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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역사적 길목에서 ‘시민이 지킨 공원’ 내게로 오는 공원 1 통의동 마을마당
서울에는 몇 개의 공원이 있을까?
놀랍게도 2,319개(2018년 1월 기준)의 공원이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 경복궁 서편 영추문을 마주하고 있는 ‘통의동 마을마당’은 1997년 서울시가 만든 공원으로,
청와대와 가까운 탓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원은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공원이 그렇지는 않다.
통의동 마을마당은 주민이 힘을 모아 가까스로 지켜낸 공원이다.

통의동 마을마당을 지켜내기 위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촛불 공원 행사

시민이 주인인 도시의 공간, 공원

공원은 어디에 있는 것이 가장 좋을까? 도시 전체를 놓고 인구 밀도, 주변 현황 등을 고려해 가면서 거시적으로 위치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 바로 옆’ 같은 아주 소박한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누구나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곳은 사람들의 왕래도 꽤 있고, 주변에 가볼 만한 곳도 있고, 매력적인 장소일 것이다. ‘공원이 들어서기에는 너무 비싼 조건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공원이란 그렇다. 특히 도시의 공원이란, 원래 이렇게 비싼 것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헬싱키의 에스플라나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서쪽 돌담을 끼고 청와대 쪽으로 올라가는 효자로는 아마도 서울에서 은행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길일 것이다. 화강석이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이 나온다. 그 바로 맞은편, 어딘가 1970년대의 분위기가 나는 동네에 손바닥만 한 작은 공원이 있다. 지금 한창 재조성 공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표지판 하나 없이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 작은 정자 하나, 벤치 몇 개, 약간의 운동시설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통의동 마을마당’이라고 한다.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이 조용하고 작은 공원이 시민과 공권력이 두 번이나 충돌한, 그리고 결국 시민이 두 번 모두 승리를 거둔 치열한 격전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두 번 모두 인근의 청와대와 관련이 있다. 한 번은 청와대를 지키기 위한 경호 시설이 들어올 뻔했고, 그다음에는 청와대가 아예 이 땅을 민간인 개발업자에게 넘겨버렸다. 게다가 하필 그 무렵 청와대는 소위 국정농단 사건과 이를 규탄하는 촛불 정국의 한복판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행정의 관성력 때문이었을까, 그 혼란의 와중에도 청와대는 매각 절차를 완료했고, 그러고는 완전히 침몰해 버렸다.
문제를 만든 당사자는 사라지고 개발업자, 그리고 이 공원을 구하고자 모인 ‘공사모(공원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라는 한 무리의 시민들이 서로를 엉거주춤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서울시가 구원투수로 나서 이 모든 과정을 다시 뒤집었다. 그전에 이렇다 할 법적 지위조차 없던 이 공원은 도시계획시설 ‘공공공지’로 지정됐고, 온갖 진통 끝에 재매입을 위한 예산의 확보와 승인이 이루어졌다. 소유자와의 협상이 이어지고, 그래서 서울시가 다시 이 공원의 소유자가 된 것은 상황이 발생한 지 2년 하고도 몇 달이 지난 후였다. 애초에 20년 전인 1997년, 서울시가 만든 공원이었다.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공원, ‘시민의 마당’이 되다

경복궁 옆이니 땅의 역사가 만만치 않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에 ‘대루원’, 즉 대소 신료들이 아침에 영추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건물, 그리고 천문을 관측하던 관상감 등이 있었다. 정철의 <관동별곡> 에 영추문의 옛 이름인 ‘연추문’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이 앞을 오갔으리라. 고종 연간에는 매동소학교가 이 일대에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학교가 지금의 사직공원 옆으로 이사한 후, 그 부지는 여러 개로 쪼개졌고 그중 하나가 지금의 통의동 마을마당 터가 됐다. 이후 경기도지사 관사 한옥이 지어졌다가 민간에게 불하됐는데, 이를 매입해 집과 사무실로 사용한 이는 일제강점기에 한옥과 서양식 건물 모두를 다루었던 개성 출신의 시공업자 마종유였다.
이 집 앞 효자로는 ‘대한민국’ 시대에 들어 지속적으로 시민과 공권력이 충돌하는 장소가 됐다. 4·19 혁명 당시 서울시내 사상자의 대부분이 이 길에서 발생했고, 5·16 군사정변 때는 탱크의 진동으로 길가의 집들이 흔들렸다. 이러한 대결의 전통은 공원의 소유권이 민간에게 넘어간 2016년 말과 2017년 초의 촛불 정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잠잠해졌지만 이제 시위는 이 동네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여전히 위치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이른바 역세권이라 교통도 편하고, 바로 길 건너에는 경복궁이 있으며, 배후의 동네는 서울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서촌이다. 당연히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기관과 사람들이 이곳을 노려왔다. 그간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여전히 시민을 위한 공공의 장소로 남아 있게 된 것은 차라리 기적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모두의 승리다. 일부러 찾아가는 공원이 아니라 내게로 오는 공원, 모두가 힘들게 지켜낸 소중한 곳, 그것이 바로 통의동 마을마당인 것이다. 이제 봄이 되면, 재조성 공사를 마치고 다시 말끔한 모습으로 시민을 맞이한다. 20년이 넘어 이제 거목으로 성장한 느티나무가 여전히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공원은 또 없다. 봄날의 한가로운 나들이 길에 들르기 딱 좋은 곳이 아닐까.

글 · 사진 황두진_건축가.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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