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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그림일기 프로젝트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요
내 이야기는 내 힘으로 쓰겠다, 복순 씨는 펜을 들었습니다.
가갸거겨도 모르지만,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갑니다.
서툴지만 꾹꾹 눌러 적은 흔적이 그녀가 살아온 생을 닮았습니다.

_<그림일기 프로젝트> 포스터와 소개글 부분 (웹진 [비유] 제공)

잡지에 실을 글을 사람들이 보내오면 나는 첫 독자가 된다. 원고의 잘못된 부분을 살펴 고치는 게 내 일이지만 때로 그마저 잊게 만드는 글을 만난다. 잠시 손을 멈추고 오롯이 그 글을 쓴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가보게 하는 글을.
이를테면 <그림일기 프로젝트>는 할머니 한복순 님과 손녀 박경서 님의 목소리가 도란도란하다. 두 사람은 ‘오순도순 고슴도치’라는 이름으로 팀을 이루어 농부, 상인, 엄마, 할머니 등 다양한 자리를 채워가며 팔십 넘는 생을 살아온 한복순 님의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기록했다.
어릴 적 복순 님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집이 어려워서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해야 했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수업을 가기도 했지만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글을 몰라도 흐르는 세월만큼 그에게는 한 겹 한 겹 이야기가 쌓였고, 소설 쓰는 손녀에게 이따금 당부하곤 했다. “다음에 내 이야기도 꼭 글로 써줘. 내가 고생하고 살아온 거,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줄테니까.” 손녀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복순 씨의 주름진 얼굴, 그 사이사이에 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을 만났던 일화, 사별한 할아버지와의 이야기, 장사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 그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손녀의 제안으로 복순 님은 공책을 펼쳤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당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그렸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천진한 그림을 보면 빙긋이 웃음이 난다.

그의 일기를 뒤적이다 보면 웃음 뒤로 눈물이 살짝 묻어난다. 가난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먹고사는 데 온 힘을 다한 날들-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얼어붙은 저수지를 건너던 일, 집집마다 다니며 화장품을 팔던 일, 텃세 부리는 상인들 사이에서 나물 팔던 일 등-과 아픈 다리를 주무르는 요즘의 일까지 한 사람의 생이 켜켜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한복순의 가족, 연인, 후회, 일상……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일기를 써내려가는 할머니 곁에서 손녀는 생각한다. 할머니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20년 전 여행 갔던 날을 떠올리며 일기 쓰던 날에 둘은 내년에 제주도에가서 유채꽃 축제를 즐기자고 약속했다. 일기는 어쩌면 지난날의 기록이 아니라 끄덕끄덕 흘러가는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을 기다리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웹진 [비유](view.sfac.or.kr)에서 두 사람의 작업을 엿보며 함께 울고 웃어보길,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하루를 글과 그림으로 남겨보길. 분명 마음 한편이 환해질 거다. 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되비추는 거울 하나를 선물 받은 것같이.

한복순입니다. 지금은 너무 팔자가 좋아서 매일 먹고 놀고, 손녀들 덕분에 좋은 연속극만 손녀들이 틀어주면 나는 누워서 거울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너무 행복한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하지요. 인제 죽기 싫어졌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거 같아요.

_2화 <복순씨로 말할 것 같으면> 부분
“공부는 못 배웠지만 이건 반듯해야 할 거 아녀.” 복순 씨는 선을 그으며 말했습니다. 그림은 항상 복순 씨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거울입니다. 복순 씨는 앉아 있는 게 힘이 들 때면 거울을 이용합니다. 자리에 누운 채로 거울의 각도를 요리조리 틀어가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방을 비춰보곤 합니다.

_2화 <복순씨로 말할 것 같으면> 부분
생일날.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혼자 의자에 앉아서 독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 눈물이 나더군요.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은 한 백 년 살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

_6화 <생의 이유> 부분
글 남지은_시인, [비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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