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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제1강: x=2y인 두 자연수 x와 y의 순서쌍을 좌표로 하는 점을 좌표 평면 위에 나타내어라

마음을 주고받는 방법: 열일곱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서른네 살의 네 사람, 리아·현·미소·선주가 열일곱 살의 자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됐다. 여자 좋아한다고 학교에 소문난 리아, 자기 페이스를 찾기 위해 언제나 달리는 현, 이름처럼 미소 짓기가 싫어 언제나 웃긴 표정을 짓는 미소, 공부는 잘하지만 학교에선 친구가 없는 선주. 어느 날 운동장을 달리던 현에게 리아가 반한 것을 시작으로 네 명의 여성 청소년은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네 명의 여성 청소년은 어떤 유형에 갇히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대 위를 뛰어다닌다. 친구와 가족·학교를 넘어선 세계를 상상하기 힘든 청소년 시기를 섬세하게 재현한 이 작품은, 그럼에도 결코 작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청소년의 퀴어성과 그들을 둘러싼 소문은 폭력적이고, 어른들의 태도는 그들을 미묘하게 괴롭힌다. 여성-청소년이라는 이중의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의 거절은 온전한 거절이 되지 못하고, 말은 힘을 갖지 못한다. 극단 Y는 이전 작품에서 그랬듯 이 작품에서도 여성 청소년을 대상화하지 않은 채 그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리아는 성폭력의,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2차 가해의 피해자이지만 작품은 그를 피해자성에 가두지 않는다. 실컷 울게 하고 자책하게 한 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작품은 그들이 가진 겹겹의 정체성 가운데 어느 것을 부각하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다만 존재하게 한다. 그들은 그들이다. 피해자일 수도, 전사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는 채로 그들이다. 열일곱 살의 그들이 ‘거절’을 배우는 것은 이 연극의 핵심 지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은 평생에 걸쳐 배워나가야 하는 일이라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남의 마음, 아니 때로는 ‘내 마음’ 같지도 않은 ‘내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녹록지 않다. 단호한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는 허락만큼이나 많은 거절로 이뤄져 있다. 열일곱 살의 친구들은 그것을 배워나간다. 그들의 강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것, 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을 허락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된 ‘나’는, 그리고 친구들은 서로 진심을 주고받는 것으로 관계의 첫걸음을 뗀다. 거절이 ‘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님을, 거절이 남을 상처 주는 것과 언제나 같지 않음을 열일곱 살에 배워야 했다.

연극 <제1강: 거절하는 방법> 중

모두는 위로를 원해: 서른넷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잘하고 있어” 왜 아무도 넷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세상은 유난히 각박한것 같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 것 같다. 다른 모두가 그렇듯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데, 부족함은 이해받지 못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렇다. 서른네 살, 이제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고 스스로를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 넷은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싶다. 미숙한 열일곱 살 ‘네’가 자라 여전히 미숙한 서른네 살 ‘내’가 됐지만, 더 자라 또 다른 미숙한 ‘내’가 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탓하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고 보면 인간의 존재란 참 성가시고 복잡하다. 육체적 성장이 완성되는 시기가 너무 느려 오랜 시간 타인에게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육체적 성장의 완성이 ‘성장’이라는 것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성장 서사다”라는 말마저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특히 그 삶의 서사화에) 성장은 중요하다. 완벽한 사람이나 인간의 완성이란 없으니 현재 시점의 ‘나’는 여전히 과정이고, 지금 나이의 두 배쯤 나이 먹고 나면 이것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지 모른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할 수 있고, 내일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로 괜찮을까?
성장 담론은 확장되고 있다. 부모도 처음이고, 70대도 처음이고, 아무튼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이 ‘처음임’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른이니까 실수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자라는 중’ ‘성장하는 중’이라는 말을 끝없이 사용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신이라는 말, 성장하고 있다는 말로 무엇을 유예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과거를 위로하는 일로 우리가 어떤 현재를 유보·용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을 돌아보는 동시에 자신의 무지와 무례를 톺아볼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일자 2021. 10. 14~24

장소 나온씨어터

작·연출 강윤지

출연 강서희·백혜경·강다현·배선희

조연출 이수림 PD 최샘이

조명 홍유진 음향 목소

사진·그래픽 박태양

장지영 드라마투르그.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다. july2413@naver.com | 사진 제공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됐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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