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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단지 내외를 매개하는 출입구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아파트 ‘아케이드’가 빚어내는 도시경관

서울 길거리에서 2~5층 규모의 아파트 상가 건물을 종종 만난다. 서울에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마포아파트, 1962)가 생겨나고 60년이 흐르면서, 아파트 상가의 규모와 생김새, 업태 또한 시대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했다.

한강맨션아파트(1970년 입주), 여의도시범아파트(1971년 입주)와 같이 중상류층이 타깃인 초창기 아파트 상가들은 현대 도시 문명을 이끄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소비 공간으로 널리 인식되며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후 대한주택공사가 서민을 위한 주공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민간 건설사들도 다양한 규모의 아파트를 지으면서 점차 아파트 상가는 재래시장, 혹은 마을 상점가 역할을 대신하는 상업 공간으로서 서울 전역에 퍼져나갔다. 20세기의 아파트 상가는 많은 경우 대로에 면한 회랑回廊 혹은 노선상가路線商街 형태를 띠었는데, 여기서 유래해 ‘아케이드Arcade’가 아파트 상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잠실시영아파트(1976년 입주) 건립 당시 상가동을 ‘아케이드 건물’로 지칭한 것이 대표 사례이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밀집된 주택가와는 달리, 담벼락으로 외부와의 경계가 명확하게 규정되는 현대 아파트 단지에서 아파트 상가는 단지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와 교류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지난 세기의 아파트 상가는 과연 어떤 모습과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지, 준공 당시의 잔영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상가를 통해 들여다보자.

아파트 상가가 단지 외부와 내부를 잇다

(사진➊) 서초구 반포본동, 반포주공1단지아파트의 상가는 현존하는 아파트 상가 중에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이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 삼거리를 중심으로 신반포로를 양쪽에서 감싸듯이 조성된 이 상가는 고속터미널 상권이 지금처럼 융성하기 이전에 ‘강남구 반포동’을 대표하는 중산층의 쇼핑 공간으로 기능했다. 3층 상가와 단층 상가가 혼재된 구성 또한 흥미롭다. 외부 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경비 초소가 존재하지만, 만약 상가를 도보로 방문한다면 특별한 물리적 장애물이나 심리적 장벽 없이 아파트 단지 내부를 자연스럽게 거닐 수 있다. 아파트 단지들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2020년대의 감각으로는 이렇게까지 외부인에게 개방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1973년에 첫 입주가 시작돼 반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눈앞에 둔 반포주공1단지이지만, 아쉽게도 올해 말로 이주가 끝나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재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10월 시점에 이미 많은 점포가 떠났으며, 단층 상가의 경우 아마도 과거에는 번성했을 중복도 형식의 아케이드가 이제는 창고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한 상황이다(사진➋). 재건축 아파트에 조성될 근린생활시설은 입주민을 위한 소위 ‘프리미엄’ 시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지금과 같이 치킨집·빵집·보습학원·게임가게·카센터·약국 등이 오밀조밀하게 늘어선 풍경은 아마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사진➌) 서초구 방배동, 방배삼호아파트의 노선상가는 아케이드의 ‘정석’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모범 사례와도 같다. 1976년 4월에 준공된 이 아파트의 노선상가는 3년 전에 지어진 반포주공1단지의 상가보다 건축적으로 한층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아치가 반복되는 외관과 외부로 노출된 2층의 통로는 대만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식민지 건축을 연상케 한다. 방배삼호아파트는 서울 한강 이남에 최초로 조성된 고층 아파트 단지였던 만큼, 아파트 상가에도 상당히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 다(사진➍). 신반포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적한 방배로에 면하고 있기 때문인지, 입점 업체 중에는 한 칸짜리 슈퍼마켓이 존재하는 등 반포주공1단지아파트의 상가보다 조금 더 근린 주민에 친화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지금은 많이 쇠퇴했으나, 1990년대까지 ‘카페골목’으로 유명했던 방배동답게 방배삼호아파트 상가의 저층부에는 각양각색의 카페가 입점해 강남의 관광지 기능을 하기도 했다. 반포주공1단지아파트와 달리, 이 아파트는 재건축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 높은 확률로 준공 50주년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 아파트 상가 모습은 어떨까

최근에 지어지는 신축 혹은 재건축 아파트 상가는 대로변의 노선상가 형태에서 탈피해 아파트 거주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형태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상가는 여전히 ‘플라자’ ‘스퀘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더는 내외부에 공평하게 열려 있는 ‘아케이드’가 아니게 됐다.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더 높은 부동산 가치 형성을 지향하는 지금, 다음 60년의 아파트 상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까. 갈수록 단절과 분화가 심화되는 서울의 도시 공간을 치유할 수단으로서, 머지않은 미래에 아파트 상가가 단지 바깥과 내부를 매개하는 공간 으로 회귀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 과정, 인스타그램 @서울의현대를찾아서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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