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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작가의 방
'작가의 방'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본 게시글은 한겨레신문의 <서울&>에 소개되는 '사람in예술'에 동시 게재됩니다.
배유리 안무가 겸 연출가 인생은 달랑 캐리어 하나

“내게 익숙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해요.”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배유리는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열린 전시 퍼포먼스 <캐리어>(carrier, 사진)를 앞두고 이렇게 다짐했다. 10여 년간 무대 공연의 주역으로 활동해왔지만 이제는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로서의 고민이 더 많아 보인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 서른 중반에 쫓겨나다시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립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이상적인 주거’를 꿈꾸게 됐단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무용단에서 나와 홀로서기 할 때의 혼란스러움과 비슷해요.”
엔(N)포 세대 청년들도 이상을 꿈꾸지만 그들에게 놓인 현실은 전작 <33㎡>가 표현한 ‘10평 이내의 원룸’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청년에서 더 나아가 일반 사람의 생활 패턴으로 고민을 확장했다. “결국 저 같은 1인 가구가 많아지면 원룸은 보편화될 거예요. 언젠가는 개인의 소장품들도 캐리어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단순해지지 않을까요?” 현대인의 ‘미니멀리즘’을 말하는 공연 <캐리어>는 이렇게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주거’와 오브제로 사용된 ‘캐리어’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공연은 원룸으로 꾸민 무대에서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네 명의 남녀들이 자신만의 삶을 동작으로 표현한다. 캐리어를 끌기도 하며, 때로는 그곳에 몸을 구겨 넣기도 한다. 전시장 곳곳엔 안무가가 살아왔던 원룸의 흔적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깔려 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죽을 때를 생각했어요. 화장터 앞에 다다르면 저의 모든 것은 버려지고 캐리어 하나만 남지 않을까요?” 어쩌면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상이 곧 다가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렇게 인생의 끝에 있는 죽음의 메시지까지 관객에게 전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거칠고, 불편한 작품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를 감출 필요는 없어요. 정해지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상상이야말로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거든요.”

배유리는 국민대 무용과를 거쳐 종합예술대학원에서 댄스시어터를 전공했다. 2015년부터 ‘베타프로젝트’ 팀에서 연출가와 안무가로 활동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청춘 엘레지>(2011), (2009~2014), <불현듯, 부아가 치밀때가 있다>(2015~2017), <페스트만신창의>(2017~), <33㎡>(2018)가 있다.

황규민 작가 ‘옴마니반…’ 주문 비틀기

“왜 읽을 수 없는 문자에 미래를 내맡길까?”

지난 8월 1일부터 11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전시 <머엠댑이냄모>(MUH EMDAP iNAM MO)를 연 화가 황규민이 던진 질문이다. 전시는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면서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네팔의 산길을 걷다 보면 발에 챌 거 같은 돌들 중에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것이 있죠. 이런 돌을 보면 왼쪽으로 걸어야 해요. 그리고 ‘옴마니반…’이라고 주문을 외우면 하루가 잘 풀린대요.” 가이드에게 이 문자의 뜻을 물으니 그건 티베트 승려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현지인들은 단지 평생 이 글을 돌에 새긴단다. 이처럼 히말라야 사람들은 미지의 주문으로 미래의 안정을 구한다. 황 작가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2017년 1월 히말라야의 한 절벽에서 떨어지며 척추뼈 7개가 부러진 탓에 대수술을 받으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만 알죠.심지어 현재도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과거만 아는 것 아닐까요?” 작가는 알 수 없는 미래, 실체와 전혀 다른 목표를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꼬았다. 전시 제목은 불교 승려들이 외우는 육자진언(六字眞言)인 ‘옴마니반메홈’(Om Mani Padme Hum)을 거꾸로 뒤집은 말이다. 황 작가는 불분명한 소리에 주문의 느낌만 남겼다며, 읽는 소리는 정해지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ㄷ’ 자 모양의 공간에 양쪽으로 늘어선 돌과 막다른 벽에 걸린 안개 낀 풍경 그림 등으로 구성됐다. 돌무더기 앞에 “돌을 왼손에 얹고, 내일의 안녕과 목표가 이루어지는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며, 왼쪽으로 돌아가시오”라는 표지판이 놓였다. 관람객은 안내에 따라 끝에 이르면 안개 낀 풍경과 마주했다. 전시의 사용 설명서를 보면 황 작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엔 묘사된 것이 거의 없는 비닐에 싸인 그림을 보게 될 거예요. 그 비닐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말이죠. 목표나 꿈과 같은 미래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좀 더 되돌아보면 좋겠어요.”

황규민, <MUH EMDAP INAM MO>, 한지에 수묵, 175×334cm, 2019.

황규민은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통재료를 이용해 풍경과 인물을 그린다. <뉴드로잉프로젝트>(2017~2018,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ASYAAFDDP>(2017~2018), <AG 신진작가대상 선정작가전>(2019, 안국약품 갤러리AG)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서보 작가시대의 번민, 캔버스에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단색화 열풍을 이끌었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고전, <박서보> (5월 18일~9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전시장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대한민국 미술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그가 구순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한 세기를 통과할 만큼 지칠 줄 모르는 변신의 비결도 궁금했다. “권태를 모른 채 수행을 반복하는 작가”라고 말문을 연 그는 전시의 부제도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고 지었다. 아날로그 70년을 정리하는 이번 전시에 관해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기에 시대와 무관한 예술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그의 작품을 보면 왜 시대의 아카이빙이라 부르는지 짐작할 것이다.
실제로 19살이 되던 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의 상흔을 오롯이 작품에 토해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앵포르멜’(예술가의 즉흥성과 격정을 온전히 쏟아낸 추상미술)이라는 <회화No.1>이다. 또한 1969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회화는 붓의 탄력으로 저항을 가져오지만 공중에 분사되는 무중력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스프레이를 사용했죠.” 이렇게 작품 기법이나 재료에 변화를 줌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수행자로 채찍질한 것이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프레이를 뿌릴 때 코를 약솜으로 막고 마스크와 방독면까지 썼지만 콧속은 물감 입자로 가득 찼다. 3년여의 이러한 고집스러운 작업은 폐질환을 남겼다. 지금은 심근경색까지 앓고 있지만 한시도 붓을 놓을 수가 없다며, 이런 ‘수행의 반복’에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장고의 세월을 견뎌온 화백은 ‘스트레스 병동’과 다를 바 없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캔버스에 단순히 자기 작품을 그리는 것은 의미 없어요. 예술은 시대의 번민과 고통을 캔버스에 흡입해야죠.”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서보는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홍익대 회화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전시로는 유전질 시리즈를 발표한 <서울화랑>(1970), <도쿄 무라마쓰화랑>(1973), 베니스 비엔날레(1988) 참가, 국립현대미술관전(2001), 프랑스 생테티엔트미술관전(2006), 경기도미술관전(2007), 뉴욕 아라리오갤러리전(2008) 등이 있다.

유은순 기획자 만성질환 경험, 예술로 표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만성질환을 겪는 사람들을 되돌아본 전시 <틱-톡>(8월 15일~31일, 온수공간)을 기획한 유은순은 기획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유 기획자 또한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질병 때문에 2년 전 휴직하고, 1년간 치료를 받은 뒤 작년 6월에 복직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거나 쉬어야 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제시했다.
아픈 사람을 고려한 다른 선택도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단다. 결국 ‘남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전시에 담았다. 틱 장애가 시계처럼 다가온다는 의미로 <틱-톡>을 전시 제목으로 지었다. 여기엔 스스로 후천성면역결핍증(HIV) 감염을 밝히면서 날마다 투약 시간을 집요하게 기록한 이정식 씨와 10여 년 전의 낙마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의 고통을 극적으로 이겨낸 홍기원 씨 등 작가 5인의 평면 23점, 영상 4점, 설치 1점, 퍼포먼스를 공개했다.
유 기획자는 근육통성 뇌척수염(ME) 때문에 생긴 몸의 한계를 고백한 책 <거부당한 몸>(2013)의 작가 수전 웬델이 인용한 “삶의 속도는 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2차적인 사회 구성물”이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라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데, 예스 아니면 노라는 이분법 논쟁만 가능했다”며, 그렇다 해도 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장애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만성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 경험을 전시에 끌어들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지만 누구나 아픈 당사자가 될 수 있어요. 이런 분들이 사회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같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nothing.1> 종이에 펜, 10.2×15.2cm, 2016.

유은순은 홍익대에서 회화와 예술학을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코디네이터로 일한다. 2016 비평페스티벌에서 ‘그래파이트 온핑크’상(GRAPHITE ON PINK)을 받았고, 2018 두산큐레이터 워크숍 기획전 <유어서치: 내 손 안의 리서치 서비스>를 공동 기획했다. <틱-톡>은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됐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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