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0월호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햇살 놀이터 <오버코트> 연결되어 있기에 의미 있는 ‘우리’

<오버코트> 공연 장면

교실이 텅 비었다. 올해 우리 아이들은 6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올 수 있었다. 열 번도 채 만나지 못했는데 또다시 등교가 중지되었다. 돌이켜 보니 학교와 극장은 참 닮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호흡하며 연결되어 있기에 의미 있는 작업들.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듯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도 관객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원래대로 등교, 개학을 했다면 아이들과 함께 봤을 테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격상 등으로 상황이 급변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혼자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예고 영상 옆으로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의 댓글을 볼 수 있었다. 나 혼자 방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있지만, 누군가 같은 시간에 이 공연을 함께 보고 있다는 데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몇 번 온라인으로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제일 어려웠던 것이 공연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극장’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이 주는 감각, 공연 안내를 하는 소리, 조명이 모두 꺼지며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 이를 통해 관객은 공연에 빠져들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영상을 통해 공연을 볼 때는 이런 것들이 없다. 눈을 돌리면 삶의 문제들이 보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연극적 환상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얼마 안 가서 사라졌다. 햇살 놀이터의 <오버코트> 공연이 시작되고 주인공 제인이가 무대에 등장한다. 카메라에 눈을 맞추고 인사하며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본다. 실제로도 간단히 밥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려고 준비했던 터라 깜짝 놀랐다. 지금, 나 보고 있는 거 아니지?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카메라를 보고 인사하는 것, 비록 저 멀리 다른 시간에 존재했을 테지만 영상 매체를 통한 소통의 장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인 관객에게 딱 맞춘 인사.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공연에 빠져들고 있었다.

무대에는 나무로 된 프레임이 놓여 있고, 그 나무막대를 들어 올려 구조물을 세우고 돌돌 말린 천을 펼쳐 배경을 만들어나간다. 이 과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제인이는 출근하려는 아빠를 못 가게 붙잡다가 코트에서 풀린 실을 잡아당긴다. 아빠와 제인이는 실로 나비를 만들기도 하고, 스크린에 걸쳐 새로운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동물 모양인 것 같은데,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하다 눈을 딱! 붙이는 순간 코끼리로 변했다. 실로 모양을 만들어내고, 공간을 만들고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날이 빨리 돌아오기를 빌었다.

혼자 남아 놀던 제인이는 실을 뭉쳐 스크린으로 던진다. 장난치듯 스크린에 실 한 올이 튀어나온다. 뻗어나가는 실에 갇힌 제인이! 마치 거미줄에 꽁꽁 감긴 모양이 되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가위로 숭덩 실을 자른다. 실재하는 사물과 영상이 조화롭게 활용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스크린 속의 실과 실제 물건들이 결합하면서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 정말 좋았다. 실은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줄넘기가 되었다가 외줄타기 줄이 되었다가 심전도선이 되기도 한다. 제인이의 몸을 가로지르던 선이 제인이의 머리 위로 위치만 이동했을 뿐인데 그 아래는 바다가 된다. 그게 그냥 스크린 위의 줄 하나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모두의 상상 속에서 그 선은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이 된다.

늘어진 줄로 고무줄놀이를 하다 보니 실이 스르르 사라진다. 다시 끌어다가 허리에 묶는 제인이. 실을 계속계속 끌어다 온몸에 묶는다. 그 반대쪽 끝엔 옷의 올이 풀려 옷이 반만 남은 아빠가 등장한다. 털실을 잔뜩 감은 제인이와 제인이가 털실을 감은 만큼 옷이 반쯤 사라진 아빠, 두 사람의 포옹과 함께 공연이 끝난다.

어른인 나도 제인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저 실은 어떤 새로운 것으로 변할지 홀린 듯 바라보게 되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푹 빠져서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함께 공연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고 웃었다면 더더 행복했을 텐데. 재미있어서 터져 나오는 날것의 반응과 함께했다면 훨씬훨씬 즐거웠을 텐데.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따른 새로운 예술 경험, 체험 방식이 생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이가 실을 가지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볼 때 시청 중인 아이들이 직접 따라 해보면서 함께 놀 수도 있지 않을까?

글 김은빈_관객,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mellipear@naver.com
사진 제공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