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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7번국도> 공연의
배리어프리 중심으로

<7번국도>.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배리어프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삽입된 ‘배리어프리 영화’일 겁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장애물(Barrier)과 벗어난다(Free)의 합성어로,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물리적, 제도적 장애물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아무튼 저는 매력적인 이 제도 덕분에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비장애인인 한 친구가 화면해설과 자막 등 모든 정보가 동시에 막 쏟아져 나오니까 어지러워서 더 이상 못 보겠다네요. 순간, 모두 다 좋으라고, 다 같이 즐기라고 만든 ‘배리어프리’라는 게 정말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지, 오히려 비장애인만 힘든 배리어프리가 아닌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본 연극 <7번국도> 같은 경우에는 화면해설과 자막을 동시에 띄우지 않고요, 화면해설이 필요한 사람은 FM수신기라는 기기를 빌려서 원하는 자리에서 화면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마련해주었더군요. FM수신기는 공연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지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좀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들을 수 있고 주변 소음의 영향도 덜 받게 되니, 난청인에게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하는 정보수단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습니다. 공연을 보는데 “저 배우의 숨결까지 들린다”는 친구의 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숨결에도 소리가 있구나’ 하면서요. 그 정도로 안 들리는 저에겐 자막이 영혼이자 생명이에요. 그런데 자막이 나오는 작품들은 영어 대사를 한국어 자막으로 번역해주는, 외국인이 주인공인 공연뿐이에요.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 <오페라의 유령> 이런 종류의 뮤지컬들이 한국어 자막을 달아주지만, 대학로 공연 같은 경우에는 자막을 안 달아주죠. 그래서 공연을 보기 전에 대본을 미리 읽고 가거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퍼포먼스 공연 위주로 골라서 즐기곤 했는데, <7번국도>에 배리어프리로 자막과 수어통역이 제공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대가 됐습니다.
저는 무대 앞에서 6번째 라인, 가운데에 앉았습니다. 무대 뒤에 조그마한 블랙스크린이 있고, 좌우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두 분의 수어통역사가 동시에 수어통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가 이번에 본 <7번국도>에서는 왼쪽에 있는 배우의 대사를 왼쪽 수어통역사가, 오른쪽에 있는 배우의 대사를 오른쪽 수어통역사가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어요. 이렇게 좌우로 나눠서 말하니까 누가 말했는지 쉽게 구분되어 좋았는데, 두 수어통역사가 제 자리를 기준으로 110~130° 정도 좌우로 떨어져 있어서 좌우로 번갈아 보기에는 거리가 꽤 되더군요. 아마 뒤에 앉은 사람들은 앞자리에 있는 저를 보고 ‘왜 계속 좌우로 두리번 두리번거리지?’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카멜레온처럼 360° 눈을 굴리면서 좌우 수어통역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 인간의 시야는 최대 180°라고 하지만 90분 내내 좌우 시야를 옮기면서 배우의 연기, 무대조명, 무대장치, 무대의상 등을 전반적으로 봐야 했기에 눈이 조금 바빴던 거 같아요. 여기에 자막까지 보니까, 자막의 위치도 배우들의 키에서 1.5배 높이에 있어서 좌우 두리번거릴 뿐만 아니라 상, 좌, 우 삼각형 구도를 그리며 두리번거리게 되더군요. 그리고 자막에서는 대사를 누가 말했는지 구분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어요. 하지만 그 무대는 수어통역사나 자막(스크린) 등을 배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는데 관련 담당자들이 최선의 방향으로 꾸며놓은 것 같았습니다.
수어통역사들도 배우들만큼 열정적으로 수어통역을 해주었지만,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정과 표정들, 특히, 그 강도가 다소 다르다고 느껴졌습니다. 자막으로 보여준 대사와 조금 다르게 수어로 표현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물론, 수어통역의 모든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그 대사 한마디에서 궁금해하고, 추측하고, 다음 대사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서 공연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7번국도>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배우 2~3명씩 무대 가운데로 나와서 아무 동작도 없이 대사를 읊는 식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사에 집중되도록 하는,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공연이었어요. 물론 제가 느끼기에는 자막과 수어통역도 대사 표현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어두운 객석에서 대사로 이루어진 대본을 읽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제가 그 분위기를 답답하게 느낀 것인지 아니면 공연이 그런 의도로 이야기를 구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신해요. 모든 관객이 느낀 그 답답함을 저도 함께 느꼈다는 점이요. 배리어프리가 도입될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됩니다.
(1등으로 티켓팅!)

글 황진옥_자막이 나오는 영화나 공연만 챙겨 보는, 농인(聾人)으로서의 삶이 즐거운 사람. (micam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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