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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책 <지구에서 한아뿐>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미지의 존재를 상상하다
우주 다큐멘터리는 꽤 효과 좋은 수면제로 쓰인다. 유튜브에 우주 다큐멘터리 영상을 검색해보면 ‘편안한 수면’, ‘잠 오는 목소리’, ‘꿀잠 다큐’ 같은 수식이 붙는다. 잠들기 힘든 밤에도 좋지만 우울할 때도 다소 도움이 된다. 우리 모두 광활한 우주를 스쳐 지나가는, 별것 아닌 존재라 생각하면 골머리 앓던 문제들도 조금은 작게 보일 수 있다. 끝없는 우주와 미지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드는 두 소설을 소개한다. 국내 작가가 쓴 두 과학소설(SF)은 과학에 손 뗀 지 오래됐더라도 그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SF의 약진 덕분일까. 최근 예스24는 올해 장르소설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20% 이상 급증했으며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랑은 우주에서 하나뿐<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난다

환경을 생각하며 저탄소 생활을 고집하는 한아는 지구에서 하나뿐일 것 같은 가게를 운영한다. 이름은 ‘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가게’. 특별한 사연이 있어 버리긴 아깝고 그대로 입기엔 낡아버린 옷들을 맡기면 자투리 천과 잡다한 재료들을 이용해 새로운 옷으로 ‘환생’시켜주는 희귀한 가게다. 혼란스러움과 무질서가 매력인 이 가게에는 “버려질 뻔하다 다시 발견된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런 한아에게 반해 우주에서부터 운석처럼 날아온 미지의 존재가 나타난다. 11년 사귄 남자친구 경민의 몸으로 찾아온 외계 생명체는 툭하면 입에서 초록 불빛을 내뿜는다. 신체의 40%가 광물로 이뤄진 이 외계인은 망원경으로 한아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한아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평화로운 자신의 별을 버리고 2만 광년을 건너왔다는 이 부담스러운 외계인에게 조금씩 익숙해진다.
특별한 존재의 우주에서 하나뿐인 사랑을 그리지만 그 문장들은 지극히 보편적이어서 마음을 건드린다. 모든 사랑은 결국 우주에서 하나뿐인 사랑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운석이 떨어지던 날, 실종된 가수 아폴로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팬클럽 회장 주영의 사랑도 그렇다. 남들에겐 한심한 짝사랑일지라도 그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아폴로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주여행도 두렵지 않다. 한 치의 망설임도 허락하지 않는 주영은 이렇게 말한다.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들어주는 한아의 가게처럼, 이 책도 환생 과정을 거쳤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정세랑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2012년 출간됐다. 한동안 책이 절판되면서 중고 가격이 급등해 결국 다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스물여섯에 쓴 소설을 서른여섯에 고쳐 쓰게 된 정세랑 작가는 “과거의 자신에게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며 같은 이야기를 통과해봤다”면서 “다시는 이렇게 다디단 이야기를 쓸 수 없겠지만, 이 한 권이 있으니 더 먼 곳으로 가보아도 될 것 같다”고 후기를 남겼다.

과학도가 쓴 과학소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김초엽의 단편 <스펙트럼>에서도 외계 존재와의 소통은 두렵기보다 지극히 아름답게 그려진다. 우주를 항해하던 도중 조난당한 생물학자 희진은 미지의 생명체와 만난다. 이족보행을 하며 도구를 쓰는 외계인들은 인간과 퍽 닮아 있어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희진은 이 생명체들의 독특한 언어에 주목한다. 죽는 순간까지 동굴에 그림을 그리는 외계 생명체들이 색채 언어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희진은 노을의 붉은빛을 보는 외계인을 보며 이렇게 감탄한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공생가설>에선 류드밀라 마르코프라는 소녀가 색연필을 쥐고 미지의 행성을 그린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몽환적 풍경을 그린 류드밀라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류드밀라의 행성’이라 불렀다. 류드밀라가 죽은 뒤, 우주여행 중에 그림과 매우 닮은 실제 행성을 찾아내고 외계 존재의 비밀이 밝혀진다.
작가 김초엽은 요즘 SF 유망주로 꼽힌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신인 작가에게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수식이 처음엔 의아하기도 했지만, 작품을 읽고 나선 그 수식에 동의하게 됐다.
그의 소설들은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들이 나오는 SF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선 은퇴한 과학자 할머니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선이 폐지된 우주정거장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선 유전자 조작으로 완전무결해진 인간에게 결점 있는 평범한 인간들이 차별을 받는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선 우주비행사 훈련에 실패한 여성 우주인이 전 국민의 과한 비난을 받는다. 기술이 발전해도 소외된 사람들은 남아 있고 세상은 여전히 엉망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엉망이 되어버린 세계에서조차 끝내 아름다운 무언가를 증명해내는 인물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글 백수진_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난다,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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