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2월호

쓸쓸해서 쌀쌀한 그, 삶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평범한 사람에게 찾아온 어둑한 비극은 그리 극적이지 않게, 그냥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태연하게 일상의 옆자리에 앉는다. 휘청대는 배경음악 없이 삶이라는 롱테이크 안으로 쑥 들어온 비극은 느리고 더딘, 그 단단한 일상을 뒤흔들 힘이 없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극적 변화 하나 없이 태연하게 찾아온 밤에는 혼자 뒤척이다 잠들고, 염치없이 또 해가 뜨면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비극이 내려앉은 삶은 어제보다 조금 더 쌉쌀하고 쓸쓸하다.

쓸쓸한 사람

작은 마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모금산(기주봉)은 서울로 영화 공부하러 간 아들 스데반(오정환)을 불러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내민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이루고 싶으니 자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어달라 한다. 아들의 여자 친구 예원(고원희)은 금산이 암 선고를 받게된 것을 알게 되고 스데반을 도와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초청장을 받은 지인들이 모인 상영회가 크리스마스에 열린다.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자신에게 찾아온 비극적 소식 앞에서 포악하지 않고, 묵묵하게 동행하는 한 중년 남자의 시간을 체감하는 영화다. 세상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지만 모금산은 여전히 이발소를 운영하고 마을 사람들과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동네 치킨집에서 벽을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금산에게 찾아온 나쁜 소식에도 그의 평범한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비극을 이야기하지만 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담은 이 흑백영화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시골 이발소의 풍경처럼 정서적으로 과거를 향한다. 죽음에 가까운 병에 걸렸지만 영화 속 모금산은 찰리 채플린을 연기하며 삶을 갈망하기보다 삶을 관조한다. 그래서 과거로 열린 금산의 시간이 우리에게 훨씬 더 아련하고 아득한 느낌을 준다.
일상·계획·여행·작별·성탄절 다섯 개의 챕터가 모금산의 일상과 아주 특별한 영화 촬영 시간을 동시에 품는다. 특별함 없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아주 특별한 개인의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개인에게는 우주보다 더 큰 기억을 편지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를 보고 위안을 얻은 관객이라면 그의 앞선 겨울 이야기 <메리 크리스마스 미 스터 모>를 되짚어 봐도 좋겠다.

쓸쓸한 삶

모금산은 그리워지는 기억과 과거에 묻은 진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쓸쓸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 영화를 찍게 만들지만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그리고 엉성하지만 간절한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기억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금산의 주위에는 평범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꽤 여럿 등장한다. 임대형 감독은 그냥 저 사람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까슬거리는 마음의 각질을 굳이 벗겨내려 하지 않는다. 깨진 항아리건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건 사람은 모두 제 삶의 그릇을 가지고 있고, 깨진 삶도 그저 삶이라는 사실을 긍정한다.
살다 보면 이정표를 따라 잘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다 잠깐 멈췄을 뿐인데, 대체 어느 길 위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나침반을 내밀며 이제라도 제 길을 찾으라고 한다. 그런데 길을 떠난 시작부터 나침반을 읽을 줄 모르는 길치인 그는 더 걷지 않기로 한다. 이제부터는 시간을 등지고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며 있겠다는 모금산의 이야기가 참 쓸쓸해서 쌀쌀하다.

미래 아파트 상가 모습은 어떨까

최근에 지어지는 신축 혹은 재건축 아파트 상가는 대로변의 노선상가 형태에서 탈피해 아파트 거주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형태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상가는 여전히 ‘플라자’ ‘스퀘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더는 내외부에 공평하게 열려 있는 ‘아케이드’가 아니게 됐다.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더 높은 부동산 가치 형성을 지향하는 지금, 다음 60년의 아파트 상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까. 갈수록 단절과 분화가 심화되는 서울의 도시 공간을 치유할 수단으로서, 머지않은 미래에 아파트 상가가 단지 바깥과 내부를 매개하는 공간 으로 회귀하기를 기대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

감독 임대형
출연 기주봉(모금산 역), 오정환(스데반 역), 고원희(예원 역), 전여빈(자영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 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