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6월호

인간-관계

요즘은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메일함부터 연다. 업무 연락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읽으며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다. 책상 앞에 앉기까지의 분주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에 의욕을 느끼도록 내가 나에게 주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요즘은 《일간 이슬아》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이메일을 통해 하루 한 편 양질의 글을 받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작가가 어젯밤 탈고한 글을 오늘 아침에 당장 읽는다는 사실이 이슬아 작가의 글에 담긴 일상을 더욱 생생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쓰다> 41호에는 《일간 이슬아》를 통해 소설을 선보인 바 있는 류한경 작가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류한경 작가를 사진작가로만 알아왔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찍은 사진을 떠올려보는 일이 대단히 새로웠다. <사과엔 자유형>이라는 제목이 그러하듯 매우 자유분방한 혹은 발랄한 소설이 아닐까 짐작하며 읽었으나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담은 여운이 긴 글이었다.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한 성급한 예측이 빗나간 경험이었다. 하지만 빗나간 예측이 오히려 낯선 글을 읽는 즐거움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몇 년 전 대학 시절 동엽이 내게서 상처 따위는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뒤늦게 실감하면서.
사실 나는 동엽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실감하면서.
류한경, <사과엔 자유형> 부분

대학 시절 ‘나’와 동엽은 같은 동아리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의 앞에 수영 강사가 된 동엽이 나타나지만 어쩐지 그는 ‘나’를 모른 척한다. 이 소설은 대학 시절 둘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갈등을 보여주면서 동엽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살핀다. 류한경은 이렇게 묻는 듯했다. 과연 죄책감이란 윤리적 감정일까? 어떤 주체의 과한 죄책감은 어쩌면 그의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류한경과 함께 이랑·조해주의 작품이 <쓰다> 41호에 실렸다. 조해주는 아침달 시인선을 통해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를 펴내며 독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간결한 이미지를 꾸리는 데도 조해주의 시는 복잡한 감정을 건드린다. 분명 익숙한 풍경인데도 그의 문장을 거치면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내게 아프지 않은 땅콩이 그에게는 돌멩이처럼 박히는구나. 땅콩이 무어라고. 땅콩을 떼어내 버리자
그만큼 움푹 팬 자국이 남아 있다. 땅콩 따위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나는 그와 다시 손을 잡는다. 있는 힘껏 잡아도 맞붙은 손바닥 사이에는
여전히 땅콩 같은 것이
조해주, <다름 아닌 땅콩> 부분

어느 날 보니 손바닥에 땅콩이 박혀 있다. ‘나’는 이 땅콩이 싫지 않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거나 만져본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저 땅콩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어떤 개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하는 ‘그’와 손을 잡는 순간 발생한다. 내 손에 박힌 ‘다름 아닌 땅콩’만 한 작은 것이 그에게는 돌같이 아팠을 것이라는 앎이 이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현경 야야! 어쩌면 우리 부자 될 수도 있겠다.
화영 무슨 말이야.
현경 봐봐. 평생 게임만 하던 사람들이 승준이 말고도 얼마나 많겠어.
승준 엄청 많지.
현경 그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라고 게임이 안 하고 싶을까.
이랑, <대재난 시대의 게임방의 가치> 부분

문학작품이 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것에 벌써 익숙해졌다. [비유]를 통해 문학이 얼마나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지켜봐 온 독자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소설 청탁을 받은 작가 이랑도 자기 피부에 감기는 사건을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게 아닐까. 인물들이 모여 있는 작업실 “창문 밖에서는 연신 빛이 번쩍대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온다. 나는 이 폭발음을 생계 한가운데 떨어진 코로나라는 폭탄의 굉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감염병으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저 대폭발과 다르지 않았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랑의 인물들은 당장 하루 이틀 후의 대책조차 없다. 어쩌면 곧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설의 풍경이 심각해야 하고 진지해야 할 텐데 그들의 대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고양이 똥 처리를 걱정하는 사소한 고민, 공포를 흐리는 시시한 말싸움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진지하게 강조할수록 어쩐지 장난 같아지는 오락의 중요성이 끼어든다. 그들은 대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게임방을 차리기로 한다.

비대칭적인 기억과 죄책감으로 결국에는 멀어지는 관계가 있다. 어떤 관계는 상대와 손을 잡겠다고 내 소중한 살을 도려낸다. 그래서 상처가 남더라도 사랑하는 상대를 꼭 잡아야만 했던 것이다. 또 어떤 관계는 별 공통점도 없는 느슨한 연대를 통해 삶을 꾸린다. 이렇게 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영원히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관계로 해명된다. 사람이란 관계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잔디 웹진[비유]편집자 | 사진제공 웹진 [비유]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