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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죽음에 대한 생각



<쓰다> 27호 포스터.



<쓰다> 6호 포스터.

사람은 자신이 가장 치열하게 감당했던 감정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시절에 느낀 감정을 끝내 떨치지 못한 채, 그것과 긴 시간을 함께하고, 함께한 만큼 오래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그 감정에 깊이 정드는 게 아닐까. 기쁨보다는 슬픔이, 기대보다는 체념이 아무래도 떨치기 어려운 감정이라서 사람들은 비극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비극적 감정이 우리를 마냥 우울하게 만들거나 고립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 치열하고 깊은 감정은 보다 넓은 상상력과 공감 능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죽음에 관해 상상하는 일, 죽음을 맞이한 자의 슬픔을 떠올리는 일, 나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세상을 생각해 보는 일을 슬픔이나 체념 같은 감정 없이 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때로 감정은 상상력의 테두리가 돼준다. 장승리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오래전 읽었던 금해랑 시인의 동시를 떠올리게 된 것은, 두 시인이 자기 감정을 죽음이라는 사건 가까이 밀어보는 방식이 똑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슬픔이 묻는다/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새가 답한다/네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슬픔이 묻는다/그곳도 하늘인가요
장승리 <하늘> 전문

어떤 사람은 기쁨, 행복,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 너무나 익숙해서, 자기 자신과 자기가 놓인 상황을 동일시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 생이 우연한 축복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고, 그래서 죽음처럼 끔찍하고 싸늘한 사건 같은 건 영 남의 일처럼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장승리 시인에게는 슬픔이 없는 세계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슬픔과 매번 너무나도 가깝다.
이처럼 슬픔과 가까이 지내는 자는 슬픔을 상상하는 능력도, 그 슬픔이 초래하는 죽음과 같은 상태를 그려보는 능력도 탁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자기 슬픔을 어떤 익숙한 물건처럼 자기 바깥으로 꺼내어 보기도 하고, 그것의 비극성을 죽음과 견주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새에게 슬픔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정작 새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질문 자체다. 슬픔이 보이지 않는 그곳이 과연 하늘인가? 슬픔 없는 하늘과 같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시인에게는 그럴 리가 없다. 저 ‘하늘’ 너머가 의미하는 바가 죽음이건 천국이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슬픔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안에 들어가면 좋아유?/아즉 못 들어가 봤구먼유/날 좋으믄 돈 벌어야 허고/날 궂으믄 청소허고 빨래허야 허니께/여그서 10년 넘게 장사했어도/창덕궁 대문허고 기왓장이나 봤지/아즉 못 들어가 봤구먼유/꽃도 이쁘고 궁도 이쁘다구유?/구중궁궐 안에는/꽃피는 봄이 있겄지유/다음 생에는 꽃귀경 헐 수 있을랑가/에고, 봄도 꽃도 미련읎구먼유/이 생에 죄 안 지었응게/다음 생은 없겠지유
금해랑 <창덕궁의 봄> 전문

너무나도 고단한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건 때로 죽음뿐이다. 결코 다음 생을 바라지 않는 저 화자의 마음을 나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창덕궁 문턱 하나만 넘으면 가능한 꽃구경조차 후생으로 미뤄야 할 만큼 극한 가난에 시달리는 저이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이 노년의 노동자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은 체념일까? 화자는 담 너머에서 꽃이 피고 지듯, ‘꽃귀경’은 이 생의 너머에 있다고 가정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다음 생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고단한 생활이 먼 미래를 넘어 죽음 바깥의 가능성까지 닫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장승리 시인의 슬픔도 금해랑 시인의 체념도 떨쳐야 할, 이겨내야 할, 품지 말아야 할 무엇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사람은 슬픔과 체념 속에서도 삶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어떤 감정은 우리를 지나간 이후에도 우리 삶과 태도에 끝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두 시인의 어떤 슬픔과 체념이 생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냈듯이 말이다.

글 김잔디_웹진 [비유] 편집자
사진 제공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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