되짚어볼 수 있는 환기가 필요합니다.”

이명호는 중앙대와 동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라이카의 홍보대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전시로는 <Tree>, <사진행위 프로젝트>, <어두운 방, 밝은 방>,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사이 혹은 너머>,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등이 있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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