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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영화감독 이승준울고 있는 자들이 그날을 기억하는 방식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떤 화려한 말이나 행동보다는 어쩌면 담담하게 나누는 대화이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카메라가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카메라에 담으려 하는 몸짓 또한 그렇다.
제24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 부문 대상에 빛나는 <달팽이의 별>은 척추 장애를 가진 순호 씨와 시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영찬 씨의 느리지만 아름다운 삶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은 달팽이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직하고, 고집스럽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을 때, 또 한 편의 한국 작품이 아카데미 대열에 함께했다.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이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재난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로 세월호 5주기를 기점으로 제작돼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제작할 때부터 해외에 알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부재의 기억>의 아카데미 후보 선정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을 대표해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라는 세계 무대에 선 최초 작품이기도 하고, 현실을 질료로 하는 다큐멘터리 고유의 특성상 작품이 품은 사건과 함께 주목받기 때문이다. 이승준 감독과 <부재의 기억>을 경유해 그의 다큐멘터리 인생 여정을 나누어 보았다.

뒤늦었지만 축하한다. 그리고 살짝 아쉽다. <부재의 기억>은 정말 많은 사람이 보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상영됐기 때문인 듯하다.

처음부터 공익 목적으로 온라인 기반 상영을 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제작이었다. 전통적 배급 방식과 달라서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이 많다. 국내의 경우는 영화제 상영 조건에서 프리미어 조항과 충돌해 고민한 적도 있고, 미국에서는 ‘더 뉴요커’ 구독자와 연동해 순식간에 100만 조회수를 돌파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경우 온라인 상영 중이어도 영화제에서 계속 상영됐다는 거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보고 극장 상영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도 있었다. 국경을 넘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는 차원에서 유튜브 상영은 성공적이었다.

매체마다 문법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부재의 기억>은 온라인·영화·방송 모두 넘나든 거 같다. 작품을 만들 때 염두에 둔 점이 있는가?

나는 영화의 기본 문법을 방송에서 배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TV 다큐멘터리영화를 보면 그렇게 좋았다. MBC <인간시대>를 보면서 성장했고, 진짜 실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감동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그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방송국에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다. 방송국 PD를 준비하다 몇 차례 고배를 마실 때 선배가 묻더라.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은 거냐? 방송국을 가고 싶은 거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분리해서 생각한 적이 없던 거다.
실무 경험을 방송 기반으로 쌓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다큐멘터리가 방송이다 보니 방송 문법이 익숙하다. 특히 대중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드는 자세는 방송에서 배웠다. 그러나 방송의 경우 다소 습관적으로 붙는 설명적인 내레이션이 편하지는 않다. 반면 영화는 방송에 비해 자유롭고, 몰입감도 있다. 그러나 지금 넷플릭스를 보면 대중적이면서도 자유롭고 몰입감 넘친다. 방송이냐 영화냐는 처음부터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둘다 각각의 특성이 있고 이에 맞게 풀어가면 된다. 다만 방송과 영화가 잘못 섞이면 이쪽도 저쪽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방송과 영화 문법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한국이 특히 심한 거 같긴 하다.

왜 ‘세월호’였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

<부재의 기억>은 처음부터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나에게 묻는 것이기도 했는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가?”였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그때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것이 대전제였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2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파편적으로 접해 왔다. 대단한 진실이 아니고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통의 시작이 거기에 있었다면 그 지점으로 다시 가야만 했다. 사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대부분 지우려 애쓴다. 시간이 지나면 “됐다. 이제 그만하자.” 이런 식의 반응을 자의 반 타의 반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되 가능한 한 디테일하게, 심지어 분 단위로 타임라인을 만들었다. 그것이 주는 어떤 충격과 일깨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동일한 시간대 아이들의 문자와 영상을 배 바깥의 구조 상황과 매칭한다면 고통의 근원을 짚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로 그 바다 그 순간으로 가는 구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배가 인양된 다음부터 역순으로 가려고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워낙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현재의 고통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으로 시작했다. 한데 그 시간을 경험하지 않은 해외 관객을 고려할 때 순서대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동의한다. 정공법으로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시간 단위로 목도하면서 의도한 충격과 일깨움이 있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그 고통의 현장으로 가게 됐다. 영화는 자료 영상으로 구성됐지만 대단히 영화적이다. 바다로 다가가는 오프닝에서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클로징도 그렇고, 고통의 순간을 시간 단위로 분절해 내는 게 기억의 메커니즘과도 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김관홍 잠수사 장면은 처음 그 멘트를 듣는 순간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기획할 때 앞쪽은 팩트 기반 정공법으로 덤덤하게 가지만 맨 마지막에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갔으면 했다. 현장에 있던 유가족이나 잠수사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팩트만큼 중요한 것이 결국은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라 여겼다. 김관홍 잠수사의 말에는 공감을 불러오는 마음이 있었다. 그의 말을 되뇌면서 팽목항에서 새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마음이 움직이는 그 어떤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격렬한 희로애락의 그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나에게 오고 그리고 지나가는 순간 고요하고도 차분하게 그리고 먹먹하게 남아 있는 그 어떤 파동이 있다. 그런 순간은 때론 너무나 일상적이다. <부재의 기억>의 엔딩이 그렇다. <달팽이의 별> 경우 역시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농담처럼 결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말 속에 마음의 결이 담겨 있다. 미세하고 작아 보이는데 쌓여가면서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드는 순간이 있다. 일상의 틈 속에 묻어나는 감정이랄까. 비어 있는 여백 속에서 읽히는 무엇이랄까. 그게 정치적 이슈든 사회적 이슈든 휴머니즘 이슈든 상관없다. 이에 비하면 사건을 통해 감정이 폭발하는 그런 감동은 오히려 약한 거 같다.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위)과 2010년작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은 사건의 표면보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결에 먼저 눈이 가는 사람이다. 사건을 알리거나 진실을 추구하거나 어떤 주장을 하는 근사한 작품도 많지만, 이승준 감독의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에서 묻어나는, 혹은 품고 있는 ‘소소한 순간들’을 담는다. 그것들이 뿜어내는 미묘하고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감동’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마주한 현실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감각했는지 차곡차곡 쌓듯이 담아내고 있다. 기록에도 결이 있다면, 이승준 감독의 방식은 쌓는 기록이 아닐까.

해외 관객을 만났을 때 반응은 어떠했나?

처음에는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복잡한 맥락이 있어 해외 관객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상영이 끝나면 사람들이 눈이 빨개져 있고 훌쩍거리는 거다. 영화 상영 중에도 한국인이 분노하고 반응하는 장면에서 해외 관객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관객과의 대화 때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열띠게 나눴다. 우리처럼 다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해 국민이 죽은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 지역에서 일어난 유사 사건을 말하기 시작하는 거다. 영화가 한국의 로컬 이슈로만 읽히지 않는 거다. 이번 아카데미 레이스에서도 다섯 편 단편 다큐멘터리영화를 동시에 상영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 <부재의 기억> 반응이 단연 좋았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감독들 사이에서도 작품에 대한 지지와 반응이 뜨거웠다. 소통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다.

이번 아카데미 레이스에 세월호 유가족 분들과 함께했다고 들었다.

이심전심이었다. 두 분 어머님이 함께해 주셨고, 아이들 이름표를 달고 레드카펫에 섰다. 세월호를 알리는 여정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분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힘든 시간을 겪어온 분들에게 고통의 근원을 짚어가는 이 작품만이 할 수 있는 선물을 나누고싶었다. 레드카펫에 동반할 수 있는 일인으로 이분들께 부탁했고, 이에 대해 함께 간 제 가족들도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막상 경험해 보니 레드카펫 자체는 미디어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더라. (웃음)

아카데미 레이스 경험에서 본 것이 궁금하다.

단편 다큐멘터리나 장편 극영화나 다 똑같이 대우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작품을 부문이나 장르 경계 없이 동등하게 영화로서 대해 준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구분하는 다큐와 극영화, 단편과 장편의 차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 감독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아카데미 후보가 되면 그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한국 돌아오니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여전히 피칭 준비하고 트레일러를 만들어 응모하고 있다. (웃음)

그래도 아카데미로 인해 세계 속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인증받은 셈이다. 어떤 여정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나?

대학 졸업 후 감사한 인연으로 이어진 분들이 있다. 앞서 나에게 방송국이냐 다큐멘터리냐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해준 선배를 만나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맺은 인연으로 다큐멘터리 계간지를 내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큐멘터리 사진 하는 분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과 태도, 기록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배웠다. 시민방송 RTV에서는 6mm 작업과 휴먼 다큐멘터리를 원 없이 제작했다. 일주일에 4편씩 4년 동안 작업했다.
또 다른 인생 인연은 이성규 선배다. PC 통신에서 처음 만나 그와 함께 한 일이 너무도 많다. 인도에 함께 갔고, 그 선배 덕분에 영화와 방송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인도에 가 함께 만든 첫 작품 <보이지 않는 전쟁>은 한국독립단편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 전신)와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KBS 수요기획에서 안산 이주노동자를 담은 50분짜리 영상으로 입봉을 했다. 이후 <신의 아이들>도 만들어 생애 처음 해외 영화제에 나갔다. 따로 영화를 배우지 않아서 혼자서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갈증이 많았다. 그 갈증이 사람과 이어지면서 길을 만들어준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로 맞물리는 여정이었다.

첫 장편 작품 이후 거의 모든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 소개되고 상영됐다.

<신의 아이들>로 처음 핫독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나갔다. 해외 영화제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나이 든 관객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이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달팽이의 별>은 기획 단계부터 국내외 다큐멘터리영화제와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면서 시작했다. 당시 해외 쪽을 잘아는 김민철 PD와 함께 피칭을 하면서, 국내에서는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 해외에서는 셰필드다큐멘터리영화제(Sheffield Doc/Fest)·홍콩아시아사이드업·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나는 늘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를 구체적으로 질문해 왔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가 하나 열리면 다시 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또 질문했다. 그렇게 결과보다는 그 과정 과정에서 열린 길에 발을 내딛는 방식이었다.
이승준 감독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던 거 같다. 그게 무슨 차이인가 싶겠지만 그 미묘한 차이가 지금의 그를 만든 모양이다. 결과를 설정하고 욕망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하고픈 것을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가며 해나가는 것이다. 그에게 그것이 ‘다큐멘터리’ 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진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게 정치든, 사회든, 인물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최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그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우리네 삶의 ‘주름’이 생긴다.

긴 시간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지금 코로나19 재난 상황과 당시 세월호 재난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차이점으로 어떤 부분이 있을까?

일단 숨기는 게 없다는 점이다. 투명하게 풀어가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일의 처리에서는 미숙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풀어가는 방향성에서는 투명하고 민주적이라고 본다. 다만 국가가 조금 더 강하게 나가도 될 거 같은데 하는 마음이 한편으로 들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정부보다 언론이 그때와 똑같다는 점이 가장 답답하고 무섭다. 시민사회에서 자정 작용을 일정 부분 하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글 이승민_영화평론가
사진 공간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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