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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마리엘 헬러 감독의 <날 용서해줄래요?>거짓말을 타전하다
밥벌이는 때로 지겹고 비루하다. 내일을 준비하기는커녕,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버거운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자꾸 뒷걸음질치는 하루가 매일매일 더 낮은 곳으로 저물어가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물기 없는 마음이 자꾸 사람들을 밀어낸다. 외로움과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떨 때는 외로움조차 내게서 등을 돌리는 것 같다.

진심과 흑심 사이

능력보다 명성이 브랜드가 되어 잘나가는 것 같은, 중심에 선 사람들이 있다. 그 중심이 원심력처럼 작용해, 그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기만 해야 하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마리엘 헬러 감독의 <날 용서해줄래요?>(Can You Ever Forgive Me?)의 주인공 리 이스라엘은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줄까지 끊어져 변방으로 몰린 상태다.
영화는 1990년대 뉴욕의 작가 리 이스라엘이 직접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허구보다 더 극적인 실화를 통해 벼랑 끝에 몰린 한 여성이 자신의 인생과 함께 타인의 삶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개인이 되어가는 성장담을 묵직하게 그려낸다.
한물간 자서전 작가인 리 이스라엘은 생계 유지조차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성격도 원만하지 않아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출판사에서도 홀대받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의 책 속에서 유명 작가의 자필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이 종이 한 장이 꽤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유명 작가의 편지와 서명을 위조하기 시작한다. 편지 한 장이 수백 달러의 가치가 있다. 위조 편지 한 장이면 밀린 집값도 아픈 고양이의 병원비도 벌 수 있다. 한 번의 성공 이후 그의 범죄는 점점 더 대담해진다.
영화는 줄곧 진품과 가품 사이의 가치와 그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답 대신 물음표를 얹어놓는다. 그리고 모작된 예술가의 작품이, 예술가의 진품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지 계속 되묻기도 한다. 삶의 위기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가짜를 가공해내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 한 중견 작가의 삶을 통해 관객들은 계속 예술의 가치와 삶의 가치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들켜버린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완전한 상실이 그저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거짓말쟁이 중년 여성의 쓸쓸한 변화가 다른 삶의 시작일 수 있다고 토닥이며 속삭인다.

물기 없는 마음이 젖는 순간

리 이스라엘은 상처받기 싫어 앞서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마음을 다치면 남의 집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훔치거나, 다른 손님의 코트를 훔쳐 입고 달아나도 된다고 생각한다. 삶을 위안하는 복수 혹은 그로 인한 마음의 보상이 죄의식보다 앞선 사람이다. 웃음기 없는 표정과 물기 없는 태도 때문에 호감을 얻기는 힘들지만, 리 이스라엘은 소외된 고양이를 극진히 돌본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술친구 잭 호크를 통해 유대감을 배운다. 하지만 소동 끝에 돈과 친구를 모두 잃은 그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럼에도 그에게 생긴 죄의식과 마음을 나누는 태도는 그의 물기 없는 삶을 조금은 적셔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날 용서해줄래요?>는 중년 여성의 작은 성장담이다. 유명 작가의 편지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높은 값에 거래되는 현실, 그 작가를 위조할 수 있는 예술가의 재능은 홀대받는다는 상황은 꽤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런 점에서 리 이스라엘의 위조는 값 없는 가치의 값어치를 조롱한다는 어느 정도의 쾌감을 관객에게 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리 이스라엘은 유명인의 편지를 위조한 자신의 삶을 자서전으로 엮어 유명 작가가 되었다. 예술가에게 창의성 없는 재능은 독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는 화가들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욕심에 그림의 옷 주름이나 눈동자 등에 슬그머니 자신의 이니셜을 적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작은 흔적 때문에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 가짜로 판명 된다. 위조품 안에 창작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지는 순간, 위조품은 어쩌면 진품의 미덕을 갖추게 되는 것 아닐까, 궁금해진다.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칼럼의 제목은 안현미 시인의 시 <거짓말을 타전하다>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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