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1월호

첼리스트 홍진호 다정한 대답을 들려주듯

홍진호의 첼로는 다정하다.
악기를 거칠게 몰아붙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첼리스트도 있다.
예컨대 트룰스 뫼르크처럼. 화려하고 자유로운 연주로 청중에게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미샤 마이스키 같은 첼리스트도, 작품에 깊이 침잠하는 스티븐 이설리스 같은 진중한 첼리스트도 있다.
홍진호의 연주는 듣는 이를 다정하게 챙기면서 간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꼼꼼하게 전달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물어가며, 그렇게 나아가는 음악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따뜻하고 다정한 뉘앙스를 지닌 표현들

JT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의 우승팀 ‘호피폴라’ 활동으로, 대중적 멜로디로 다채로운 그림을 그린 〈모던 첼로MODERN CELLO〉 음반 발매로, 그간 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에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서울 스테이지11〉 청년예술청 공연을 앞두고 가진 우리의 대화는 다시 ‘소리’로 돌아갔다. 마이크를 사용하는 대중 공연과 정통 클래식 협연 무대에 번갈아 오르는 그는 최근 자신의 소리를 염려하며 가다듬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 음악에 있어 반성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악기의 잠재력을 헤아려 봤을 때 한 40% 정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70, 80% 정도는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연습을 위한) 방으로 갑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첼로를 처음 잡은 홍진호는 그래도 ‘캐릭터가 일찍부터 잡힌 편’이었다. 좋아하는 소리, 원하는 소리가 분명했고 그 방법을 일찍부터 발견해 고집스럽게 연마했다. “그 고집이 참… 제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그걸로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에요.”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늘 한계를 갖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부드러운’ 소리였다. 따뜻하고 다정한 뉘앙스를 지닌 표현들.
“몇 해 전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 달 간격으로 요요마와 미샤 마이스키의 리사이틀을 관람한 적이 있어요. 미샤 마이스키는 동작도 크고 소리도 크고 보고 듣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걸 유지한다는 점에서 느낀 바가 컸어요. 그에 비하면 요요마는 소리가 훨씬 작아요. 홀이 너무 크니까 어떤 부분은 잘 들리지도 않죠.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나 예쁘고 소중해서 사람들이 다 몸을 앞으로 숙여 귀를 기울이면서 집중하더라고요. 그 양질의 소리를 연주회 끝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가는 모습이 감탄스러웠어요. 요요마의 그 소리를 저는 정말 좋아해요.”
물론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배우고 시도해 본 적도 있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깊은 신뢰를 가지고 따르던 지도교수 니클라스 에핑어는 홍진호의 음악 스타일과는 다른 강하고 큰 소리를 내는 첼리스트였다. 홍진호에게 2년간의 석사 과정은 그 ‘대포 같은’ 선생님의 소리를 따라 해보려 애쓰던 시기다.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어보려는 학생 시기의 노력은 연주자로 성장하는 데 큰 발전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졸업 연주 영상을 최근에 다시 봤거든요. 지금보다 소리도 훨씬 크고 화려하게 연주하는데…. 저랑 안 어울리긴 하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적 방향과 여러 경험을 잘 섞어서 제 소리를 더 잘 만들어가야죠.”
근래 홍진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매일 한 시간 바흐 연습하기’라는 제목으로 연습 영상을 올리고 있다. 잦은 방송 출연과 마이크를 사용하는 무대에 반복적으로 오르며 ‘발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은 그가 마련한 하나의 계책이다.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하니 정작 누가 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 쑥스럽게 웃는다.
“바흐의 음악은 첼리스트에게 ‘원점’ 같은 거예요. 스스로에게 주는 과제라는 생각으로 이어가고 있어요. 연습 영상을 노출하는 게 무척이나 부끄러운 게 사실이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한 〈서울 스테이지11〉 청년예술청 공연

울타리를 넘나드는 일

이날의 공연은 홍진호에게 오랜 동료이자 친구 같은 존재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하는 무대였다. ‘그때는 우리가’ ‘꽃핀다’ ‘Hymn Forest(휴식을 위한 송가)’ 등 2022년 7월에 발매한 홍진호의 두 번째 앨범 〈모던 첼로〉에 수록한 창작곡을 들려줬다. 2021년 〈Purify〉라는 제목으로 실황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지만 〈모던 첼로〉는 그의 ‘현재’가 그대로 담긴, 고유한 음악 세계를 소개하는 첫 번째 명함 같은 앨범이다. 조윤성이 프로듀서를 맡고 노영심, 권태은, 선우정아, 에코브릿지, 이진아 등 서로 다른 색깔의 음악가가 홍진호의 첼로를 중심에 두고 모였다. 그리고 홍진호의 첫 번째 자작곡도 담겨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연주곡 버전을 들려줬지만 그의 자작곡 ‘그때는 우리가’는 선우정아가 부르는 멜로디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정통 클래식 작법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한국 근현대 음악의 정서가 묻어 있고, 차분하고 예쁜 노랫말로 부르는 대중적 선율이 돋보인다. 이 앨범을 통해 작곡과 작사를 처음 해본 홍진호는 자신이 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시도해 볼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기 힘들던 1920~30년대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애틋함을 음악으로 만들어봤어요. 기계와 친하지 않아서 작곡 프로그램 대신 책상 위에 오선지를 펴놓고 지우개똥을 이만큼씩 만들어내면서 쓴 곡이에요. 너무 오래 걸렸고 과정 내내 우려스럽기도 했지만 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같이하고 싶던 선우정아 씨도 만나고 제 머릿속에 떠다니는 정리되지 않은 언어를 가사로 표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습니다. 첼리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겠다는 욕심은 없고, 다만 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작곡가가 기록한 악보를 꼼꼼히 탐구하고 그 안에 담긴 서사를 온전히 전달하는 클래식 첼리스트 홍진호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표현하고 창작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건 역시 호피폴라 멤버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악기 구성을 바꿔가며 경연을 치러야 했던 〈슈퍼밴드〉 출연 기간의 경험, 호피폴라의 아일(보컬·건반), 하현상(보컬·기타), 김영소(기타)와 함께 무대에 올라 만든 멋진 찰나가 홍진호의 ‘활 놀림’에 담겨 있다.
호피폴라 멤버 외에 홍진호 곁에는 피아니스트 조윤성도 있다. 즉흥 연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조윤성은 홍진호와의 듀오 공연에서 종종 그를 ‘산으로 데려간다.’ 형식과 틀에 익숙하던 그가 자유로운 음악가들의 손을 잡고 울타리를 넘나드는 동안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작곡이나 즉흥 연주 같은 새로운 시도뿐 아니라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홍진호는 그렇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천천히 가꿔나가고 있다.

전달자의 위치에서

〈모던 첼로〉에는 한국의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한 창작곡 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Passaggio’, 올라퍼 아르날즈의 ‘Undan Hulu’ 등 유럽 현대 작곡가들의 곡도 실려 있다. 또한 2021년에 발매한 〈Purify〉는 에리크 사티로 시작해 아르보 패르트와 엔니오 모리코네, 브람스와 라벨로 이어지는 실황 녹음 음반으로 연주자 홍진호와 더 가깝게 마주하게 해준다. 리드미컬한 피치카토로 밝은 에너지와 재미를 선사하는 마크 서머의 ‘Julie-O’라는 곡을 이 앨범을 통해 처음 알게 돼 즐겨 듣게 됐다고 고백하니 홍진호의 눈이 반짝인다. 무반주 첼로 작품인 이 곡은 홍진호의 개성과 장점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선곡이다. 섬세하고 밝고 다정한 정서의 이러한 레퍼토리를 더 개발해 무대와 음반을 통해 들려주면 더 많은 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레퍼토리 확장에 대해 묻자 홍진호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라 몬테 영1935~, 테리 라일리1935~, 스티브 라이히1936~, 필립 글래스1937~ 등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나 1960년대 반문화를 경험한 이들 사이에서 처음 시도된 음악 사조다. 하나의 서사를 구축하며 진행하고 발전하는 기존의 작곡 방식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재료, 지속적 파동을 특징으로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머물고, 존재하고, 흐른다. 비서구 음악 그리고 대중음악과 연결돼 있다는 특징도 있다.
홍진호, 그리고 비슷한 나이대인 필자를 포함한 현대의 음악 애호가가 미니멀리즘 음악에 반응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 감상자들은 완전히 개인화된 음악 감상에 익숙하며 스트리밍 방식으로 원하는 거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그리고 각종 미디어 화면을 통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시각 자극과 포개진 음악을 듣는다. 현대의 감상자들은 대체로 피로하며 각종 소음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은 열망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거대한 세계를 비장하게 펼쳐 보이는 음악(이를테면 베토벤 같은!)도 즐기고 소비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변주로 아주 작은 세계에 침잠 혹은 표류하게 만드는 미니멀리즘 음악에도 기쁨과 만족감을 느낀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이제는 각기 다른 스타일, 예컨대 종교적 텍스트와 결합한 명상 음악이나 대중 친화적 색채로 영화음악을 위해 쓰인 음악 등 여러 부류의 작품이 대중과 만나고 있다. 홍진호는 비교적 잘 알려진 미니멀리즘 음악가의 여러 작품을 골라(예를 들면 영화 〈어바웃 타임〉에 흐르던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같은) 자신만의 색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홍진호 포지션의 연주자가 할 수 있는, 클래식 분야의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긍정적 역할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셈이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쓴 책 《젊은 예술가에게》를 읽으며 공감한 내용인데, 클래식 분야의 기류가 점점 스타 연주자를 부각하고 작곡가는 그들을 빛내 주는 역할을 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할 일은 좋은 작품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전달함으로써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홍진호는 지금, 다시 원점에 서서 자신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듣기 시작하며 음악가로서 자신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목적지란 ‘아직 모른다.’ 다만 좋은 소리를 만들고, 모자람 없는 전달자가 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을 빛나게 하는 일임을 깨달아 수행하고 있다. 2023년의 그는 정통 클래식 무대에 더 서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시간으로 삼으려고요.”
무대 위 자신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사랑해 준 관객에게 그는 앞으로 더 밀도 있는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그의 첼로가 내는 소리처럼 다정하게, 또 성실하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호경_《아무튼,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 저자 | 사진 제공 크레디아, 서울문화재단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