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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12월호

서울문화재단 신임 이사장 박상원
배우, 그리고 높은 곳을 품으며 달려가는 사람

“나 떨고 있니?” 두려움에 떨고 있던 태수(최민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던 우석(박상원)은 시선을 교차한다.
고향 친구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장면(드라마 <모래시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필자 인생 최고의 한 장면이다. 2004년 서울문화재단(이하 재단) 설립 초기, 마라톤 캠페인에서 남산 자락을 함께 달리며 우석을 두 번째로 만났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나, 본지(2014년 6월호 ‘사람과 사람’) 인터뷰에 초대돼 대한민국 연극의 심장으로 불리던 드라마센터에서 쌓인 생생한 기억을 들려줬다. 그리고 2021년 10월. 43년 경력의 배우 박상원은 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며 서울의 문화예술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서울문화재단 신임 이사장 박상원.

대중에게 서서히 다가온 그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배우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캐’로도 활동해 왔다. 대한민국 1호 남자 무용수, 오만에서 대자연의 장관을 필름으로 담아낸 포토그래퍼, 그리고 차세대 연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의 지도교수까지. 그를 소개할 수 있는 직함만 해도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는 인터뷰 직전, 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서 첫 공식 행사에 참여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였는데, 몇 번의 시연을 반복하며 페달을 연신 밟아 힘들 법도 했지만, 철인삼종으로 단련된 하체를 가졌 다며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배우 박상원은 이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Q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곳(드라마센터)은 이사장님께는 모교이자, 재단이 11년(2009~2020) 동안 운영했던 극장으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렇게 서울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오셨는데, 밖에서 본 재단과 이사장으로서 마주한 재단의 모습은 어떤가요?

재단과 첫 인연을 맺은 게 2004년 3월 18일로 기억합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재단 출범식에 정연희 당시 이사장님과 유인촌 전 대표님의 초대로 갔습니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술기관으로서 서울의 문화예술을 진흥시키려는 서울문화재단의 탄생을 지켜보게 됐죠. 이후 재단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마라톤에 저를 초대하셨어요. 남산순환도로를 재단 직원들과 함께 달렸는데, 그때 게스트로 함께 뛰고 막걸리도 마신 기억이 있어요. 돌아보면 서울문화재단이 하는 일들을 다양한 계통에서 듣고 보고 체험하게 돼 재단에 대해 포괄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어요. 이번에 이사장으로 오게 되면서 꼼꼼하게 들여다보 게 됐지요. 재단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더라고요. 서울은 대표성을 띤 도시이기에, 서울의 문화예술은 곧 대한민국의 예술이고, 나아가 세계 문화예술을 견인하기도 하잖아요. 평생 이 계통에 있으면서 재단과 인연도 있어서인지 이사장이라기 보다 한 명의 예술인으로 함께하게 됐다는 점이 설레고 기대됩니다.

Q 며칠 전, 이사장님 취임식이 있던 날 재단 신입 직원과 함께 유튜 브 채널에 올라가는 브이로그V-log를 촬영했습니다. 요즘에는 1996년에 태어난 신입 직원들도 입사하고 있는데, 이사장님께서 출연한 드라마 <모래시계>가 열풍이던 시기(1995)잖아요. 최근 출연하신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시청률 45%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30년 넘게 문화예술계와 방송계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동안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 같습니다.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하 셨나요.

일단 정정할게요. 정상이 아니라 높은 곳을 품으면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 같아요.(웃음) 어려움이 많죠. 요즘 가까이 함께 사는 존재를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고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저에겐 어려움이 ‘반려감정’인 것 같아요. 어려움이란 건 치명적인 영향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려감정으로 잘 지니고 있으면 백신처럼 항체를 만들어 실제 위기가 왔을 때 크게 치명적이지 않고 이겨낼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제 삶의 신조 중 하나는 ‘위기의식을 장착하는’ 겁니다. 인생에서 비 오는 날이든 쨍쨍한 날이든 소위 ‘잘나간다’ ‘못 나간다’라는 평가와 상관없이, 바쁘면 바쁜 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가하면 ‘쉬라는 거구나’ ‘준비하라는 거구나’ 했 던 것 같습니다. 위기가 있었지만 ‘들어왔다 나가겠지’ 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어요. 마치 주사 맞을 때 구구단을 외우며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하듯 말이죠. 멀리 있는 희망을 바라보며 갔을 뿐이에요. 위기라는 게 많았을 거예요. 인간이라 어렵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박상원 모노드라마 연극 <콘트라바쓰> 한 장면

Q 국민 배우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국 남자 무용수 1호’이시더라고요. 최근엔 "무용이 초중등학교 교과에 포함돼야 한다”는 성명에도 참여하셨고요.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기초교육을 강조하는 것에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순수예술인 무용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1호 무용수라는 건, 40여 년 전 당시 무용을 접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는 의미예요. 남극 대륙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랄까요. 당시 한국 예술계에서 흔하지 않은 장르의 초월과 융합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노력도 있었으나 행운이었죠.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작업에 참여하면서 연기자로서 정신과 육체를 확장하는 과정이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응애’ 하고 태어날 때부터 이미 무용을 시작한 것일 수도 있어요. 아장아장 걸으며 중심을 잡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용이고 연극이죠. 연극·음악·무용 다 기초 영역이니 교육에 들어가야죠. 꼬마들이 텔레비전을 보다 블랙핑크를 보고 흉내 내는 행동이나 우리가 리듬을 타는 동작은 당연한 움직임이잖아요. 최근엔 댄스학원을 다니는 학생도 많은데, 이때 무용이 초중등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같아요. 무용은 여전히 제게 영향을 줍니다. 골프를 쳐도 공이 훨씬 멀리 나가는 걸 보면 유연성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무용은 몸의 중심을 다루는 것이라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Q 연극 이야기 잠깐 해볼게요. 오후에도 연습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금도 연극 무대에 계속 서시는데, 무대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연극’은 이사장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저한테 연극은 자궁처럼 느껴지죠. 마치 엄마의 배 속과도 같아요. 저의 생각을 비롯해 모든 것의 원천이니까요. 문화나 예술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생각의 중심이 돼주죠. 1978년 3월, 물리적인 나이로는 성인이 돼가고 있으나, 성숙한 인간으로선 빈 박스였던 시기에 연극이란 걸 잘 모르고 택했으니까요. 극장이라 하면 흔히 프로시니엄Proscenium, 3면이 관객에게 개방된 형태 무대를 떠올리던 시기에, 여기 드라마센터는 아레나 스테이지Arena stage, 관객들이 연기자를 둘러싸고 관람하는 무대가 있었죠. ‘우와’ 감탄할 만큼 너무 신기했어요. 극장 공간의 확장을 경험한 거죠. “배우가 밑에 있고 관객이 위에 있으니 위를 보고도 연기할 수 있구나!” 모든 것이 충격적이고 신기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메타버스를 처음 만난 기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40여 년 연기자 생활을 이어오는 걸 보면 저는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학교 다닐 때 배운 걸 써먹지 못하는데, 다행히 저는 40년 넘게 한 분야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발효시키고 있으니까요. 물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다행히 정확하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극, 뮤지컬, MC, 라디오 DJ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이제는 서서히, 무언지 모르겠지만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해 가는 것 같아요. 이번에 재단 이사장으로 오면서 든 생각은 다양한 분야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소통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서울시민에게, 대한민국 국민에게 운반하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남산에 있는 드라마센터 원형 무대

Q 문화예술계는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하는데, 다른 분야에 비해서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그중 ‘어떻게 하면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수님으로 수업도 하시고 현장 예술가로 작업도 하시는데, 문화예술이 낯선 일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관객 개발’ 노하우가 있을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아요. 대학로에 이른바 스타가 올 때, 굴러온 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영향력을 줄 수는 있어요. 핵심은 환경과 한계의 문제가 아니라 늘 준비하고 갖추고 있으면 그런 기회가 득이 될 것이고, 그런 구조로 밥그릇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실이라는 거죠. 가능하면 재단도 지혜롭게 운영해야겠죠, 공공기관이니까. 시골 장터에서 할머니가 한두 개 덤을 줄 때의 마음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치밀하고 충분한 연구를 통해 ‘저렇게 지원을 하는구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폭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면 좋겠어요. 단순히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지원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재단은 전문가 그룹이니 그렇게 가야 하겠죠. 예술계 현장 상황에 대해 많이 알고 공연도 많이 봐야 하고요. 저도 재단의 일원으로서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재단이 운용하는 지원금은 어느 독지가 한 사람이 출연한게 아니라 모래알처럼 모인 시민의 세금이니까요. 1천4백억 원을 써도 1조4천억, 아니 140조 원의 가치로 영향력이 발휘되면 좋겠어요. 도로에 보도블록 깔고 다리 세우는 게 아니라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사실 서울시 전체 예산 규모에 견주면 작겠지만, 제일 효율성 높은 파트가 아닐까요. 재단 직원이라면 자부심을 갖고 문화 NGO로 활동해 주길 바라요.

Q 극장 얘기를 안 할 수 없어요. 7년 전 본지 인터뷰에서는 여기 드라마센터와 남산에서 간직한 기억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재단이 오랫동안 극장을 운영했기에 이곳은 개인적으로도 애정이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홍보하는 입장에선 대표 콘텐츠가 종료돼 아쉽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 재단은 남산에서 대학로로 무대를 옮겨 공공극장의 두 번째 시즌을 이어갈 텐데 극장의 선배로서 어떤 점을 기대하고 계신가요.

우리와 비슷한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중극장·소극장이 존재하고 각 공간에 맞는 포트폴리오가 있어요. 재단에는 ‘대학로공연장1’과 삼일로창고극장이 전부죠.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피커딜리 극장의 정서를 보여주는 게 세종이라면, 우리는 미래를 지향하는 공간, 새로운 공연 양식의 씨앗 같은 걸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뉴욕의 ‘오프의 오프의 오프’처럼 10년, 20년, 30년 후엔 시대의 문제작을 배출한 자궁 같은 극장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홍보와 관련해서는 시민이 즉각 체감하는 건 축제나 예술청과 같이 규모가 큰 사업·공간일 텐데 이런 곳이 투명하고 입체적으로 운영되면 곧 홍보의 장이 될 거라 생각해요. 다른 사업은 창작자에게 인풋을 제공해 근간을 만드는 것이겠죠. 특히 앞으로의 공공극장이나 예술청은 순수 창작자에게 개방해서, (손익분기점을 우선하기보다) 좋은 공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는 거죠. 대관비 받고 대여하는 상식적인 공간 말고,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싶다, 이건 행운이다’ 느낄 만큼 양질의 콘텐츠가 제공되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주제와 과정을 잘 담아낸 [문화+서울] 두께의 프로그램 북을 포함해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에게 제공하는 거죠. 가격도 싸고 공연이 좋으면 극장 앞에는 늘 줄을 설 거예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객석이 한 자리도 비지 않고 만석이면 초인적인 힘이 나옵니다. 일반 극장이 아닌, 비교 대상이 없는 특별한 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센터가 가진 역사성이 있었을 거예요. 저는 그걸 ‘극장 먼지’라고 표현합니다. 마루와 마루 사이에 낀, 천장에 붙어 있다 떨어지는 먼지가 어마어마한 것이라고요. 감성적인 이야기지만 그 먼지를 ‘팬텀 오브 드라마센터’라고도 표현하는데, 극장을 거친 수많은 작가·연출자·배우의 것이 극장에 떠돌아 화석처럼 배어 있는 거죠. ‘먼지 총량의 법칙’은 배우로서 제 지론 중 하나입니다.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려면 연습실의 먼지를 어느 정도 먹어야 하고, 연습실에서 어느 정도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죠. 좋은 공연과 공연장은 그럴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광고를 얼마나 찍고 스타가 되는 게 성 공이 아니라 먼지의 총량과 땀의 총량이 이루어낸 것, 그게 성공인 거죠.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배우·무용수·사진작가·교수에 이어서 이번에 공공기관의 이사장까지 또 하나의 ‘부캐’를 쌓으셨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2022년 개인 박상원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공연계에서 1월은 보통 비수기라고 하는데, 작년에 예술의전당에서 한 모노드라마 형식의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이어서 하게 됐어요. 더불어 KBS 주말드라마를 봄부터 가을까지 들어가고, 제 모교이자 교편을 잡고 있는 서울예술대학교가 내년에 개교 60주년을 맞이하네요. 제가 총동문회장이기 때문에 거의 총괄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몇십 가지 행사를 총괄하는 동시에 학교 수업도 해야 하고 봉사활동이나 사회적인 일도 계속할 예정이고요. 물론 재단 일도 열심히 구경할 생각입니다. 대표는 재단을 잘 챙겨서 밖을 봐야 하니, 저는 이사장이자 시민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거리예술축제·예술청·서교예술실험센터·금천예술공장 등 어디든 기회가 있다면 어느 때보다 부지런하게 수혜자 입장에서 보고 제안도 하고 싶어요. 적절하게 가는지 그렇지 않다면 내부 개선도 필요할 테고요. ‘두드러진 시민’이 이사장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단 식구, 현장 관계자, 시민의 1인 3역을 지혜롭게 하면 이사장으로서 작게나마 제 몫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 정리 김영민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
사진 서울문화재단 | 사진 제공 박상원, 박앤남공연제작소, H&H PLAY

1 옛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리모델링해 공공극장으로 조성중이다.(2022년 6월 개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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