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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12월호

문화적 부활을 꿈꾸는 도시 명동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에는 지금도 수십 개의 극장에서 많은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그곳에서 연극을 하던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로 진출해 지금의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로에 연극 붐이 일기 전인 1970~80년대에는 ‘명동’이 연극의 중심지였다. 연극인의 소극장 운동에서 상징과도 같은 삼일로창고극장이 오늘의 방문지다.

삼일로창고극장, 실험과 탈경계를 지지하는 동시대 예술창작 플랫폼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0번 출구를 나와 삼일대로를 따라 명동성당 방향으로 걸어가면 왼쪽에 붉은 벽돌로 마감된 작은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삼일로창고극장이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1975년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경영난으로 여러 번 부침을 겪으면서 폐관과 재개관을 반복했다. 1990년의 폐관 이후로는 극장이 아니라 김치 공장과 인쇄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랬던 극장이 2018년 6월 극장의 역사적 가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며 재개관해 지금에 이르렀다. 고 추송웅 배우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은 삼일로창고극장의 대표작이다. 2018년 재개관 기념공연도 이 연극을 오마주한 〈빨간 피터들〉 시리즈였다. 삼일로창고극장은 창작 현장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운영단과 함께 민관 거버넌스를 이뤄 ‘실험과 탈경계를 지지하는 동시대 예술창작 플랫폼’을 지향하는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탈경계’ ‘청년예술 플랫폼’ ‘낮은 문턱’은 삼일로창고극장의 성격을 대변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지난 10월 11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 기획사업 프로그램 〈창고개방〉은 ‘리서치 프로젝트: 극장활용법’ ‘24시간연극제’ ‘창고포럼’으로 진행됐다. 〈창고개방〉은 2018년 재개관 후 삼일로창고극장의 대표 사업으로 자리 잡은 축제형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극장의 공간성과 장소성, 미래 극장의 역할 등 극장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실험하고 극장의 고민과 비전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구성됐다. 관객은 ‘리서치 프로젝트: 극장활용법’의 참여 예술가 중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일부 팀, ‘24시간 연극제’에 참가하는 25명의 창작자를 무대에서 만났으며, ‘창고포럼’에서는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와 함께 극장의 고민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삼일로창고극장을 나와 명동성당으로 가는 길. 점심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삼일대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행렬 옆으로 명동과 을지로 일대 오피스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또 다른 행렬을 이룬다. 그 행렬 속에 누가 봐도 백수로 보이는 차림새를 한 나도 은근슬쩍 합류한다.

명동성당과 명동예술극장, 명동 근대 문화의 두 축

명동성당은 1892년에 착공해서 6년 만인 1898년에 준공됐다. 1892년에 지어진 중림동의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약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E. J. G. Coste 신부가 명동성당을 설계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그다음 해 준공된 명동성당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역사 한가운데를 관통해 명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 있었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이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의 성지이기도 했던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의 상징이자 근현대사의 상징이다.
2022년 가을, 정오 무렵의 명동성당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격동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평화롭고 한가했다. 점심식사를 일찍 마친 근처 회사원에게 명동성당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산책 코스인 듯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손에 든 사람들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 아래에서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 높이 47m의 종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고딕 양식의 거대한 명동성당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을 은혜로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다.
성당 뒤쪽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신자와 관광객 사이를 지나 지하 예배당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천주교 성인과 순교자 9명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꽤 오래전 처음으로 명동성당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이곳 지하 예배당이었다. 높고 웅장한 지상의 성당과 달리 낮고 어두운 지하 예배당은 종교적 믿음이 없는 나 같은 사람마저 아늑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명동성당을 나와 다시 명동길에 들어선다. 화창한 가을날이라 그런지 유독 거리에 사람들이 넘쳤다. 성당 근처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성당 뷰’로 유명한 성당 앞 야외 카페에 가니 이미 그곳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지난 2년간의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사라진 쓸쓸한 명동 거리의 풍경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제법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오후 장사를 준비하는 거리 노점상 사이로 고풍스러운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띈다. 명동예술극장이다. 명동예술극장은 한국 공연예술사에서 중요한 건물이다. 1936년 영화관인 명치좌로 시작한 극장은 1957년부터 국립극단이 운영하는 국립극장이 됐다. 1973년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이전하면서 금융회사에 매각돼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한 후 2009년부터 명동예술극장으로 개관했다. 명동예술극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글로벌 상업 지역으로 변해 버린 명동에서 문화적 보루의 지위를 위태롭게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화의 거리였던 명동의 과거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명동예술극장은 작고 소중한 위로를 준다. 명동의 거리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명동예술극장과 삼일로창고극장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식당도 가고 쇼핑도 하는 명동을 상상한다. 명동의 문화적 부활을 꿈꾼다.

글·그림 정연석_《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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