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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책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과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두 개의 미국을 만나다
미국은 광활한 나라다.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 돈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실리콘밸리가 있는가 하면, 중공업 지대에 들어선 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는 러스트벨트도 있다. 정치 성향도 인종 구성도, 경제 여건도 판이한 두 지역이다. 지난해 말 대선을 통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이 둘로 갈라진 미국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나란히 나왔다.

철의 공장에서 배운 신성한 노동의 가치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지음 |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도 러스트벨트 출신 노동자다. 29세에 아르셀로미탈 클리블랜드 제철소에 취직했다. 제철소에서 유틸리티 노동자 6691번으로 불렸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1986년생 대졸자,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진보주의자, 밀레니얼 세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제철소에서 저자가 겪은 노동의 실체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책이다.
러스트벨트에서 자란 저자에게 유황 냄새를 풍기는 제철소는 과거의 유산이었다. 고향에서 탈출하려 애썼지만 영문학 학위는 취업에 쓸모가 없었다. 학자금 대출 이자는 불어나기만 했고, 죽은 쥐가 우글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 페인트칠로 밥벌이를 해야 했다. 제철소의 일자리 제안에 고민도 없이 승낙한 이유다.
1,500도의 쇳물이 흐르는 용광로에서 선철과 강철이 만들어지는 제선과 제강 과정은 어마어마한 소음을 동반했다. 신입들은 코일을 조심하라는 말만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여성으로서 고충도 많았다. 일하다 타박상을 입어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됐다. 강하지 않으면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남자들은 여성 노동자를 회사가 채워야 하는 할당량으로 봤다. 여성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고, 툭하면 맨스플레인을 했고, 신체 접촉을 일삼았다.
강철은 겸손을 배우게 했다. 두 개로 갈라진 미국의 현실을 배우게 했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때론 목숨을 빼앗는 기계 앞에서 동료애를 배웠다. 무엇보다 뼈저리게 배운 건 노동의 신성함이었다. 더럽고 뜨겁고 시끄럽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이곳에서 만드는, 압력에 부서지지 않는 수백만 톤의 강철이야말로 만드는 과정이 화려하진 않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했다.
저자는 대학 영문학 강사가 되며 제철소를 떠났지만, “철강 노동자로 살아간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자신감과 재정적 안정으로 삶에 주인의식을 되찾아 줬고, 가난과 성폭행과 병의 상흔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이유에서다. 부서진 것을 고치는 시간, 제철소에서 보낸 한 시절을 문학적 문체와 깊은 성찰로 그려낸 보기 드문 논픽션이다.

괴짜들이 만든 문화, 미래를 만들다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 애덤 피셔 지음 | 김소희 외 옮김 | 워터베어프레스

오래전에 실리콘밸리는 목가적이며 심심하기만 한 교외 지역에 불과했다. 이곳이 어떻게 ‘미래’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됐을까.
애덤 피셔는 이 지역이 다양성을 포용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통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곳에선 거의 모든 이가 어린 시절 컴퓨터나 게임을 접하고, 해킹이나 컴퓨터에 푹 빠져 컴퓨터과학이나 전자공학을 공부한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으로 생각하며, 기술을 중시하고 데이터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다. 현실의 문제점을 고민하면서도 이상적인 꿈은 놓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똑똑하고 유쾌하게. 한마디로 너드(Nerd) 문화다.
제목이 뜻하는 그대로 이 책은 실리콘밸리에서 신화를 쓴 기업들의 창세기로 빼곡히 채워졌다. 1968년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을 선보인 데모(demo)로 시작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애플을 세운 일,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과 잭 도시의 트위터가 성공하기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복원해 낸다. 마법의 순간을 직접 마주한 사람을 수소문해 200명이 넘는 이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실리콘밸리가 어떤 문화와 특징을 갖게 됐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준다. 그것도 인터뷰이 200여 명이 일제히 등장해 한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말이다.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는 도시 문화에 주목한다. 기술 기업이 점차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다 보니, 사람들도 점점 도시로 몰리게 됐다는 것. 예술가이면서 엔지니어인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고 도시 자체를 진화시켰다.
이 난상 토론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인터넷 혁명의 중심에 있던 기업들도 초라하게 시작했으며, 끝없는 내외부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거나 도태됐음을 알게 된다. 넘어지지 않은 신데렐라는 없었다는 사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았다.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된 실리콘밸리를 깊숙이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참고서다.
글 김슬기_《매일경제》기자
사진 제공 마음산책, 워터베어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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