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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1월호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먹자골목 다동과 무교동

12월의 시청 앞은 건조하고 차가운 햇볕으로 가득했다.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새로운 해에 대한 설렘과 바람으로 2022년 달력의 첫 장을 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두 장 달력의 마지막 한 장만 남았다. 시청 앞 서울광장 한쪽 구석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12월이 왔음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서울광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던 12월 초, 오랜만에 시청 지하 1층의 시민청을 찾았다.

시민청, 다양한 시민참여 활동의 장

서울시청 지하 1층과 2층에 2013년 문을 연 시민청은 시민이 스스로 만들고 누리는 시민 생활 마당으로 전시, 공연, 토론, 교육, 휴식, 놀이 등 다양한 시민참여 활동이 각각의 특성을 반영해 펼쳐질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지하 1층에는 시민청갤러리·활짝라운지·스마트서울전시관·청년활력소·소리갤러리·담벼락 미디어·서울책방·군기시유적전시실 등이 있고, 지하 2층에는 태평홀·바스락홀·시민아지트·워크숍룸·동그라미방 등 사전 예약을 통해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시민청의 ‘청’은 관청 청자가 아닌 시민의 생각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미의 들을 청자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방문하기 어려웠던 시민청을 다시 찾은 이유는 시민청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열정 넘치는 시민 화가 어반스케쳐스서울의 정기 전시회 〈여기:서울 2022〉를 보기 위해서다. 시민청갤러리의 넓고 하얀 벽을 액자도 없이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 장의 그림은 한장 한장 따로 떼어놓고 봐도 멋졌다. 하지만 각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 만들어내는 울긋불긋한 색감과 자유로운 배치는 개별적 아름다움을 뛰어넘고 있었다. 제각각 붙어 있는 이 작은 그림의 집합은 마치 우리의 도시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서울시청 동북쪽,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 고층 빌딩의 바다에서 마치 섬처럼 남아 있는 다동과 무교동의 작은 집들과 좁은 골목을 떠올렸다.
전시를 보고 거리로 나오니 점심시간이다. 다동과 무교동의 골목은 인근 오피스 고층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린이재단빌딩 앞 넓은 덱deck공간을 지나 태평로파출소 앞에서 다동과 무교동의 ‘먹자골목’ 산책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라고 부르는 이 골목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1932년에 문을 연 서울식 추탕집 ‘용금옥’은 이 오래된 거리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이다.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끓이는 이 노포老鋪에 쌓인 이야기가 곧 이 골목의 역사다.

다동과 무교동, 전쟁터 같은 하루의 최후방 방어 기지

얼핏 보기에도 쌓인 연륜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이 골목에 오래된 노포가 용금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복쟁반의 ‘남포면옥’, 육개장의 ‘부민옥’, 사골로 끓이는 육수의 맛이 깊고 구수한 ‘무교동북어국집’ 등 1950~60년대 장사를 시작한 식당이 즐비하다. 10년 된 식당도 찾기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 20~30년쯤 된 식당은 이곳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현재 다동과 무교동의 먹자골목 대부분을 차지하는 행정구역은 다동이지만 예전에는 이 일대를 흔히 ‘무교동 골목’이라고 불렀다. 무교동 낙지골목은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 버린 오랜 신화처럼 후대에 전해지지만 여전히 골목에는 끝끝내 몇몇 집이 남아 낙지골목의 옛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다.
무교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여러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과 무기의 제조와 관리를 담당하던 군기시1에서 유래한다. 모전을 중심으로 웃모전다리와 아래모전다리가 있었는데 웃모전다리를 모교라 했고, 아래모전다리를 웃모전다리와 구분해 무교武橋라고 했다. 무기를 만들던 군기시軍器寺가 있어 무자를 사용해 무교라고 한 것이다. 그 무교가 있던 동네의 이름이 무교동이다. 지금도 무교동 사거리와 서린동을 연결하는 청계천 다리의 이름은 모전교다. 무교동에는 예전에 국숫집과 팥죽집이 많아 국숫골, 팥죽골이라는 동네가 있었다고 한다. 무교동의 먹을거리 역사는 오래전 시작됐다. 다동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궁중의 다례를 주관하던 사옹원 소속의 다방이 있어 ‘다방골’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동네의 이름에 그곳의 역사가 있다.
다동과 무교동의 먹자골목은 인근의 오피스 고층 빌딩과 서울시청의 월급쟁이에게 잠깐 주어지는 소중한 ‘점심시간’의 무대이고, 동료와 함께하는 한 끼 식사로 오후를 버텨내는 에너지의 공급처다. 퇴근 후 저녁시간 역시 이 골목은 전쟁터 같은 밥벌이의 전장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최후방 방어 기지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변의 고층 빌딩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을 것 같은 정교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에게 이곳 다동과 무교동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참았던 숨을 터트릴 수 있는 숨구멍이다. 목 끝까지 단단하게 조이던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비틀거리며 걸어도 용납되는 도시의 숨구멍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얼큰한 낙지볶음 한 접시에 쓰디쓴 소주 한잔이면 무섭던 세상도 만만해진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 같은 반백수에게도 그렇다.
다동과 무교동의 좁고 구불거리는 길에서 펼쳐지는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의 역사는 오래전에 시작돼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저 걷고 보는 것만으로는 다동과 무교동의 매력을 100% 만끽할 수 없다. 다동과 무교동의 골목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그 골목 어디쯤 위치한 끌리는 식당을 한 군데 골라 맛있는 음식에 달달한 술 한잔을 걸쳐보기를 권한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 골목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1.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병기兵器의 제조를 맡아 보던 관아를 말한다.

글·그림 정연석_《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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